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젊다고 방심하지 말지어다. 뇌의 노화는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모든 건강 지표가 그렇듯, 한 살이라도 어릴 때부터 관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젊은 뇌를 가진 당신을 위해 과학동아가 (현실적인) 불로장생 가이드를 마련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찍 자고, 밥 잘 챙겨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이 왕도다. 물론 이걸 실천하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제게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기도문이다. 과학잡지에 웬 기도문이냐 하겠지만, 참고 조금 더 읽어 주길. 앞으로 할 이야기는 뇌의 노화를 막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뻔하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교과서 위주로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하는 것이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식습관과 운동이 중요하다.
뇌의 노화를 막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이번 특집 기사를 준비하며 만난 뇌과학자 모두에게 “뇌과학자인 당신이 뇌 노화를 막기 위해 실천하는 노화 방지 비법이 있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받는 네 명의 뇌과학자 모두 “비법은 없다”며 웃었다.
사실 당연한 답이다. 한 연구자의 설명을 공유한다. “저희 분야인 생물학을 전공하면 평균 공부 기간이 길어요. 그동안은 잠을 잘 자기 어렵고요, 근력 운동도 못했고요, 뇌 활성을 촉진할 취미 활동도 성실히 하지 못했죠. 다 그런 건 아니고 연구하면서도 뇌 노화 관리를 잘 챙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이제 50세에 가까워지니 좀 관심이 생기네요.”
왕도를 아는 전문가들에게도 어려운 일이 비전문가에게 쉬울 리 없다. 그러니 바꿀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키겠다는 접근법이 좋겠다. 과학동아가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도록 뇌 노화에 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정리해 전한다.
뇌 노화와 관련한 단백 질 수치 변화

바꿀 수 없는 것
당신의 뇌는 지금 늙고 있다
뇌의 노화가 무엇인지 간단하게 정의하긴 어렵다. 뇌의 노화는 기능적인 측면에선 기억력이 감퇴하고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등 뇌 기능이 안 좋아지는 경향을 말한다. 형태적인 측면에선 대뇌피질이 얇아지고, 혈류량이 감소하는 변화가 발생한다. 더 깊게는 신경전달물질이 감소하고, 뇌세포 속 유전자의 활성이 뒤바뀐다. 뇌의 노화는 이 모든 걸 다 합친 현상이다.
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노화 징후는 대뇌피질이 얇아지는 현상이다. 대뇌피질은 대뇌의 가장 바깥쪽 영역이다. 두께는 평균 2~3mm 정도다. 부위에 따라 기억이나 언어능력, 감각 등 기능이 달라진다. 대뇌피질은 통상 5~6세부터 얇아지기 시작하니, 대뇌피질의 두께를 기준으로 뇌의 노화를 판단한다면 지금 이 기사를 읽는 당신의 뇌는 늙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노화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재미있는 것은 뇌의 노화가 점진적으로 조금씩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4년 12월 중국 푸단대 국립 의학 신경생물학 및 뇌과학 MOE 프론티어 센터 연구팀은 인간의 뇌 노화가 뇌 나이 기준 57세, 70세, 그리고 78세에서 급격히 가속화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뇌 나이란, 실제 나이와 다른 개념으로 자기공명영상(MRI) 이미지를 기준으로 판단한 뇌의 노화 정도다. doi: 10.1038/s43587-024-00753-6
연구팀은 성인 1만 949명의 뇌 이미지 데이터를 인공지능(AI)에 학습시켜 뇌 나이를 판별하는 AI모델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AI모델은 성인 4696명의 뇌 이미지를 보고 이들의 뇌 나이를 추정하는 데 활용됐다.
