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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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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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양자 100년, 세상에 대한 이해와 삶을 바꿔놓다
▲Shutterstock 2025년은 ‘세계 양자 과학기술의 해(International Year of Quantum Science and Technology)’다. UN이 양자역학 100주년을 기념해 지정했다. 100년 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의 첫 수학적 틀인 행렬 역학을 개발했다. 오늘날 AI를 넘어 미래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양자 과학기술의 역사와 현재, 미래를 살펴봤다. 같이 보면 좋을 기사 양자 과학기술을 대표하는 기술로 크게 세 가지를 꼽습니다. 양자 컴퓨팅, 양자 센싱, 양자 통신. 이번 특집은 양자 컴퓨팅과 양자 센싱에 주목했습니다. 양자 통신을 심층적으로 2023년 1월호 특집 ‘양자역학적 순간이동’ 기사와 함께 보길 추천드립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5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을 최초로 수학적으로 표현한 행렬 역학을 만들었다. 과학자들이 이전 수십 년 동안 치열한 고민의 결과로 양자 개념을 제시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현대 물리학에 등장한 양자 개념은 과학은 물론 인류의 삶을 변혁했다. 그 역사를 시기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나눠 정리했다. 양자역학의 주요 특성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1965년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양자역학이 다루는 미시세계의 작동 원리가 우리가 접하는 세상과는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라는 의미였다. 그 반직관적인 특성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양자역학의 세 가지 특성을 정리했다. 물리학이 완성됐다고 생각했던 순간, 양자역학이 시작됐다 19세기 말, 사소한 문제 하나가 견고해 보이던 고전 물리학의 기반을 조용히 흔들기 시작했다. 고전 역학을 사용해 흑체 복사를 계산하던 중 자외선 파장대에서 무한대의 에너지가 쏟아져나오는 ‘자외선 파탄’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1900년,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흑체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양자’라 불리는 덩어리 형태로 나온다는 이상한 가정을 해서 문제를 풀어냈다. 우연히 도입된 양자라는 개념은 이후의 물리학은 물론 현대 과학과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1900~1925 | 양자 개념 도입기 고전 물리학이 설명할 수 없는 흑체 복사 문제(자외선 파탄)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양자화 가설 이후 양자 개념이 물리학에서 퍼졌다. 과학자들이 양자를 통해 빛과 원자 구조, 입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며 양자역학의 발전이 본격화됐다. 1925~1930, 양자역학이 완성되다 이 시기는 가히 양자역학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행렬 역학에 이어 1926년, 에르빈 슈뢰딩거가 파동 역학으로 입자의 상태를 파동으로 설명했다. 그 결과 1927년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를 완성한다. 1927년에 열린 5차 솔베이 회의도 있다. 당대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들이 모였던 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과 보어가 양자역학에 관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우리가 아는 양자역학의 존재론적 모습은 이때 드러났다. 1927~1980 | 양자역학의 확장 양자역학은 물리학뿐만 아니라 모든 과학과 공학 분야의 발전을 이끌었다. 미시 세계의 동작 원리가 설명되며, 물질과 우주의 구조부터 화학 결합, 원자의 상호작용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양자역학은 전자기기의 발전 또한 이끌며 인류의 삶에도 깊숙이 파고들었다. 