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가장 좋아한 책은 단연 ‘백과사전’이었습니다. 백과사전은 제가 알고 싶은 온 세상의 지식을 다 담고 있었죠. 하늘과 땅과 바다는 물론, 그곳에 사는 생물들까지 백과사전에 담긴 모든 지식이 신기했고 항상 더 많이 알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 생명공학이 바꿀 미래를 꿈꾸다
다양한 관심사 속에서도 신약 개발을 하는 연구원이 되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던 건, 초등학교 5~6학년 때쯤으로 기억합니다. 21세기를 앞둔 당시엔 인간 세포나 동물 복제 같은 뉴스들이 잇달아 전해졌고, 질병 치료에 대한 기대와 함께 생명 윤리에 대한 문제를 함께 다루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렸던 제가 정확히 이해하기엔 이런 기사들은 상당히 어려웠죠. 하지만 21세기에 질병 치료의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학동아’를 처음 만난 것도 중학생 때로 기억합니다. 도서관에서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학교 도서관에 매달 오는 새 과학동아를 읽는 시간이 특히 즐거웠습니다. 생명공학 기사뿐만 아니라 저를 둘러싼 지구와 우주에 관한 다양한 기사들이 있어서 세상에 대한 저의 다양한 호기심을 채워줬죠. 과학동아가 도서관에 새로 올 때마다 같은 기사를 반복해서 읽다가, 유난히 흥미로운 기사가 있을 땐, 용돈을 아껴서 따로 그달 과학동아를 구매했을 정도입니다. 과학동아의 기사들은 교과서보다 최신의 흥미로운 주제가 많았고, 이렇게 익힌 지식들이 세상을 좀 더 넓게 보며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줬습니다.
이후 2003년에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인간의 약 32억 개 유전 서열이 확인됨으로써, 생명공학은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이에 관한 최신 과학의 뉴스들을 접하며, 생명공학을 전공해 신약 개발 연구원이 되겠다는 제 꿈을 점차 굳혔습니다. 중학교 때까진 일단 상위권 정도의 성적이었으나, 이 꿈을 이루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고 고등학교에선 성적이 많이 올라 POSTECH 생명과학과에 진학했죠.

면역학 전공의 계기, 호스피스 병동
POSTECH 학부생 시절엔 한 대학병원에서 임상 연구를 체험하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 활동을 한 방학 프로그램이 기억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학부생에겐 드문 기회여서 동기 몇 명과 서둘러 신청했죠. 당시엔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학부 선배가 많았던 터라, 의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호기심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방학 동안 옆에 붙어서 바라본 의대 선생님들은 너무 바쁘셨고, 의대생이 아닌 제가 짧은 프로그램 기간에 얻은 지식도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 활동을 한 일주일 동안 큰 배움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호스피스 병동엔 암 환자분이 많이 계셨는데, 대부분의 말기 암 환자분들이 많이 여윈 채 고통스러워하셨고, 이를 지켜보는 보호자들의 큰 슬픔과 고통도 느꼈습니다. 저는 이때 말기 암 환자를 처음 접했는데, 전날까지 제 인사를 받아주신 환자분이 밤사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암의 무서움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때부터 제겐 암이란 질환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면역학 강의를 들으며 암이나 알러지 등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여러 질환이 면역 질환에 속한다는 점도 배웠죠. 이렇게 이어진 경험들이 제가 면역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POSTECH은 졸업 연구 주제와 해당 연구실을 정해서 연구 참여를 하는 것이 학부 졸업의 필수 요건입니다. 면역학 전공을 결심했으므로, 면역학 교수님께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다음 학기부터 연구 참여를 하고 싶다고 바로 연락드렸죠. 그렇게 연구실에서 면역학을 더 깊이 공부하며, 이 분야가 점점 더 좋아졌습니다. 그중에서도 체내 면역 조절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서, 면역 억제 세포 연구실이 있는 서울대 대학원에 지원하여,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석사 과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연구 참여로 1년 반가량 연구실 생활을 해봤으니 대학원 생활을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생으로서의 연구실 생활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선행 연구를 다룬 책과 논문을 읽는 학부생의 공부와 스스로 연구 주제를 잡고 그 주제를 실험적으로 증명하는 대학원생의 연구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죠. 그때까지의 제 삶은 비교적 순탄하게 흘러왔는데, 인생 최대의 난관에 부딪힌 것만 같았습니다. 연구자 생활을 시작하며 맞닥뜨린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몰라서 많이 헤맸습니다. 이때 선배들과 동기들의 도움과 조언이 특히 큰 힘이 됐습니다.