연구팀은 동시에 뇌 나이를 추정한 4696명의 혈액에서 추출한 단백질 2922종 중, 뇌 노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단백질 13가지를 골라냈다. 그리고 이들의 뇌 나이에 따라 혈액 속 13가지 단백질의 양이 얼마나 증가하고 감소하는지 살폈다. 그 결과 뇌 나이가 57세, 70세, 78세일 때 뇌의 노화와 관련된 단백질 수치가 급증했음을 밝혔다. 연구팀은 이 현상이 57세, 70세, 78세에서 뇌의 노화가 급격히 진행됐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당신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고 해서 안심하지 말 것. 연구팀은 논문에서 “우리의 연구에는 (40세 이상인) 중년부터 그 이상 연령대 성인의 데이터가 활용됐다”면서 “따라서 40세 이하의 경우에 뇌 나이가 어떻게 변하는지는 추후 연구를 통해 더 밝혀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뇌의 노화라는 숙명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도 이걸 조금이나마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연구를 하나 소개한다. 독일 하인리히-하이네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인간의 뇌가 노화에 취약하게 된 이유가 진화에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2024년 8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doi: 10.1126/sciadv.ado2733
앞서 설명했듯, 뇌의 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는 대뇌피질의 두께 변화다. 대뇌피질에서도 전두엽의 앞부분을 덮는 부분을 전전두엽피질이라고 한다. 이 부분은 문제를 해결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등 복잡한 사고를 할 때 활약한다. 그래서 인류와 조상을 공유하는 침팬지와 비교해도 인간의 전전두엽피질은 유난히 더 많이 발달했다.
연구팀은 인간 480명과 침팬지 189마리에서 얻은 MRI 이미지를 비교해, 이 두 동물의 뇌가 진화를 거치면서 어떤 노화 특성을 얻었는지 살폈다. 분석 결과, 인간의 전전두엽피질이 진화를 겪으며 급격히 확장해 노화에 취약해졌음이 드러났다. 인간의 전전두엽피질이 노화에 의해 줄어드는 비율이 침팬지보다 더 컸던 것이다.
연구팀은 같은 변화가 침팬지의 진화 과정에서도 발생했는지 살펴보기 위해 침팬지와 마카크원숭이, 개코원숭이의 뇌 노화를 비교했다. 그러나 침팬지의 경우 자신의 친척들에 비해 전전두엽피질이 유달리 노화에 취약한 특성을 보이진 않았다. 다만 마카크원숭이나 개코원숭이보다 침팬지의 뇌에서 바닥핵 영역의 노화가 더 빠르게 일어났다. 이 영역은 도구를 다루는 능력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인간이 침팬지에 비해 전전두엽피질 노화에 취약한 것은 어쩌면 진화를 통해 이 영역을 대폭 확장시키며 발달한 대가라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침팬지가 다른 영장류에 비해 도구를 더 잘 다루게 진화한 만큼, 관련 영역인 바닥핵이 노화에 취약하게 됐다.
인간은 침팬지에 비해 고등사고를 하게 된 만큼, 관련 영역인 전전두엽피질이 노화에 취약하게 됐다. 그러니 고등사고의 왕관을 쓴 자여, 그 무게를 버텨라. 물론 이 연구가 당신에게 별로 위안이 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노화를 받아들이자.
바꿀 수 있는 것
달리기 배우기 잘 자기
“우리 몸은 늘 적당한 스트레스를 필요로 합니다. 회복할 수 있는 양의 스트레스인데, 운동과 학습이 여기 속하죠. 뻔하긴 하지만, 천천히 늙는 뇌를 갖기 위해선 운동과 학습이 중요합니다.”
양재현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그의 말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는 많다. 2020년 캐나다 서니브룩 연구소의 로라 베치오 연구원은 자발적으로 수행한 달리기 운동이 쥐의 단기 기억력과 뇌혈관 건강에 도움이 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doi: 10.1016/j.neuroimage.2020.117269
실험대상은 생후 3개월 된 쥐다. 연구팀은 이 쥐의 유전자를 변형해 알츠하이머 병에 걸리도록 만들었다. 그다음 3개월간 쥐가 ‘자발적으로 달리게’ 했다. 쳇바퀴를 마음껏 돌릴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랬더니, 쳇바퀴를 마음껏 돌릴 수 없었던 비교군 쥐보다 실컷 달린 쥐가 더 단기 기억력이 좋았음을 밝혔다. 이 쥐들의 뇌혈관을 비교했더니, 알츠하이머 병에 따른 혈관 변화도 발견되지 않았다.
뇌 노화가 걱정된다면 공부를 오래 해 보는 건 어떨까. 2015년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신경생물학(Neurology)’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른 제안이다. 연구팀은 평균 연령 63.8세인 성인 1959명의 건강검진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학습기간이 12년 초과인 성인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뇌의 노화에 덜 취약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doi: 10.1212/WNL.0000000000001884
뇌의 노화에 대해 취재하는 내내 기자는 인터넷에서 뇌 노화에 대한 수많은 속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 수면 시간과 뇌 노화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속설이었다. 밤샘을 자주 하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부분이 특히 무서웠다. 사실일까. 김재광 한국뇌연구원 치매연구그룹 선임연구원은 “실제로 대중강연을 할 때 학생들에게 밤새워 공부하지 말고 잠을 충분히 자라고 한다”고 답했다.
