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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표준 우주론 다시 써야 할까

‘람다(Λ) 차가운 암흑물질 모형(LCDM)’은 현재 우주를 가장 잘 설명하는 모형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최근 관측 결과들은 LCDM의 구멍을 드러내고 있다. LCDM의 구멍을 찾으려면 먼저 LCDM을 이해해야 할 터. 생소한 이름 ‘LCDM(Lambda-cold dark matter)’에 녹아있는 두 힌트, ‘람다’와 ‘차가운 암흑물질’을 먼저 간략히 알아보자.

 

CDM(Cold dark matter) | 우주 구조를 만든 ‘차가운 암흑물질’

 

1964년,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되며 우주가 한 점에서 출발했다는 빅뱅 우주론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우주배경복사는 우주가 탄생 38만 년 후에 내뿜은 빛으로 빅뱅 이론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탄생의 빛’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관측을 통해 우주배경복사에 매우 미세한 밀도 요동이 있음이 밝혀졌다. 이 밀도 요동은 이후의 우주 구조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했다. 물질 밀도가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중력이 작용하면서 물질들이 모여 별과 은하와 같은 천체들이 만들어졌다. 이 요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관측되지 않으면서 중력하고만 상호작용하는 물질, 즉 ‘암흑물질’의 존재가 필요했다. 이때 암흑물질은 매우 느리게 움직여야 밀도 요동을 보존해 현재의 우주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천체물리학자들은 이 느리게 움직이는 암흑물질을 ‘차가운 암흑물질’, CDM이라 지칭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CDM 우주론은 1990년대 초까지 우주를 설명하는 중심 모형으로 부상했다.

 

LCDM 우주론의 세 구멍

 

❶ 허블 텐션 우주 팽창 속도인 허블 상수값의 불일치

LCDM 모형이 우주배경복사를 기반으로 예측하는 허블 상수와, 천체 관측을 통해 추산된 허블 상숫값이 일치하지 않는다.

 

❷ 시그마 에잇(σ8) 텐션 우주 구조 형성값의 불일치

‘시그마 에잇(σ8)’은 우주 거대 구조를 나타내는 수치다. 이 값 또한 LCDM 모형을 통해 계산된 값과 천체 관측으로 추산된 값이 다르다.

 

❸ 우주 상수 문제 시간에 따라 변하는 암흑에너지

LCDM 모형에서 암흑에너지를 의미하는 우주 상수 ‘람다’는 변하지 않는 상수로 설정됐다. 그러나 2025년 관측 결과,  암흑에너지는 시간에 따라 변한 것처럼 보인다.

 

암흑에너지의 변화에 따라 우주 팽창은 미래에 가속될 수도 있고 느려질 수도 있다.

 

▲NASA/WMAP Science Team(W)

 

LCDM이 설명하는 우주의 역사

 

❶ 빅뱅과 인플레이션

초기 우주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모여있던 한 점에서 출발해 급격한 팽창(인플레이션)을 일으키며 탄생했다. 뜨겁고 밀도가 높은 초기 우주가 팽창하고 식어가면서 차츰 물질이 만들어졌다. 우주 탄생 1마이크로초(µs·100만분의 1초) 후에 쿼크가 결합해 첫 입자가 탄생했다.

 

❷ 우주배경복사

우주 탄생 약 38만 년 후, 우주가 냉각돼 수소 원자들이 형성됐다.  그로 인해 빛이 방해받지 않고 직진할 수 있게 되면서 우주는 처음으로 ‘투명’해졌다. 이때 원자들이 만들어지며 방출한 광자가 우주를 가득 채웠다. 이를 ‘우주배경복사’라 하며, 지금도 여전히 전 하늘에서 관측할 수 있다.

 

❸ 첫 번째 별의 탄생

우주 탄생 2억 년 후, 흩어져 있던 먼지와 가스가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 수축하며 첫 번째 별이 만들어졌다. 

 

❹ 은하와 우주 구조의 형성

우주 탄생 4억 년 후, 암흑물질의 중력에 이끌려 초기의 은하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❺ 암흑에너지로 인한 가속 팽창

우주 탄생 100억 년 후부터 우주의 팽창 속도가 가속되기 시작했다. 현재 우주는 점점 더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L(Λ·Lambda)| 아인슈타인의 실수에서 부활한 우주상수 ‘람다’

 

