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신화에서 우주는 커다란 알(Cosmic egg)이 깨어지며 탄생했다. 고대 인도인은 커다란 거북이와 코끼리가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고 믿었다. 우주론, 즉 인류가 추측한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모습은 시간에 따라 알, 혼돈의 물, 공허 등으로 꾸준히 바뀌어왔다.
변화는 우주론에 과학적 방법론이 도입된 현대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25년 3월, 현재 정설로 자리 잡은 표준 우주 모형인 ‘LCDM(람다(Λ) 차가운 암흑물질 모형)’ 우주를 위협하는 관측 결과가 발표됐다. 그 위협의 이름은 ‘암흑에너지’. 과연 새로운 우주론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과학동아가 우주론의 위기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2025년 3월, 우리가 알던 우주는 위기(?)를 맞았다.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는 힘이 약해진다는 소식 때문이다. ‘우주는 점점 더 빠르게 팽창한다’는 기존 이론을 뒤집는 연구 결과다. 그간 정론으로 받아들여진 표준 우주가 위기에 처한 걸까. 우주의 모습이 또 한 번 탈바꿈할지, 연구에 참여한 샤피엘루 알만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에게 직접 물었다.

“밝혀지고 있습니다. 우주를 밀어내는 암흑에너지가 조금씩 힘이 빠지고 있단 사실이요.”
7월 29일, 대전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에서 만난 사피엘루 알만 중력파우주연구단 핵심연구원 및 천문연 책임연구원은 우리가 알던 기존 우주 모형이 어떤 위기에 처했는지 묻는 질문에 의미심장한 미소로 답했다.
알만 책임연구원의 주요 연구 분야는 암흑에너지와 물리 우주론(physical cosmology)이다. 물리 우주론은 우주론 모형을 연구하는 우주론의 한 분야다. 우주의 기원과 구조, 진화 등을 탐구한다. 그는 물리 우주론이 곧 우주의 정체를 탐구하는 근본적 연구라고 설명했다.
“물리 우주론은 우주 연구의 가장 중요한 파트예요. 우주를 관찰하고 이론을 세우는 파트로서, 천문학의 주류라고 보면 되죠. 우주의 생성부터 초기 구조, 물질 등 모든 우주 파트를 연구합니다. 관측, 물리, 수학 등 모든 게 융합돼 있죠. 누구는 이론 물리를, 누구는 천체 관측을 우주 학문이라고 하는데 물리 우주론은 말 그대로 ‘미션 오브 에브리띵’, 모든 것이에요. 우주의 기원과 진화를 찾는 ‘DESI 프로젝트’는 물리 우주론의 주요 연구 과제입니다.”
알만 연구원은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찾는 국제 공동 연구인 암흑에너지분광장비(DESI) 프로젝트에 ‘한국 대표(이란에서 온 그는 현재 한국 시민권자다)’ 중 한 명으로 참여 중이다. 2025년 3월, DESI 프로젝트 연구팀은 2021년 출범 후 3년간 측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는 암흑에너지가 약해지고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이번 발견으로 기존 우주 모델에 또 한 번 커다란 변혁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었다. “암흑에너지가 우리가 알던 우주상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놀라운 발견의 시작을, 지금 우리는 함께 보고 있습니다. 이 발견은 기존 우주의 표준 모형을 바꾸고, 나아가 이론 물리의 기반을 흔들 거예요.” 그가 말했다.

DESI, 기존 우주론에 정면 반박하다
기존의 우주 모형이 위기라니. 위기를 살피기 전에, 우선 기존 우주 모형인 ‘LCDM(람다(Λ) 차가운 암흑물질 모형)’이 우주의 변화 추세를 어떻게 예측했는지부터 짚고 갈 필요가 있다.
그간 우주는 팽창에 팽창을 거듭하는 걸로 알려졌다. 심지어 우주가 단순히 부풀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관찰했다. 이를 ‘가속 팽창’이라고 한다. 본래라면 우주 속의 물질에 작용하는 중력이 서로 모두를 끌어당겨 팽창을 서서히 늦춰야 하는데, 관측 결과는 줄곧 반대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은 우주를 팽창시키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우주의 팽창 속도를 더 빠르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 학자들이 이 힘에 붙인 이름이 바로 ‘암흑에너지’다.
“우주는 팽창하는 한편 비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 뭘로 이뤄져 있는 걸까요? 우리는 이에 대한 힌트가 필요했어요. 이전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 됐거든요. 암흑물질만으로는 부족한 거였죠. 그래서 암흑에너지가 추가된 겁니다. 다만 아직은 암흑에너지에 대해 아주 기초밖에 몰라요. 깜깜이인 셈이죠.” 알만 연구원은 암흑에너지가 나온 배경에 대해 부연했다.