1980~현재 | 양자 과학기술의 발전 비결정론적 특성, 양자 얽힘 등 양자역학의 여러 특성을 활용한 새로운 응용 기술 발전이 시작됐다. 정보의 전송, 해석, 처리를 연구하는 양자 정보 과학기술은 오늘날 인류의 삶을 또 한 번 바꿀 ‘게임 체인저’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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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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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하나가 되기 위한 정자의 여정
▲Shutterstock, 박주현 아이는 어떻게 생길까? 이제는 다 풀린 질문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막상 깊이 들여다보면 정자의 움직임부터 난자의 성숙까지, 생명의 탄생은 제대로 밝혀진 부분이 거의 없는 신비의 과정이다. 정자는 목표를 향해 쉼 없이 전진하고, 난자는 한 번의 만남을 위해 준비를 갖춘다. 이 작은 존재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단순한 과학 연구를 넘어 생명 탄생의 비밀을 품은 특별한 여정이다. 그 과정을 따라가 보자. ‘꿈틀대며 헤엄쳐 제일 먼저 난자에 도착한다. 수정이 이뤄지면 새 생명이 탄생한다.’ 이것이 우리가 수업 시간에 배우는 정자의 모습이다. 하지만 정자 연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움직이는 방식을 포함해 밝혀지지 않았거나 지금도 연구 중인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난자를 만나기 위한 정자의 여정을 따라가 봤다. 질 | 정자는 빙글빙글 돌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드디어 1억 5000만 마리 동료들과 함께 질 내부에 도착했다. 앞으로 난자가 기다리는 나팔관 끝까지는 18cm.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끈적이는 유체의 흐름에 저항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유난히 희한하게 생긴 친구들도 보인다. 빙빙 도는 친구, 방향을 잃은 친구, 움직이지 않는 친구까지. 얘들아, 시간이 없다고! 정자는 난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어떻게 움직일까. 생물 시간에 배운 그림을 떠올려 보자. 대개는 양옆으로 꼬리를 흔들며 물속을 헤엄치는 흰색 올챙이(?)를 상상할 것이다. 정자의 머리는 길이 약 4~5탆(마이크로미터는 100만 분의 1m)다. 이곳에 난자의 바깥 막인 투명대를 녹이는 효소, 새 생명을 만들 유전물질이 들어있다. 그 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세포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가 들어있는 중편과 약 50탆 길이의 편모가 이어진다. 정자는 이 편모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우리의 상식과 일치하는 내용은 여기까지다. 우선 정자는 편모를 좌우로 흔들며 헤엄치지 않는다. 편모를 빙글빙글 돌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2023년 11월 29일, 가브리엘 코르키디 멕시코 국립자치대 세포공학 및 생촉매학과 연구원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국제학술지 ‘세포과학저널(Journal of Cell Science)’에 ‘정자는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doi: 10.1242/jcs.261306 일반적인 현미경으로 볼 때 정자는 편모를 흔들며 헤엄치는 것 같지만, 이는 정자의 움직임을 평면적으로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착시에 가깝다. 코르키디 연구팀은 정자의 움직임을 3차원으로 볼 수 있는 현미경을 사용해 정자의 운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정자의 편모는 한쪽 방향으로만 회전했다. 그런데 편모가 한쪽 방향으로만 회전하면 앞으로 직선 운동을 하는 대신, 원형으로 같은 곳을 빙빙 돌게 된다. 이를 상쇄하는 것이 정자의 머리 움직임이었다. 연구팀은 편모를 한쪽 방향으로 회전하는 동시에 머리도 계속 움직여 나아가는 방향을 조금씩 바꿔서 일직선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조절한다고 밝혔다. 이때, 정자의 머리 회전 방향은 머리에서 꼬리 쪽으로 볼 때 반시계 방향이었다. 머리의 세밀한 움직임이 정자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 것이다. 