암을 치료하는 백신 개발의 희망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지도교수님이 대표로 재직 중이신 (주)셀리드에 입사했습니다. 셀리드는 지도교수님의 오랜 면역학 연구를 바탕으로 개발한 신약의 임상 진입과 상용화를 목표로 설립된 바이오 벤처기업입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참여한 연구로 개발된 항암 신약이 임상 단계에 진입하려면, 어떤 추가 연구를 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현재 셀리드에서 저의 주 업무는 신약 개발을 위한 후보 물질의 유효성 평가입니다. 초등학생 시절의 꿈을 어느 정도 이룬 셈이죠. 현재 개발 중인 신약은 항암 치료 백신과 감염병 예방 백신입니다. 백신은 주로 질병 예방 수단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기본적으로는 인체에 투여해 체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의약품입니다. 백신이 유도한 면역 반응이 질병 치료에 활용되면 치료 백신, 예방에 활용되면 예방 백신입니다.
대학원생 시절엔 질병을 학문적으로 이해하고, 신약 개발도 약효 증진이나 체내에서의 새로운 작용 메커니즘을 주로 연구했습니다. 반면 제약 기업에서 현재 연구하는 신약 상용화는 실제 환자에게 투여 가능하고 안전한 신약의 개발이 핵심 목표입니다. 대학원과 달리 기업의 신약 개발 연구에선 신약의 효능 검증과 함께 이 약이 환자에게 안전한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 차이를 항상 의식하며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신약을 연구, 검증하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제가 연구자로서 앞으로 익힐 것이 많다는 사실에 도전 의식을 느낍니다.
신약 개발 연구원을 꿈꾼 어린 시절부터 실제 그 연구를 해나가는 지금까지, 저의 가장 큰 힘은 가족들의 지지입니다. 부모님은 학교 공부를 강요하지 않으셨고, 생명공학으로 진로를 정할 때도 제 결정을 믿고 지지해주셨죠. 넉넉한 가정 환경은 아니었지만 아끼지 않고 지원해 주신 덕분에 항상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신뢰와 지지야말로 제가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목표를 이루어가는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지에 항상 감사하며 보답해야겠다는 마음도 있죠. 이런 마음들이 모여 지금까지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극복해 나갔습니다. 특히 제가 신약 개발 연구자로서 꿋꿋하게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지금까지의 신뢰에 답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더 넓은 관심으로 더 큰 과학을
현재의 제가 어릴 적 꿈을 모두 이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제약업계에서 신약 개발 연구원으로 일하는 건, 꿈을 이루기 위한 자격 요건을 갖췄을 뿐이죠. 이 분야의 연구자로서 해야 할 연구와 갖춰야 할 역량은 아직 많습니다. 지금까지의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신약 개발 연구원으로서의 역량을 계속 키워나가는 것이 현재의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학생이신 독자 여러분께는 관심사를 넓게 가지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특정 분야의 전공자가 되면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과학이 기존의 경계를 넘나들어 융합되며 새로운 영역을 만들고 있습니다. 너무 좁고 적은 관심 분야만 파고들면 트렌드를 따라가기도 벅차서 결국은 뒤처지기 쉽습니다.
신약 개발도 오래전부터 재료공학, 기계공학 등이 접목되며 발전했고, 최근엔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도 결합되며 연구의 효율성을 크게 높이고 있습니다. 관심 영역을 계속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가 생각하는 이유죠. 여러분이 활동할 과학에서도 다른 과학, 기술로 시야를 넓히는 자세가 더욱 필요해질 것입니다. 과학동아는 최신 과학과 공학을 재밌게 접할 수 있는 매체이니, 과학적 시야를 넓힐 때도 유용할 것입니다. 언제든 어느 과학이든 내 일에 접목될 수 있습니다.
나만의 과학동아 활용법
Q.과학동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나요?
우주에 관한 기사를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우주의 생성, 블랙홀이나 우주 탐사와 관련된 기사가 특히 좋았습니다. 내겐 넓은 밤하늘일 뿐인데, 상상도 안 되는 시공간의 규모로 많은 일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 광활한 우주에서 나는 너무나 작은 존재란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Q.과학동아를 실제로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요?
어릴 적엔 공부 중에 잠시 쉬고 싶을 때,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과학동아를 읽었습니다. 지금도 도서관에 들를 때면 정기간행물 코너에서 과학동아를 읽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기도 하지만, 지금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과학 기술이 여전히 궁금합니다.
Q.과학동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꿈을 갖는 것도, 그것을 이루는 과정도 모두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는 자에게 기회는 오지 않는 법!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경험만으로도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