그의 말처럼 암흑에너지는 이름 그대로 정체불명의 깜깜이 힘이다. 암흑에너지는 현재 우주 전체 에너지의 약 70%를 차지하는 요소다. 우주는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은 채로 달리고 있고, 그 가속 페달 역할을 하는 정체불명의 연료가 암흑에너지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우주의 역사를 설명하는 표준 이론인 LCDM에서, 암흑에너지가 ‘상수’로 취급돼 왔다는 점이다. 즉, 우주 탄생부터 지금까지 암흑에너지 밀도는 일정하게 유지되는 값으로 인식됐다. 그런 가정만으로도 LCDM은 현재 우주의 모습을 무리 없이 설명할 수 있었다. 이 가정에 도전한 것이 DESI 프로젝트였다.
DESI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제 공동 연구팀이 3년간 1500만 개의 은하와 퀘이사 등을 관측해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암흑에너지의 밀도가 45억 년 동안 10%가량 변화했을 가능성이 나왔다. 즉, 암흑에너지가 상수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시공간의 지도를 그리는 DESI, 우주를 밝히다
DESI 프로젝트는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분광기로 우주의 3차원 지도를 만드는 대규모 국제 공동 연구다. 한국을 비롯한 11개 국가, 천문연을 포함한 70개 기관의 천문학자 약 900명이 참여하고 있다. DESI는 어떻게 우주의 지도를 그려서 암흑에너지를 관측하는 걸까.
우선 ‘우주 지도’를 그리는 법부터 알아보자. DESI 관측 장비는 미국 애리조나주 키트피크(Kitt Peak) 산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관측 장비 속 5000개의 작은 광섬유 로봇들이 각자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천체를 쫓는다. 로봇들은 다채널분광기를 장착한 직경 4m 크기의 망원경으로 먼 거리 은하에서 나온 빛의 스펙트럼을 정밀하게 관측한다.
우주 지도를 그리는 핵심은 바로 천체에서 관측한 스펙트럼에 묻어있는 ‘적색 편이’다. 우주가 팽창하며 지구로 도달하는 빛도 덩달아 늘어나는데, 천체에서 방출된 빛의 파장이 길어져 붉은색 쪽으로 치우치는 현상을 적색 편이라고 한다. 적색 편이를 이용하면 천체까지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천체의 좌표와 거리를 확보해 우주 지도를 그린다.
“DESI는 지금껏 진행된 프로젝트 중에서 우주의 가장 넓은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DESI가 7개월 만에 수집한 데이터는 또 다른 우주지도 프로젝트였던 ‘슬론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SDSS)’가 20년 동안 한 것보다 많죠.”
암흑에너지는 이렇게 그린 우주 지도를 통해 관측할 수 있다. 비밀은 우주 지도에 녹아있는 ‘우주의 구조’다. 알만 연구원은 설명한다.
“우리는 암흑에너지에 대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습니다. 우주 속 물질과 현상들은 따로 놓인 게 아니라 모두 연결돼 있어요. 배치에는 중력, 암흑에너지 등의 영향이 스며있죠. 은하는 결코 ‘랜덤’이 아닙니다. 그래서 미지의 영역은 모두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와 연관된 거라 보고 있어요. 여러 천체와 천문 현상들을 관측하면서 암흑에너지를 이해하려는 이유죠. 우주의 구성비는 밝혀냈지만, 어떻게 분포됐는지는 여전히 모릅니다. 그럼에도 점차 컴컴한 우주의 모습이 밝혀지는 중입니다. DESI가 그 횃불이 돼 주고 있거든요. ‘BAO’ 감도를 높이면서요.”
빅뱅 직후 우주는 초고온 플라스마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는 원자가 형성되지 못하고 전자와 양성자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빅뱅 직후의 우주는 거의 균일했지만, 밀도에서 아주 작은 요동이 있었고 이 요동은 균열을 일으켰다. 밀도가 높은 부분에서는 중력이 물질을 끌어당겼고, 동시에 뭉친 입자들은 서로를 밀어낸 것이다. 이 두 힘의 경쟁으로 인해 우주 전체에 거대한 파동이 생겼다. ‘바리온* 음향 진동(BAO·Baryon Acoustic Oscillations)’이다.