폐점 이후의 놀이동산처럼, 잠잘 때 우리 뇌는 조용한 듯 바쁘다. 기억을 정리하고, 뇌에 쌓여 있는 불필요한 화학물질을 깨끗이 청소해 다음 날을 준비한다. 김 선임연구원은 “뇌척수액을 통해 자는 사이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 베타와 같은 단백질 찌꺼기를 물청소하는 셈”이라면서 “(아밀로이드 베타는 알츠하이머 발병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화학물질이므로) 알츠하이머 병 예방에 수면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는 특집을 준비하며 정확히 이틀 밤을 새웠다. 치매에 한 걸음 다가간 뇌에 애도를 표한다.
바꿀 수(도) 있는 것
세상의 변화 앞에서 함께하기
운동하기, 배우기, 잘 자기. 여기까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인은 우리가 바꾸기도 쉽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보건사회학 분야의 발전과 함께 뇌의 노화가 우리 사회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2019년 말부터 2023년 중순까지 우리 사회는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유형의 위기를 겪었다. 바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선 집 밖에 나갈 수 없었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으며,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고립됐다. 2025년 지금 되짚어보면 기억도 가물가물한 코로나19의 영향은 우리 뇌에 분명히 남아있다.
2024년 9월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연구 결과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환경 변화가 청소년기의 뇌를 영구적으로 바꾸어 놓았음을 보여준다. 미국 워싱턴대 학습 및 뇌과학 연구소는 2018년 9세부터 17세 사이의 미성년자 160명을 대상으로 청소년기 동안 이들의 뇌에서 어떤 변화가 발생할지 살펴보는 장기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를 시작할 당시엔 2018년과 2020년의 뇌를 비교해 볼 계획으로 시작됐었다. doi: 10.1073/pnas.2403200121
그 사이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연구도 영향을 받아, 160명의 청소년들은 당초 계획이었던 2020년 다시 워싱턴대 연구소로 모일 수 없었다. 대신 한 해 뒤인 2021년 모여 뇌 검사를 받았다. 연구를 이끈 네바 코리건 워싱턴대 학습 및 뇌과학 연구소 연구원은 보도자료에서 “팬데믹이 확산되며 우리는 당초 연구 목표를 수정했다”면서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봉쇄가 청소년들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팬데믹 동안 집에 있어야 했다. 원래 노출됐어야 했던 사회적 그룹에서 또래 집단과 어울리지 못했다. 물론 단체 스포츠도 참여할 수 없었다. 이런 사회적 스트레스 속에서 청소년의 뇌는 빠른 노화를 겪었다. 연구팀은 팬데믹을 겪은 청소년의 뇌를 MRI로 촬영해 대뇌피질의 두께를 측정했다. 앞서 설명했듯, 대뇌피질의 두께 변화는 노화를 측정하는 주요 척도 중 하나다. 분석결과 청소년들의 뇌가 여성의 경우 4.2년, 남성의 경우 1.4년 더 빠르게 노화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연구에 참여한 패트리샤 쿨 워싱턴대 학습 및 뇌과학 연구소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여성 청소년의 경우 또래 집단과의 교류가 남성 청소년보다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노화 정도에도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들은 또래 집단과의 사회적 교류와 단체 스포츠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이런 스트레스 해소 창구는 사라진 채, 소셜 미디어 속에 팽배한 비판과 스트레스, 압박을 고스란히 받아냈어야 했던 것이다. 모든 청소년들이 고립됐고, 그것은 이들의 뇌에 드라마틱한 영향을 줬다.”
사실 세상은 언제나 스트레스가 가득한 곳이다. 이 연구에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변수는 ‘단절’이다. 사회적 고립은 사람들이 살아가며 받는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발산하지 못하게 한다. 단절로 인한 스트레스의 축적은 고스란히 뇌에 노화란 흔적을 남긴다.
2025년 겨울, 혼란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적어도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어쩌면 이 점 하나는 다행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당신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면, 집 밖으로 나와보자. 뇌의 노화란 바꿀 수 없는 숙명 속에서 ‘나와서 함께하는 것’ 만큼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