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숫가에는 육식공룡인 수각류의 발자국이 남아있고, 위협을 느낀 코리아노사우루스가 숨기 위해 땅굴을 파고 있다. 하늘에는 아즈다르코류 익룡이 날고 있다. 오른쪽은 백악기 전기의 모습이다. 물가에서 나와 물을 뚝뚝 흘리는 코리아케라톱스 뒤로 나무고사리가 자라고 있다. 뒤에서 무리지어 먹이를 찾는 공룡은 한반도의 목긴공룡인 티타노사우루스류.
코리아케라톱스와 코리아노사우루스가 어슬렁거리고, 동물들이 호숫가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겼던 곳. 중생대 한반도의 풍경이 풍성해지려면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한국의 화석 자원을 보존해 공룡 문화를 꽃피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고생물학의 미래를 그려온 전문가 세 명을 만났다. 그들이 언급한 공통 키워드는 ‘자연사박물관’이었다.
_인터뷰 01 : 한국에는 연구 중점 박물관이 필요합니다
암석 단단하고 대형 화석 적은 환경, 캐나다와는 달라
“이번 몽골 탐사도 스펙터클했습니다. 새로운 화석 산지를 찾으려 돌아다녔어요. 스물 몇 개체의 화석을 발견했죠.”
10월 8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융남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지난 9월 마무리된 2024년 몽골 화석 탐사 후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 교수는 “한국 고생물학은 1960년대 한반도의 광물 자원을 탐사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지층 연대 확인에 편리한 미화석 연구가 대세였다. 거기다 한국에서는 큰 화석이 발견되는 일이 드물다. “큰 화석이 풍부해 일찍이 척추고생물학 연구가 이뤄진 캐나다와 한국의 고생물학은 시작점부터 정반대였다는 뜻이죠.”
한국, 화석 보존에서는 세계적으로 뒤지지 않아
최근 고생물학계의 분위기는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지층 연대 확인을 위한 동위원소 측정법이 개발되면서 고생물학은 생물의 진화적 변천을 알아보는 순수 학문적 방향으로 다시 회귀하는 중”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말이다. 한국의 고생물학 현황도 나쁘지 않다. “1990~2000년대 들어서 국내 척추고생물 분야의 논문들이 게재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화석은 지금도 매년 나오고 있고요.” 실제로 화석을 찾아봐야 할 지층이 차고 넘친다. 지금까지 발굴 조사는 해안가에 국한됐지만, 손대지 않은 내륙 지역 지층이 그대로 남아있다.
화석 보존 체계는 세계적 기준에서도 훌륭한 편이다. 화석은 1962년 지정된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해 보호받고 있다. 이 교수는 화성 고정리 공룡알 화석산지를 예시로 들었다. 2000년, 시화호 간척지에서 공룡알 화석이 발견되면서 1590만m2에 달하는 면적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한국만큼 화석 보존을 잘하는 곳이 없다고 외국 연구자들도 감탄했을 정도”라고 이 교수는 기억한다.
‘자연사박물관’에 연구 인력이 필요한 이유
이 교수는 한국의 화석 자원이 보호받기 위해서 중요한 건 ‘연구’라고 밝혔다. 보존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연구해야 더 많은 화석 자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구 기관은 ‘자연사박물관’이다. “역사 공부를 하러 역사 박물관에 가는 것처럼, 우리의 자연사도 알아야 합니다. 한반도의 자연사는 중국과 몽골, 일본 등 어디하고도 다릅니다. 코리아케라톱스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공룡이잖아요? 한반도의 자부심을 세울 만하죠!”
캐나다에서 보고 온 로열 티렐 박물관은 연구 시설을 갖췄다. 심지어 미국 뉴욕자연사박물관은 자체적으로 학위도 줄 수 있다. “연구직이 없는 박물관은 박물관이 아니라 전시관일 뿐이죠. 꾸준한 연구로 새로운 화석과 콘텐츠를 채워나갈 때 박물관은 살아납니다.” 이 교수는 또한 “자연사박물관에서 연구 인력을 꾸준히 고용한다면 고생물학을 꿈꾸는 후속 세대도 늘어날 것”이라 부연했다.
