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수학 서사를 권하는 사전
신박한 수학 사전
외계어 같던 개념이 이야기처럼 술술 읽힌다
벤 올린 지음│노승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
360쪽│2만 2000원
“이해하지 못하겠으면 그냥 외워!”란 말을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얼마나 자주 들을까? 이 말을 여태 기억하는 걸 보면, 학생 시절의 나는 분명히 꽤나 자주 들었다. 특히 수학, 물리 시간에 그랬다. 이 두 과목의 성적이 낮아서 그랬을 것이다. 저 말엔 꼭 출제되는 공식, 요점이라도 일단 반복, 암기하면 ‘시험’에서 평균 점수 이상은 받는다는 전제가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학생 시절엔 못하는 과목일수록 이해보다 점수가 급했다.
그런 까닭에 수학 성적을 신경 쓸 필요 없는 지금, ‘신박한 수학 사전’을 만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이 책은 ‘이상한 수학책’ 시리즈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수학 스토리텔러인 벤 올린의 최신작이다. 이젠 정말 수학의 개념과 공식을 마음 편히 이해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 책의 수학은 빨리 문제를 풀어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고 닦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제 수학을 외국어처럼 새로운 언어로 읽어보자고 권한다.
‘신박한 수학 사전’의 제목은 ‘신박한’에 무게가 실려 있다. ‘사전’이란 진지한 단어가 붙어 있지만 말이다. 우선 이 사전은 ‘숫자는 명사’ ‘연산은 동사’ ‘공식은 문법’이라고 정의한다. 수를 구체적인 사물, 즉 명사로, 연산 기호는 명사를 움직이는 동사로 능숙하게 재구성하는 저자를 따라가다보면 수와 기호만 나열된 추상적인 계산들도 구체적인 사건으로 서서히 생생해진다. 더 나아가 이 책은 방정식과 그래프까지, 숫자라는 주어가 기호로써 움직이는 흥미진진한 서사로 확장시킨다.
예를 들어 ‘신박한 수학 사전’은 음수를 ‘없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다시 정의한다. 10+1의 ‘+’는 전치사로 바꿔서 “10과 함께 있는 1”로, 뺄셈도 ‘음수 더하기’로 읽어서 10-1을 10+-1로 풀어낸다. 이런 관점 전환이 답을 요구하는 명령문·의문문의 수학을 일상적인 평서문의 수학으로 바꿔 읽는 핵심이다. 저자는 수학 스토리텔러답게 낯익고 어려운 문제도 실은 낯설고 쉬운 이야기라고 독자를 납득시킨다.
수학을 잘하려면 결국 암기보다 개념 이해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그 이해의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질문과 적절한 설명은 쉽게 생략된다. “직접 셀 수 없는 음수는 왜 필요할까?” “방정식은 왜 미지수와 등식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같은 의문 말이다. ‘신박한 수학 사전’은 바로 이런 진지한 질문과 신박한 대답도 아우르며 수학의 개념을 정의한다.
언어는 사실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수단인 동시에, 각자의 생각과 바람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렇다면 정답을 빨리 찾는 건, 수학이란 언어의 용법 중 일부일 뿐이다. 다양한 개념을 써서 누구나 확장시킬 수 있는 새로운 수학 서사를 ‘신박한 수학 사전’에서 시작해보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한 탁월한 의학·신경학 논픽션을 여러 권 쓴 저술가이자 세계적인 신경학자, 의사인 올리버 색스는 지난 2015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붙은 신간 ‘디어 올리버’를 보고 잠시 놀랐다. 단지 색스와 같은 명사의 이름값에 기댄 에세이인지도 의심해봤다. 올리버 색스와 이 책의 또 다른 저자인 수전 배리 미국 마운트홀리요크칼리지 생물학·신경과학 교수가 주고받은 편지, 이 소식들의 행간을 돌아보는 배리 교수의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은 바뀌어갔다. 사려 깊은 두 과학자의 맑은 우정 덕분이다.
‘디어 올리버’는 어릴 때부터 사시로 두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아서 시각이 2차원으로 인지되는 ‘입체맹’이었던 배리 교수가, 48세에 이르러서야 시각 훈련 등으로 3차원의 입체 세계를 보게 되며 시작됐다. 배리의 입체시 회복은, 유년기를 지나면 입체시가 발달할 수 없다는 의학계의 정설을 거스른데다 배리 자신이 신경생물학자여서 의미가 더욱 큰 사건이었다. 결국 배리는 자신이 애독한 책들의 저자이자, 예전에 한 번 만났던 색스에게 자신의 시각 경험을 담은 긴 편지를 보낸다.