사실 코르키디 교수팀의 연구는 2020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던 연구의 후속 버전이다. doi: 10.1126/sciadv.aba5168 당시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으나 이후 논문을 뒷받침하는 증거 자료가 미비하다는 비판이 나왔고, 결국 논문은 1년 후 게재가 철회됐다. 연구팀은 이후 증거 자료를 더 수집해 다시 내용을 발표했다. 두 번째로, 정자가 움직여야 하는 생식기관 내부 환경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 우선, 정자는 물에서 헤엄치지 않는다. 사정돼 여성 생식기관으로 들어온 정자가 난자를 만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은 크게 질 내부, 자궁 내부, 나팔관의 세 단계다. 가장 먼저 정자가 돌파해야 하는 구간은 질 내부다. 정자들은 이곳을 거슬러 올라 자궁 경부를 거쳐 자궁 내로 들어간다. 그런데 질 내부는 물이 아니라 끈적거리는 체액으로 덮여 있다. 이 체액의 점도는 물보다 최대 100배 정도의 점도를 가진다. 이 점도면 덜 끈적거리는 종류의 헤어젤과 비슷하다. 모든 정자가 제대로 앞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정으로 질 내에 안착한 1억 5000만 마리의 정자 대부분은 형태가 이상한 ‘비정상 정자’이기 때문이다. 비정상 정자는 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 형태가 정상적이지 않다. 머리나 꼬리가 이상하게 생겼거나 없는 경우, 혹은 머리나 꼬리가 2개 이상인 경우도 있다. 이런 정자들은 제대로 헤엄치지 못하고 헤매기 일쑤다. 더 놀라운 건 비정상 정자의 비율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정상 정자의 비율이 4% 이상인 경우 정상 범위로 판단해요.” 12월 4일, 차병원 생식의학 및 불임유전체 연구센터에서 만난 윤숙영 기초의학연구팀장이 설명했다. 정상적인 정액 표본에서도 비정상 정자의 비율이 최대 96%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왜 이렇게 비정상 정자가 많은 걸까? 윤 팀장은 “정자가 워낙 많은 양으로 만들어지는 게 일차적 원인일 것”이라 설명했다. 정자는 정소에서 1초에 1500개, 매일 수백만 개가 만들어진다. 활발한 세포분열과 생산 과정 중에 정자의 ‘품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비정상 정자가 많아도 괜찮은 걸까? “결국 1억 5000만 마리 중에 하나만 수정에 성공하면 되는 거니까요.” 윤 팀장의 답이다. 실제로 난자를 향해 제대로 헤엄치는 정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한 셈이다. ▲Frontiers in Cell and Developmental Biology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황소 정자. 일부 정자들은 무리지어 움직이고 있다(노란 원). 최근 정자가 난자에 도달하기 위해 무리지어 움직인다는 연구가 발표되는 등 기존 통념과는 다른 정자의 행동들이 밝혀지고 있다. 자궁 경부 | 끈적이는 환경, 버티려면 뭉쳐라 자궁 경부를 지났다. 이제는 자궁벽을 따라 나팔관으로 올라가는 코스다. 끈적거리는 액체를 거꾸로 거슬러 오르려니 힘에 부친다. 내가 제대로 된 길을 가는 건지도 혼란스런 그 순간,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서 수십 마리의 정자 동료들이 한꺼번에 뭉쳐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 함께 힘을 합하면 두려울 것이 없어! 정리해 보면, 정자는 물속을 헤엄친다기보다는 끈적거리는 액체로 덮인 축축한 벽을 기어오르는 것에 가까운 방식으로 자궁 경부를 향해 움직인다. 그런데 질에서 자궁으로 이어지는 자궁 경부는 무수히 많은 주름으로 덮여있다. 이곳이 정자들의 1차 난관이다. “자궁 경부까지 대부분의 정자들이 걸러집니다. 정자들이 복잡한 주름 사이에서 자궁 내로 들어가는 길을 찾기 쉽지 않거든요.” 윤 팀장의 말이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동물들의 정자들은 ‘뭉친다’. 2022년 9월, 치콴 텅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A&T 주립대 교수팀은 ‘세포 및 발달 생물학 프론티어(Frontiers in Cell and Developmental Biology)’에 뭉쳐서 움직이는 정자에게 어떤 이점이 있는지, 황소 정자를 대상으로 실험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doi: 10.3389/fcell.2022.961623 정자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려면 먼저 정자가 움직일 트랙을 만들어줘야 한다. 연구팀은 자궁 내부처럼 점도를 재현한 유체를 만들었다. 