이 교수의 꿈은 오랫동안 연구로 협업을 이어온 화성시에 공룡연구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화성 고정리는 우리나라 최대 공룡 화석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드러나 있는 겨우 5%의 땅에서 4가지 종류, 200개 이상의 공룡알이 나왔어요. 나머지 95%에 더 많은 화석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029년까지 ‘화성시 공룡과학연구센터’를 세워 후학들이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앞에는 그가 모습을 복원해 2014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데이노케이루스의 모형이다.

_인터뷰 02 : 나의 사명, 한국의 자연사박물관 건립
공룡의 존재를 믿게 만든 경험, 자연사박물관 건립을 꿈꾸다
“저는 처음엔 공룡을 믿지 않았어요. 생명과학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공룡을 믿지 않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9월 26일 대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원장실에서 만난 임종덕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원장은 대학교 3학년 겨울, 유럽 연수 중 자연사박물관에서 처음으로 보게 된 공룡 화석이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놨다고 말했다. “아무리 책으로 읽고 사진으로 본다고 해도 실제로 보고 느끼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깨닫게 된 계기였죠.” 첫 공룡 화석 조우라는 짜릿한 경험은 그를 미국 네브래스카대에서 박물관학을 공부하도록 이끌었다. 이후 미국 캔자스대에서 척추고생물학 분야 박사학위를 하며 화석 연구에 몰두했다.
2001년 브라키오사우루스류 이빨 화석, 2002년 한국 최초의 익룡 뼈 등을 국제 학회에 보고하며 공룡 연구에 열을 올리던 임 원장은 2006년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천연기념물센터)과 보존과학연구실장을 역임하면서 ‘국가 주도의 자연사박물관 건립’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OECD 국가 중 국가 주도의 자연사박물관이 없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그는 발굴, 연구, 보존, 전시와 교육을 모두 할 수 있는 자연사박물관을 만들기 위해선 국가의 주도가 필수불가결하다고 말한다. “자연사박물관은 무료로 운영되는데, 발굴하는 비용, 연구원을 고용하는 비용, 전시하는 비용 등을 감당하기는 어려워요. 때문에 세계에서 유명한 자연사박물관은 모두 국가가 운영합니다. 국가는 미래를 위한 가치에 투자할 수 있으니까요.”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들어온 임 원장이 처음 손댄 곳은 천연기념물센터였다. 그는 전시실만 있던 천연기념물센터에 연구동과 표본관리동 건설을 추진했고 2015년에는 수장고도 건설했다. 기존의 천연기념물센터를 발굴, 연구, 보존과 수장, 전시와 교육이 한 번에 이뤄질 수 있는 작은 자연사박물관으로 개선한 것이다.
살아있는 자연사 콘텐츠, 한국 자연사박물관의 미래
자리를 옮겨 방문한 천연기념물센터의 모습은 작지만 생생한 체험들로 가득했다. 임 원장의 주도로 변신한 천연기념물센터의 전시실에서는 공룡 발자국 화석, 알 화석 등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IT 기술을 활용한 전시물도 눈에 띄었다. 거대한 매머드 화석 앞에 있는 투명한 화면은 앞에 선 인물의 크기를 인식하고, 투명한 화면 너머의 매머드 화석에 핏줄, 근육, 살이 입혀지는 효과를 더한다. 임 박사는 “해외 자연사박물관을 다녀보면 그저 화석을 전시해 두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 IT 기술의 강점을 살려 살아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한국 자연사박물관의 큰 차별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4년 5월, 문화재청은 ‘국가유산청’이라는 새 이름과 함께 ‘국립자연유산원’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존에는 잘 관리가 되지 않던 화석을 포함한 자연유산을 이전보다 더 체계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개칭이기도 하다. 실제로 국가유산청은 전국에 흩어진 화석을 연구에 도움이 되도록 목록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임 원장은 “한국의 자연사박물관을 만들기 위한 여정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의 최종 목표는 본격적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자연사박물관인 국립자연유산원을 설립하는 것이다. “꾸준히 연구하고 화석을 모은 끝에 현재 박물관 시설은 포화 상태입니다. 이런 필요성을 국가도 인정해 국립자연유산원을 짓기로 했습니다. 언젠가는 해외에서 한국 국립자연유산원의 공룡 화석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찾아오는 날이 올 겁니다.”