1998년, 천체물리학계를 뒤집어놓은 중대한 관측 결과가 발표됐다. 두 연구팀이 초신성 밝기 측정을 통해 우주가 가속 팽창, 즉 갈수록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는 연구를 내놓은 것이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가 1998년의 가장 중요한 연구 성과로 뽑을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우주의 가속 팽창은 기존의 CDM 우주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가속 팽창을 설명하려면 중력을 거스를 정도로 우주를 빠르게 팽창시키는 새로운 에너지, ‘암흑에너지’를 도입해야 했다. 암흑에너지를 우주론 수식에 간결한 형태로 포함시키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우주상수 ‘람다(Λ)’다. 원래 우주상수는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이 정적인 우주를 구현하기 위해 수식에 집어넣은 항이었다. 이후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우주상수는 쓸모가 없어졌고, 아인슈타인이 “일생 최대의 실수를 했다”고 자책할 정도였다.
그러나 한 세기 가까이 지난 후, 람다는 가속 팽창을 설명하기 위해 부활했다. 이렇게 람다가 더해져 L+CDM이 된 ‘LCDM’ 우주론은 2000년대 초 학계에 받아들여졌다. 겨우 스무 살 남짓한 신생 우주론인 셈이다. LCDM은 현재 우주를 가장 잘 설명하는 모형이지만 연구자들은 LCDM의 허점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ESA and the Planck Collaboration
유럽우주국(ESA)의 플랑크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우주배경복사. 우주배경복사를 통해 허블 상수 등 다양한 우주론 수치를 추정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우주배경복사는 우주론 연구에서 중요하다.

 

구멍 1 | 우주 팽창 속도인 ‘허블 상수’ 값의 불일치

 

“‘허블 텐션(Hubble Tension)’이라고도 부르죠. LCDM을 위협하는 문제 중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문제입니다.”


7월 24일, 서울대에서 만난 이형목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설명했다. 허블 상수는 우주의 팽창 속도를 나타내는 값이다. 파란색 고무풍선의 표면에 은하 스티커를 붙이고 바람을 불어넣는다고 상상해 보자. 풍선(우주)이 팽창하면서 표면의 스티커(은하)는 서로 멀어진다. 이때 우주의 팽창 속도, 허블 상수는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와 지구와 멀어지는 속도로 알 수 있다.


지구와 천체가 멀어지는 속도는 천체에서 나오는 빛의 ‘적색편이’를 측정해서 알 수 있다. 적색편이는 천체가 내는 빛의 파장이 더 길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천체가 뿜어낸 빛이 날아오는 도중 거쳐 간 시공간이 팽창하면서 빛의 파장도 길어진 것이다. 현재까지 거리 측정을 통해 관측된 허블 상수는 약 73km/s/Mpc이다.


“문제는 이렇게 측정한 허블 상수가 다른 방법으로 구한 허블 상수와 다르다는 점입니다.” 허블 상수를 구하는 또 다른 방법은 우주배경복사를 이용하는 것이다. 우주배경복사 관측값에서 시작해, 계산을 통해 역으로 구할 수도 있다. 이렇게 구한 허블 상수는 67km/s/Mpc이다. “73과 67은 큰 차이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측정값 모두 오차가 적어서 오차 범위가 겹치지 않아요. 서로 공존을 못 하는 거죠.” 적당히 두 값의 중간값을 허블 상수로 정하는 것으로 타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관측이 완전히 잘못됐거나, 우주배경복사에서 허블 상수를 도출하는 LCDM 우주론 수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구멍 2 | 우주 구조 형성값의 불일치

 

또 다른 문제는 ‘시그마 에잇(σ8) 텐션’이라 알려진 우주 구조의 문제다. σ8은 현재 우주의 대규모 구조가 형성된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천체를 비롯한 우주의 구조가 얼마나 뭉쳐져 있는지 보여주는 값이다.

 
“쉽게 바닷가 모래사장을 예로 들어봅시다. 모래 한 삽을 떠서 체로 치면 크기별로 모래알을 분류할 수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우주의 밀도 요동을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분류한 거예요.” 이 교수는 이렇게 분류된 값을 처리해서 나온 수치가 σ8이라 설명했다.


현재 우주의 구조는 우주가 만들어진 초기에 있었던 물질의 밀도 요동, 즉 ‘우주 초기 밀도 요동’이 팽창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우주배경복사를 통해 관측되는 우주 초기 밀도 요동을 계산해서 나온 σ8 값과, 현재 우주의 구조를 관측해 나온 σ8 값은 동일해야 한다. 그런데 허블 텐션에서와 비슷하게, 이 두 값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두 값의 차이는 서로 악수하기도 곤란할 정도로 오차 범위를 크게 넘는다”고 설명했다.