이 유체를 주사기와 연결된 유체 칩에 집어넣은 후, 여기에 채취한 소의 정자를 풀어줬다. 이제 주사기를 조금씩 누르면 유체의 흐름이 생긴다. 연구팀은 주사기를 누르는 정도를 달리해 유체가 흐르는 속력을 조절하면서, 정자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무리 지은 정자의 이점 세 가지가 발견됐다. 첫 번째, 유체의 흐름이 없는 경우 정자 무리는 단독으로 움직일 때보다 일정한 방향으로 더 잘 움직였다. 길을 잃지 않고 꾸준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쉬웠다는 얘기다. 두 번째, 유체가 느리게 흐를 때는 무리 지은 정자가 훨씬 정렬을 잘했다. 마지막으로 유체가 좀 더 빠르게 흐를 때는 떠내려가는 정자가 적었다. 대개 난자를 향한 정자들의 레이스는 1억 5000만 마리가 벌이는 경쟁으로 그려지곤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도와가며 완주하는 마라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자궁~나팔관 | 진정한 승리자는 ‘처음 뚫은 정자’ 나팔관을 따라 헤엄치길 어언 두 시간, 이제 남은 동료는 200마리 남짓. 그 순간 저 멀리 우리의 목적지, 난자가 보인다. 그러나 난자는 여러 다른 세포로 둘러싸여있어 만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마지막 난관이다! 여정을 시작한 정자가 난자와 만나기까지는 최소 30분에서 최대 72시간이 걸린다. 정자는 30분에서 2시간 만에 난자가 있는 나팔관 말단부에 도달한다. 만약 난자가 아직 배란되지 않은 상태라면, 난자가 나오기까지 최대 72시간 동안 기다린다. 물론 그사이에 할 일이 있다. 정자가 난자와 만난다고 해서 수정이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자는 여성의 생식기관 내를 움직이는 동안 성숙하면서 수정 능력을 얻어야만 한다. 이 단계를 ‘수정능력 획득(capacitation)’이라 부른다. “체외 수정을 해보면 알 수 있어요. 수정능력을 획득하지 않은 정자는 난자 옆에 놔둬도 난자의 표면을 뚫고 들어가 수정을 이루지 못합니다.” 윤 팀장과 함께 만난 엄진희 차병원 난임연구실장이 설명했다. 수정능력 획득은 자궁 내에서 분비되는 다양한 물질을 통해 이뤄지는 생화학적 과정이다. 이를 통해 정자에는 두 가지 변화가 발생한다. 먼저, 정자가 평소보다 더,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자가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난구세포(cumulus cell)를 뚫고 난자에 도달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더해 정자의 머리를 둘러싼 첨체의 구조도 불안정해지면서 내부에서 난자의 바깥 세포막인 ‘투명대’를 녹이는 다양한 소화 효소가 나온다. 즉, 수정능력 획득을 거친 정자만 난구세포를 뚫고 난자의 투명대를 녹여 난자와 만날 수 있다. 수정능력을 획득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단백질은 ‘캣스퍼(CatSper)’다. 캣스퍼는 정자의 세포막에서 칼슘 이온을 운반하는 채널 역할을 한다. 2024년 1월, 티모 스트륑커 독일 뮌스터대 생식의학 및 남성학 센터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연구팀은 2300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정자의 운동성과 캣스퍼 단백질의 관계를 조사했다. doi: 10.1172/JCI173564 그 결과, 캣스퍼 단백질이 없는 경우 정자의 과활동성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캣스퍼 단백질이 없다면 난자 앞까지 제일 먼저 도착했더라도 난구세포를 뚫지 못해 결국 수정은 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결국 승리자는 ‘처음 도달한 정자’가 아니라 ‘처음 수정하는 정자’라는 게 정확한 표현이죠.” 윤 팀장은 정자의 여정을 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이렇게 우리의 정자는 난자를 만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것이 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수정 과정을 더 정확히 알기 위해, 다음 장에서는 이야기의 다른 반쪽인 난자를 만나보자. 진정한 승리자는 ‘처음 뚫은 정자 세 부위로 나뉘는 정자의 구조 > ▲Shutterstock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정상적인 정자의 모습. 약 1억 5000만 마리의 정자 중 수정에 이르는 정자는 처음 난자에 도달한 정자가 아니라, 처음 난자의 투명대를 녹이고 난자 내부까지 진출한 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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