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리엄스는 지난 2~3년간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어요.” 안겔로스 치아파라스 수석(치프) 엔지니어는 2023년 11월, 윌리엄스로 이직해 왔다. 그는 2017년부터 6년 5개월 동안 레드불에서 디자인 엔지니어로 일했다. 공기역학 엔지니어가 차체 주변의 공기역학 성능을 연구해 설계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라면, 디자인 엔지니어는 공기역학을 포함해 기계, 전자 등 여러 파트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실제 제작 가능한 도면 및 부품으로 설계하는 역할이다. 치아파라스 치프 엔지니어는 레드불에서 서스펜션 시스템과 유압 및 공압 부품의 설계 등을 담당했다.
그가 윌리엄스로 이직한 직후의 직함은 ‘콘셉트 디자인 책임자’였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수석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두 직함의 차이가 궁금했던 기자의 질문에 치아파라스 수석 엔지니어는 “윌리엄스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술, 인력, 심지어 조직 구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달라졌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다소 뚱딴지같은 대답에 기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자 치아파라스 수석 엔지니어는 웃으며 대답을 이어갔다. “윌리엄스는 더 이상 특정 엔지니어링 부서로 나눠져 있지 않게 됐어요. 차량 콘셉트 디자인 책임자는 과거 디자인 업무만 담당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레이스카 전반의 모든 부서를 아우르는 역할에 집중하는 것으로 바뀐거죠.”
2026년은 F1에 대대적인 변화가 예고된 해다. 차체 크기와 무게, 타이어 폭이 줄어들고, ‘그라운드 이펙트’가 폐지된다. 현재 F1 차량은 차체 바닥(플로어)에 공기를 흡입하는 통로를 뚫어 차를 노면 쪽으로 빨아 당기는 힘(다운포스)를 생성하는데, 이 바닥 아래 공기역학 설계가 없어질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드라이버를 보호하는 차량 구조도 개선된다.
치아파라스 수석 엔지니어는 현재 2026년 윌리엄스 레이스카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레이스카를 구성하는 부품과 이를 담당하는 부서가 서로 상충하는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상충 지점을 효과적으로 조율하고, 우선순위를 올바르게 선택하며 타협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다 떠오르는 게 있었다. 메인 팩토리 빌딩, 신분카드를 찍고 복도를 지나오자마자 마주한 벽에 적혀있는 글귀가 있었다. “벽 포스터에 ‘Driven as one team’이라고 적힌 문구를 봤는데, 수석 엔지니어로 특히 와 닿는 문장일 것같다”는 기자의 말에 치아파라스 수석 엔지니어는 몇 번이곤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에요. 윌리엄스는 오롯이 F1 레이스카를 만드는 데만 집중하는 팀이에요. 다른 F1 팀과 다르게 상용차를 만들지 않죠. 이 점은 이곳에서 일하는 모두가 단 하나의 가치 그리고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하나로 얽혀 있단 뜻이에요. 지금의 목표는 과거 윌리엄스의 영광을 되찾는 거고요.”
치아파라스 수석 엔지니어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엔지니어링 부서에 비난하지 않는 문화를 도입하고 확립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혁신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타인을 비난하지 않는 태도를 팀 내 모두가 갖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잘못된 선택에 따른 책임을 누군가 져야 한다면 그건 저 같은 관리자의 역할이죠.”


모터스포츠 정점의 F1
F1 팀에서 일하고 싶다면
레이스카를 만드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팀을 운영하는 이들 역시 2026년을 바쁘게 준비하고 있다. 앨리스 잭슨 신입 채용팀 직원은 “변화에 대비해 더 많은 인재를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F1은 모터스포츠에 종사하길 바라는 전 세계 인재들의 꿈의 무대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경쟁적으로 지원서를 낸다. 하지만 F1팀들은 항상 ‘구직난’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F1 팀에서 원하는 사람과, 실제 지원자 사이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잭슨은 이에 대해 “열정과 기술적 준비 수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지원자가 F1에 대한 열정은 크지만, 공기역학이나 데이터 분석 등 구체적인 기술 역량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F1의 화려함에 끌리지만, 우리는 단순히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니거든요.”
윌리엄스는 최근 인재 채용 파이프라인을 정비했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2년 간의 교육 및 실습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돼 윌리엄스 직원들과 함께 일한다. 대학 재학 중 12개월 동안 윌리엄스에서 일을 하는 산업 인턴십 제도도 운영 중이다. 여름 방학 9주 동안 집중적으로 모터스포츠와 윌리엄스의 여러 비즈니스를 경험할 수 있는 여름 인턴십 프로그램도 있다. 또한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청년들이 약 3년 동안 배우면서 일하는 도제식 직무 훈련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영국 내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참여할 수 있는 인재 개발 프로그램도 있다. “고마쓰-윌리엄스 엔지니어링 아카데미는 매년 10명의 학생을 선발해 윌리엄스에서 직접적인 엔지니어링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돕고 있어요.” 일본의 건설장비 제조사인 고마쓰 주식회사가 윌리엄스와 함께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STEM 레이싱 월드 파이널’을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
STEM 레이싱 월드 파이널은 전 세계 중·고등학생이 팀을 구성해 미니어처 F1 레이싱카를 직접 설계 및 제작해 경주하는 STEM 교육 프로그램이다. 국가별 대회를 통과한 팀들이 모여 결선을 펼치며 2025년 결선 경기는 싱가포르 그랑프리와 함께 개최된다.
최근 한국에서도 F1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엔지니어나 메카닉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잭슨에게 “윌리엄스에 지원하고자 하는 과학동아 독자에게 팁을 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을 정확하게 보여주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잭슨은 이력서를 늘 최신 상태로 유지하는 것, 글을 문법적으로 정확하게 쓰는 것 등이 자신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방법이라 설명했다. 자신의 역량과 지원 업무를 연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의 가치와 윌리엄스의 가치를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윌리엄스는 개인의 성장 가능성과 발전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겨요. 지원할 때 윌리엄스에서 배우고 싶은 것과 성장하고 싶은 부분을 드러낸다면 분명 인상 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