바리온 음향 진동(BAO)의 역사

DESI로 더욱 정교해지는 ‘우주 표준 자’ BAO
BAO는 우주가 약 38만 년을 지날 때쯤 갑자기 전파되길 멈췄다. 우주가 충분히 냉각되며 전자와 양성자가 결합해 원자들을 형성하기 시작한 까닭이다. ‘재결합 시기(Recombination)’라고 하는 시점이다. 재결합 시기가 되면서 광자는 물질과 상호작용하지 않고 우주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이때 방출된 빛은 우리가 지금도 관측 가능한 우주배경복사(CMB)다.
BAO가 전파되길 멈추면서 우주에는 BAO 패턴이 ‘각인’됐다. 초기 우주의 파동이 만든 패턴이 우주 물질의 분포에 영향을 주고, 그 패턴을 따라 은하들이 형성됐다. 돌을 연못에 던졌을 때 생기는 물결처럼 초기 우주에서도 물질의 물결이 퍼져나갔고, 우주가 식으면서 물결 패턴이 얼어붙은 셈이다.
알만 연구원은 “우주의 은하 분포는 우리 생각과 달리 무작위가 아니다”면서 “다만 어떻게 구성됐는지 그 구조를 모를 뿐이라 ‘표준 자(standard ruler)’가 되는 BAO를 통해 밝혀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BAO 파동의 ‘마루’ 부분(3D 우주 지도에서 흰 부분)은 천체의 밀도가 높은 지점이다. 반대로 ‘골’ 부분(3D 우주 지도에서 어두운 부분)은 밀도가 낮다. 이 패턴을 관측하고 그 패턴이 얼마나 크게 보이는지 측정하면, 우주의 팽창 역사와 구성 요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BAO 패턴을 보다 더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대규모 은하 탐사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DESI를 비롯해 SDSS나 ‘유클리드 미션(Euclid)’ 같은 프로젝트들이 수백만 개의 은하를 관측해서 이 패턴을 찾아내고 있다. 2021년 시작된 DESI는 이중 가장 후발 주자지만, 이미 여타 프로젝트가 찾아낸 은하보다 많은 흔적을 찾아냈다. 알만 연구원은 DESI에 달린 5000개의 정교한 로봇이 제각기 5000개의 은하를 빠르게 찾는 덕이라고 강조했다.
“DESI에서 얻은 데이터로 우주를 팽창시킨 암흑에너지의 밀도가 지난 45억 년 동안 10%가량 변했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분석 결과대로라면 우주의 팽창 가속도가 점점 줄고 있어 현재 표준 모형을 수정해야 할 수 있죠. BAO 감도가 높을수록 은하나 퀘이사 분포 속에서 BAO 패턴을 더 선명하게 찾고, 그 크기의 미세한 변화로부터 우주의 팽창 속도와 암흑에너지의 성질을 더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DESI 같은 프로젝트가 바로 이 감도를 극대화해, 수억 개 천체의 거리를 측정하면서 암흑에너지 연구에 큰 힘을 주고 있죠.”


현재는 우주 모델이 요동치는 관측 ‘황금기’
“관측 기술이 진보하며 새로운 데이터가 자꾸 쌓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마치 데이터 ‘황금기(golden era)’ 같아요.”
알만 책임연구원은 DESI를 설명하는 인터뷰 내도록 상기된 모습을 보였다. 그가 이끄는 천문연 연구팀이 DESI 프로젝트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맡아 좋은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쿠샬 로드하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박사과정 연구원이 중심이 된 데이터 분석 논문이 많이 인용되며 주목받고 있어요.” 알만 책임연구원이 말했다.
현재 DESI는 5년으로 예정된 프로젝트 기한 중 3년까지의 관측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상태다. 남은 2년의 관측이 쌓여 우주 지도가 보강되면 우주 역사에 따른 암흑에너지의 변화 추세도 추가 분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만 책임연구원이 보는 DESI의 미래 또한 밝다. “DESI는 여타 우주망원경 프로젝트와 달리 지상에서 관측하기 때문에 고장에도 안전하고 비용도 저렴합니다. 유럽우주국(ESA)에서 진행하는 유클리드 미션도 DESI처럼 암흑에너지의 증거를 찾는 게 목표인데, DESI보다 데이터 수집 속도는 느리고 비용은 훨씬 많이 들죠.” 이미 천문연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DESI의 미래를 이을 ‘DESI 2’ 프로젝트에 관한 구상이 나오고 있다. 알만 책임연구원은 암흑에너지가 우주론의 미래를 뒤흔들 강력한 변수임을 또 한 번 강조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DESI 프로젝트는 우주의 비밀, 특히 암흑에너지가 어떻게 우주 팽창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