_인터뷰 03 : 한국 공룡 연구의 다음 200년,사람에서 찾다
8월 19일 허민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한국공룡연구센터장)를 만나기 위해 찾은 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는 공룡 연구의 A부터 Z가 옹골차게 들어찬 곳이었다. 우선 김민국 연구원의 안내를 받아 센터 내부 연구실을 둘러봤다. 한반도 곳곳에서 가져온 화석이 노란 바구니에 담긴 채 쌓인 선반이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연구할 화석이 보관된 ‘곳간’이다. 그 옆에선 화석을 돌에서 분리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반쯤 드러난 뼈를 보며 “공룡 뼈인가?” 묻자 김 연구원은 “아직은 모른다”며 웃었다.
연구실 한쪽 벽은 통유리로 돼 있어 바깥에서 안을 훤히 볼 수 있다. 마침 밖에서는 센터를 찾은 인근 유치원의 어린이들이 재잘대고 있었다. 기자와 연구원들이 무얼 하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관람객들이 오는 게 일상적이라, 별로 신경이 쓰이진 않아요” 김 연구원이 코리아노사우루스 보성엔시스 진품 화석이 보관된 전시장을 열며 말했다.
공룡 연구의 기반을 닦은 33년, 꽃이 피기까지
한국공룡연구센터는 허 교수가 한국 공룡 연구에 바친 33년이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의 자랑인 코리아노사우루스 보성엔시스 화석은 2003년 전남 보성에서 발견된 조각류 공룡 화석인데, 처음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한국의 공룡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허 교수는 이 화석을 발견하고 국제 사회에 알린 장본인이다.
이날 허 교수는 “처음 공룡 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뭐 하러 공룡 연구를 하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한국에서 공룡을 발굴해서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구를 시작했다”고 공룡 연구에 뛰어들었던 시절을 회상했다.
공룡 연구는 과거 지구의 기후에 적응해 살아가던 고생물의 생태를 연구해 현재, 그리고 앞으로 변화할 기후에 따라 현생 생물들이 어떻게 진화할지 예측한다는 데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 더해 공룡은 그 자체가 콘텐츠로 아주 강한 힘을 가진다는 점도 중요하다.
허민 교수가 발굴부터 보존, 연구, 그리고 대중화에까지 기여한 해남 우항리 공룡익룡새발자국 화석산지는 이를 입증하는 좋은 예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이곳에는 발자국 화석을 보존하기 위해 보호각을 씌웠고, 옆에는 해남공룡박물관이 세워졌다. 허 교수의 제자 중에서는 이 박물관에서 공룡 화석을 만난 후 꿈을 키운 연구자들이 많다.
“지금 연구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현재 연구자로 활약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열정으로 공룡을 연구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미래가 있고, (저는) 그들을 위한 기초를 30여 년간 많이 닦았죠.”
정년을 앞둔 대가는 후학을 위한 제언 또한 아끼지 않았다. 그는 “캐나다의 필립 J. 커리 공룡 박물관이나 고생물학자 마틴 로클리의 주도로 만들어진 미국 콜로라도대 공룡 박물관처럼 공룡 연구가 대중화로 이어지는 거점이 필요하다”면서 “그래야 앞으로 공룡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연구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될 것”이라고 짚었다.
허 교수에게 지난 30여 년의 소회를 물었다. 그는 “현재 한국의 공룡 연구 분위기가 200년 전, 처음 공룡이란 단어가 탄생한 영국 상황처럼 열띠다”며 즐거워했다.
“우리는 영국에 200년 뒤처졌지만, 선배 연구자들의 성과 덕에 공룡을 연구하고 대중화하려는 노력이 궤도에 올라온 것 같아 자랑스럽습니다. 요즘은 공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팔레오아트나 교양서적 등 문화계에서 공룡을 알리는 사례도 많고요. 앞으로는 후학의 몫이에요. 특히나 공룡 연구는 화석 산지 지역민들과의 상생을 고려해야만 해요. 지역 경제 활성화와 밀접하게 관련있기 때문이죠. 그런 부분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용어 설명
미화석(microfossil) : 유공충 등의 플랑크톤이나 꽃가루 등 현미경으로 관찰해야 보이는 매우 작은 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