 

구멍 3 | 시간에 따라 변하는 암흑에너지

 

 

마지막으로 LCDM 모형을 뒤흔든 것이 암흑에너지분광장비(DESI) 관측 결과 발표다. 1파트에서 자세하게 설명했으니 짧게만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LCDM의 ‘L’이 상수라는 가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DESI의 관측 결과가 함축하는 바다. LCDM 우주론에서 우주를 팽창시키는 암흑에너지는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상수로 취급됐다. 그러나 2025년 상반기에 발표된 DESI의 3년 차 관측 결과는 우주의 암흑에너지 크기가 시간에 따라 변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또한 LCDM의 기본 가정을 뒤흔드는 중요한 관측이다.

 

▲Shutterstock
우주 팽창을 설명하는 고무 풍선 비유. 
풍선에 은하 모양 스티커를 붙이고 바람을 불어넣으면, 풍선이 팽창하면서 은하 사이의 공간이 멀어진다. 이때 우주의 팽창 속도를 나타내는 값을 허블 상수라 한다.

 

우주론, 고쳐 쓸 수 있을까?

 

LCDM 우주론의 유통기한은 막바지에 이른 걸까. 7월 30일, 홍성욱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진화연구센터 연구원에게 전화해 연구자들의 의견을 물어봤다. 그는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다”고 답했다. “아직 LCDM 우주론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번 DESI 발표는 파급력이 엄청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관측 결과입니다. 허블 텐션으로 의심의 불길이 커지던 와중에 암흑에너지 관측 결과가 기름을 부었다고 볼 수 있어요.”


오래 전부터 기존 우주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려던 시도는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이스라엘의 물리학자 모르더하이 밀그롬이 1983년에 발표한 ‘수정 뉴턴 역학(MOND)’이다. “수정 뉴턴 역학은 원래 암흑물질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입니다. 뉴턴 역학에서 중력은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설명하잖아요. MOND는 훨씬 먼 거리에서 중력이 뉴턴의 수식과 다르게 작용한다는 거죠.”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만든 중력이론 내에서 다양한 천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됐다. 밀그롬은 뉴턴 역학 자체를 수정하면 암흑물질 같은 개념을 도입할 필요 없이 부자연스러운 천문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MOND는 은하계 회전 속도 문제를 포함한 몇몇 문제들을 해결했다. 하지만 모든 우주론적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암흑물질이 존재한다는 다른 증거가 많기 때문이다. MOND가 지금까지 주류가 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주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대안 우주론이 만들어지고 있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스케일에서 손을 대느냐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변화는 엄청나게 큰 패러다임의 전환이었잖아요. 이와 비슷하게 일반 상대성이론이 틀렸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뒤집지 않더라도 지금의 우주론을 충분히 고쳐 쓸 수 있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지금까지 LCDM은 매우 성공적으로 작동해 온 우주론이었고, 대안으로 나온 수많은 우주론들 중 아직 LCDM보다 더 성공적인 모형이 없었다는 뜻이다.


오히려 미래의 우주론을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더 정밀한 관측 결과라고 이 교수는 설명한다. “기존의 우주론이 우리 우주를 잘 설명했지만, 관측 장비가 진화하고 더 정밀한 관측 수치가 나오면서 LCDM 우주론도 수정이 불가피해진 거거든요.” 


천체물리학자들은 이론과 관측의 중간에서 둘을 더 잘 이어줄 방향을 끊임없이 강구한다. 더 정확한 관측 데이터가 더 세밀한 우주론의 기반이 돼줄 것은 자명하다. 홍 연구원은 여기에 더해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인공지능(AI)의 발전도 우주론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론에 맞춘 가짜 우주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돌려서 검증해야 해요. 관측이 정밀해질수록 시뮬레이션의 크기도 커질 거고, 좋은 연산 능력을 갖춘 컴퓨터와 이를 도울 AI가 필요할 겁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우주론을 위해서는 어떤 관측이 필요할까. 3파트에서 알아본다. 

 

▲자료: Perivolaropoulos and Skara
연대별 허블 상수 관측값. 우주배경복사를 기반으로 한 예측값과 실제 천체 관측을 통해 계산한 값이 갈수록 정밀해지지만,  동시에 점점 더 크게 차이가 나면서 ‘허블 텐션’을 불러왔다.

 

▲IllustrisTNG
우주론적 은하 형성 시뮬레이션 작업인 ‘일러스트리스TNG’ 프로젝트에서 공개한 우주 형성 시뮬레이션 이미지. 대규모 우주론 시뮬레이션은 온도와 중력은 물론 중입자,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등 다양한 조건을 바꿔가며 우주 구조의 형성 과정을 실험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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