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돛단배는 ‘태양광 돛 기술(Solar Sail)’을 이용해 항해하는 우주선의 낭만적인 별명이다. 현지시각 4월 23일,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태양광 돛 기술을 실증하는 ‘첨단 복합 태양 항해 시스템(ACS3)’을 우주로 쏘아 올렸다. 현재 최대 고도 약 1000km에서 지구 궤도를 도는 ACS3는 두 달 동안 돛을 펼치고 태양광 돛 기술을 실험할 예정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든 연구자들을 직접 인터뷰했다.


태양광이 밀어내는 힘으로 나아가는 우주 돛단배
푸른 지구 위로 반짝이는 은빛 돛을 단 우주선이 날아간다. 그 모습은 우리가 기존에 보던 어떤 우주선과도 다르다. 몸체가 되는 전자레인지만 한 큐브샛을 중심에 두고, 십자 형태로 4개의 돛대가 박혀있다. 삼각 돛 4개가 돛대 사이로 팽팽하게 펼쳐져 있다. ‘첨단 복합 태양 항해 시스템(ACS3·Advanced Composite Solar Sail System)’의 외양이다. 어두운 우주에서 마주쳤다면 마치 빛을 발하며 심해를 유영하는 신비한 해파리처럼 보였을 것이다.
“ACS3의 돛은 거대한 반사면 역할을 합니다. 태양광이 반사면에 부딪히면 미는 힘을 주죠. 우리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힘이지만, 반사면을 거대하게 만들면 우주선을 움직일 수 있는 추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키츠 윌키 미국항공우주국(NASA) 랭글리 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그가 개발한 ACS3의 추진 시스템인 태양광 돛 기술을 이렇게 설명했다. 비교를 위해 초여름 바다에 떠 있는 돛단배를 상상해 보자. 선선한 바람이 불면, 공기 분자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펼쳐놓은 돛에 부딪힌다. 이때 공기 분자가 가지고 있던 운동량이 돛에 전달된다. 이를 통해 돛단배는 미는 힘을 받아 움직인다. 우주 돛단배도 비슷하다. 다만 공기 분자 대신 태양 빛, 즉 광자를 이용한다. 전자기파도 공기 분자나 다른 입자와 마찬가지로운동량을 가지며, 물체에 부딪혀 반사되거나 흡수될 때 물체 표면에 압력을 가한다. 이를 ‘복사압(Radiation Pressure)’이라 부른다.
“이때 돛의 반사도가 중요합니다.” 윌키 책임 연구원의 설명이 이어진다. “광자의 운동량(p)은 광자의 에너지(E)를 빛의 속도(c)로 나눈 값으로 계산됩니다(p=E/c). 태양에서부터 날아온 광자가 우주 돛에 부딪혀 흡수되면 광자가 가진 p만큼의 운동량을 전달할 수 있죠. 그런데 광자가 흡수되지 않고 반사된다면요? 뉴턴의 운동 제3법칙(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우주 돛이 받는 운동량은 2배인 2p가 됩니다. 우주 돛을 반사가 잘 되는 재질로 만드는 이유입니다.”
우주 돛단배는 어떻게 우주를 항해할까

태양의 광자가 돛에 부딪치며 자신의 운동량을 전달한다. 광자의 운동량(p)은 광자의 에너지(E)를 빛의 속도(c)로 나눈 값이다. 광자가 태양광 돛에 완전히 흡수될 경우(반사율 0) 태양광 돛이 받는 운동량은 다음과 같다.
ACS3의 태양광 돛 전면부는 알루미늄 소재다. 실제 반사율은 0.9에 달한다.
광자가 태양광 돛에서 완전히 반사되면(반사율 1) 태양광 돛이 받는 운동량은 두 배가 된다.
광자로부터 전달받은 운동량으로 우주선이 가속된다.
이렇게 우주 돛에 복사압이 작용하면, 짠! 우주 돛단배가 항해를 시작할 수 있다. 물론 태양광의 복사압은 미약하다. 지구 거리에서 완전 반사가 되는 표면에 작용하는 태양 복사압은 1m2 당 고작 9.08μN(마이크로뉴턴·1μN은 100만 분의 1N) 정도다. 그러니 초기에는 속이 터질 정도로 느리게 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주는 바다와 달리 저항이 없다는 이점이 있다. 바다의 돛단배는 파도 등의 저항을 받아 바람이 잦아들면 금방 속도가 느려진다.
NASA“진공 상태인 우주에서는 저항이 없으니 속도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태양과 멀어지면서 태양광이 줄면 가속도는 떨어지겠지만 가던 속도는 그대로 유지되죠.” 윌키 책임연구원의 말이다. 거기다 햇빛은 바람과 달리 잦아들 일이 없다. 우주 돛단배가 다른 천체에 가려지지만 않는다면 꾸준히 힘을 받을 수 있다.
2021년, 아르투르 다보얀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우주 돛단배를 태양 근처에 통과시키면 초속 300km까지 가속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NASA에 제시했다. 보이저 1호의 현재 속도가 초속 17km이니 그보다 18배나 빠른 속도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우주 돛단배에 어울리는 경구다.