배리는 사실상 초면인 색스에게 이 편지를 써도 될지 꽤 망설였고, 이미 저명인사였던 그의 답장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만에 뜻밖의 답장이 오고 뉴욕주의 색스와 동료 전문가들이 배리의 매사추세츠주까지 찾아와 그의 입체시 회복 경험을 들으며, 둘의 관계도 빠르게 깊어진다. 입체시 회복 전후의 개인적 변화를 진솔하게 전한 배리와 배리의 시각적 경이를 경청한 색스가 탁월한 케미를 이룬 셈이다.
이렇게 두 과학자의 편지는 색스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3주 전까지, 10년간 150통 넘게 이어졌다. 이 서신 교환은 배리의 입체맹과 입체시 회복 경험을 둘러싼 두 사람의 학문적 긴장을 거쳐, 안구 흑색종을 진단받은 노년의 색스가 입체맹이 되고 시력마저 잃어가는 시련까지 이어진다. 입체맹을 경험했던 배리가 색스의 상실감을 위로하며, 이 과학자들은 더 깊고 맑은 공감에 접어든다. 서로의 감각과 세상을 존중하며, 가장 힘든 순간에 서로의 일부가 된 과학적 우정이 인상적이다.
| 흐르는 시간을 바로잡는 궁극의 물리학
시간은 흐르지 않고 우주 전체에 퍼져 있다는 현대물리학의 정수를 쉽게 설명해주는 책이다. 뉴턴은 지구를 포함한 우주 전체에 시간이 동일하게 흐른다고 생각하며 이것을 절대 시간이라고 불렀다. 반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며 장소마다 다른 시간이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아인슈타인이 옳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왜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까? 이 궁극적인 의문에 답하는 책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착각 요시다 노부오 지음 〡 김정환 옮김 〡 강형구 감수 〡 문학수첩 〡 216쪽 〡 1만 6000원
| 경계 너머의 한계를 찾아가는 SF
경계 너머를 이해하려고 갈망하며 자신의 한계에 직면하는 인류의 본질을 통찰하는 SF 작가 김초엽의 현재를 담은 책이다. “인간의 재료가 달라지면 인간과 세계의 상호작용도 바뀌지 않을까?”란 질문과 함께 욕망과 의지의 문제를 다룬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한 몸에 있는 두 인격체가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갈등에서 출발해, 사회의 정상성 규범 밖에 놓였던 정체성을 존중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양면의 조개껍데기’ 등 인간성의 본질을 묻는 7편의 중·단편소설이 실렸다.
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〡 래빗홀 〡 384쪽 〡 1만 7500원
| 우리 삶을 바꾸는 인체의 여섯 열쇠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 코르티솔, 엔도르핀, 테스토스테론. 우리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이 여섯 물질을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추락했던 자신감이 회복되기도 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평화를 찾기도 한다. 이 책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이런 특별한 호르몬 조합을 ‘칵테일’에 비유한다. 저자는 그간 연구된 호르몬 ‘레시피’를 토대로, 호르몬 칵테일 각각의 특성과 영향력부터 독자의 현재 상태에 따라 뭘 마셔야 하는지까지, 마치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처럼 재치있게 설명한다.
인생은 호르몬 데이비드 JP 필립스 지음 〡 권예리 옮김 〡 윌북 〡 252쪽 〡 1만 8800원
| 초지능 시대를 앞둔 인류의 좌표
세계를 움직이는 테크 업계의 거물들이 범용인공지능(AGI)의 시대가 5년 내에 현실화될 것이라고 하나같이 장담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의 ‘모든 능력’을 대체할 수도 있는 AGI의 초지능 시대가 임박했음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며 그 파급력을 예측하고, 곧 인류가 직면할 윤리적·정치적·철학적 질문들을 미리 제기한다. AGI에 이르는 인공지능(AI)의 기술적 기초에서 시작해 인류 문명의 운명을 좌우할 다양한 미래 시나리오까지 촘촘히 살피며, 지금 우리를 기다리는 사유의 좌표로 나아간다.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 김대식 지음 〡 동아시아 〡 260쪽 〡 1만 8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