머리카락보다 40배 얇은
돛을 펼치기까지
우주 돛단배를 현실로 만들 키포인트는 돛단배를 가볍게 만드는 ‘소재’다. 17세기 독일의 자연 철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부터 자라온 유서 깊은 아이디어인 우주 돛단배를 처음으로 성공시킨 우주선은 2010년,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발사한 금성 탐사선 ‘이카로스(IKAROS)’였다. 이카로스가 가능성을 보여준 후, NASA의 ‘나노세일(NanoSail)’, 행성 협회의 ‘라이트세일(LightSail)’ 등 다양한 우주선이 태양광 돛 기술을 시도했다.
이번에 발사된 ACS3는 이전의 시도를 기반 삼아 태양광 돛 기술을 실용화하려는 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면적이 80m2나 되는 가볍고 튼튼한 우주 돛 소재를 시험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80m2는 정사각형 은박 돗자리 36개를 합친 면적과 유사하다).
“ACS3에 설치된 돛은 탄소 섬유를 기반으로한 복합 소재입니다. 태양광을 받는 앞면에는 금속 알루미늄을, 뒷면에는 크로뮴(크롬)을 코팅했어요.” 그렉 딘 NASA 랭글리 연구센터 조립실험 수석공학자는 돛의 소재를 특히 강조했다. 앞면의 알루미늄층은 태양광을 받고 반사하는 역할을 한다.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면 지구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별인 시리우스와 밝기가 비슷할 것으로 추측된다. “뒷면의 크로뮴층은 열을 발산해 우주선의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두 개의 층을 붙여 만든 우주 돛의 두께가 2.5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 분의 1m)입니다. 머리카락 두께의 40분의 1 수준이죠.”
태양광의 복사압이 약한 만큼 돛대 등의 구조물도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연구팀은 4개의 돛을 지탱하는 돛대도 탄소 섬유와 폴리머를 조합해 만들었다. “ACS3에 실린 돛대 하나는 7m 길이지만 무게는 165g에 불과합니다. 가벼울 뿐만 아니라 유연해요. 단단해 보이지만, 이렇게 접어버릴 수 있죠.” 딘 수석공학자가 인터뷰 도중 직접 돛대를 접어 보였다. 검은색 플라스틱 하수관을 잘라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힘을 가하자 순식간에 둥글게 말렸다. “실제로 ACS3 큐브샛에도 돛대가 이렇게 돌돌 말린 형태로 실렸습니다.” 놀란 표정의 기자에게 딘 수석공학자가 말했다.
이렇게 가볍고 섬세한 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연구진들에겐 지상 실험이 오히려 난관이었다. “돛을 펼치고 포장하는 일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무슨 에어컨만 켜도 돛이 날아가 버렸으니 말이죠.” 딘 수석공학자의 푸념이 인상적이었다. 얇은 돛을 포장하고 펼칠 때 돛이 서로 얽히지 않도록 종이접기 기술을 이용해 돛을 비대칭적으로 접었다. “그렇게 돛 하나를 큐브샛에 포장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총 4개의 돛이 있으니 한 달이 걸렸죠. 펼치는 데는 25분이면 충분한데 말입니다.”
진짜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NASA는 ACS3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돛의 면적을 2000m2까지 늘릴 계획이다. 그러려면 돛의 길이가 30m 이상으로 길어져야 한다. “그 큰 돛을 어떻게 만들고 실험해야 할까요? 아직은 모르는 일입니다.” 딘 수석공학자는 말했다.



미래 우주선은 돛을 달고 있을까
과학자들은 태양광 돛 기술에 왜 이렇게 매달리는 걸까. 윌키 책임연구원은 “(우주 돛단배의) 최대 장점은 연료 제한이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켓을 사용한 기존 추진 장치는) 연료가 필요합니다. 비교적 가까운 곳을 목표로 하는 짧은 탐사 미션에서는 괜찮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장거리 미션에서는 연료가 제한 조건이 되죠. 태양광 돛 기술은 연료를 쓰지 않는 만큼 이런 제한이 없습니다.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행성계에는 기존 탐사선보다 더 빠르게 도착할 수도 있어요.”

태양광 돛 기술을 사용한 미래의 탐사선은 작고 가벼우며 날렵한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 30년 사이 과학 장비가 급속도로 경량화됐습니다. 예전에는 우주 탐사선 한 대의 무게가 0.5t(톤) 씩 나갔다면, 요즘은 큐브샛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관측 장비가 작아졌죠. 이에 비해 추진 시스템의 경량화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딘 수석공학자가 말했다. 기존의 화학 로켓 추진 시스템 대신 가벼운 우주 돛을 단다면 추진 시스템까지 가벼워진 우주 탐사선을 날려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태양광 돛 기술로 작고 가벼운 탐사선을 만들 수 있다면 우주 탐사 미션에 드는 비용도 매우 절감될 겁니다. 한 번에 여러 지점에 탐사선을 보내거나, 혹은 탐사선 여러 대를 한 번에 한 곳으로 보내는 식의 우주 미션도 가능해지겠죠.”
새로운 우주 미션의 시대를 열지도 모르는 ACS3는 5월 중 우주 돛을 펼친 후, 고도를 올리거나 낮추며 태양광 돛 기술의 추력과 제어력을 검증할 계획이다. ACS3에서 얻은 우주 돛 기술 자료는 우주 기상 조기 경보 위성, 지구 근처 소행성 정찰 위성에 쓰일 수 있다.
윌키 책임연구원은 “아직은 미션이 별 탈 없이 잘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라며,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5년 내로 두 배 정도 더 큰 사이즈로 우주 돛을 실험할 계획”이라 밝혔다. “가능하면 10년 안에 우주 돛을 활용한 우주 탐사선을 제작하고 싶어요.” 그가 내다보는 우주 돛단배의 미래다.
태양광 돛 기술은 여전히 SF 작품에 등장하는 기술처럼 보이지만 ACS3팀은 이를 현실의 영역으로 가지고 와 미래를 바꾸고 있다. 윌키 책임 연구원은 “매우 힘든 도전이었다”면서도 “어려운 도전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지난 5년 반의 프로젝트를 요약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작은 문제들을 풀어보세요. 멋진 문제는 아니더라도 풀어낸 작은 문제들이 모이는 순간 꽤 인상적인 결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환상적인 우주 돛단배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