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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레이스카 부품 제작부터 조립까지 메인 팩토리 빌딩

    ▲Atlassian Williams Racing
    윌리엄스 메인 팩토리 빌딩 내 금속 가공 구역. 원재료를 고성능 부품으로 만들기 위해 금속을 가공하는 장비가 넓은 공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메인 팩토리 빌딩으로 들어서면 안내 데스크가 설치된 리셉션 공간이 있다. 이곳에는 1994년, 전설적인 드라이버 아일톤 세나와 데이먼 힐 등이 몰았던 FW16이 설치돼 있다. 리셉션 오른쪽, 신분카드를 찍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긴 복도를 따라 들어갔다. 복도 끝에 F1 금속 부품과 재료를 만들고 검사하는 ‘금속 가공 구역’이 있었다.


    공장엔 알루미늄을 가공할 때 쓰는 기름 냄새가 가득했다. 커다란 내부 공간은 수십 개의 기계로 가득 차 있었다. “바로 위층에 엔지니어들의 사무실이 있어요. 그곳에서 3D 설계 도면이 내려오면 이곳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하는 거예요.” 안내를 맡은 엘라 윌튼 커뮤니케이션팀 담당자가 말했다. “부품은 크기나 복잡한 정도에 따라서 제작에 걸리는 시간이 다른데, 제작이 끝나면 안전성 검사를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에 부품이 완성되는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요.” 특히 F1의 부품은 크기에 상관없이 드라이버의 안전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윌튼은 “크래시 스트럭처 부품일 경우 검증 단계가 추가된다”고 설명했다. 크래시 스트럭처란 사고가 났을 때 드라이버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에너지 흡수 장치다. 트랙에서 부품이 부러지면 드라이버 안전을 크게 위협하기에 실제 하중을 걸어 실험하기도 한다.


    좀 더 공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건 액체 플라스틱을 녹여 원하는 부품을 만드는 3D 프린터예요. 지금 인쇄하는 건 남은 시간이 14시간이라 나오네요. 44.2% 진행된 상태고요. 여기서 만드는 부품은 주로 풍동 실험을 할 때 사용하죠.” 


    F1은 서킷에서 새로 개발한 부품을 장착해 실험 주행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거대한 송풍기로 바람을 만들고 이를 통해 공기의 흐름과 공기역학적 성능을 확인하는 풍동 실험이 매우 중요하다. 풍동 실험에는 실제 레이스카를 사용하지 않고, 실제 대비 약 60% 크기로 축소한 모델을 사용한다. 다만 풍동 사용 시간 역시 규정에 따라 제한돼 있어, 각 팀은 효율적인 개발을 위해 3D 프린팅으로 모델 부품을 만들어 실험에 사용한다. 금형은 제작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다. 3D 프린터가 없던 시절에는 모든 부품을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윌리엄스에서는 약 11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윌튼처럼 마케팅, 법무, 인사 등 기술과 관계없이 팀 운영 전반에 관여하는 인원은 소수며, 대부분이 레이스카 제작에 참여한다. “본부 내 기계는 1년, 365일 24시간 내내 가동된다고 보면 돼요.” 실제 F1에서 모든 기술 개발 및 차량 제작이 전면 중단되는 것은 약 2주가량이다. 2009년부터 여름철 셧다운(shutdown) 제도가 공식적으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2025년 윌리엄스의 셧다운은 8월 11일부터 24일까지였다.


    제조 구역에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공장 끝 쪽에 레이스 베이(race bay)와 함께 제조된 부품을 조립하고 테스트하는 공간이 나왔다. 레이스 베이는 레이스카를 다루는 공간이다. 그랑프리 시작 전 레이스카를 조립하고, 점검하며 그랑프리가 끝난 뒤에는 이곳에서 레이스카가 분해된다. F1 레이스카는 일반 양산차량과 달리 모듈식 구조로 돼있다. 때문에 빠른 분해 및 조립이 가능하다.


    이날은 네덜란드 그랑프리가 막을 올린 날로, 레이스 베이는 텅 비어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윌리엄스의 두 드라이버, 카를로스 사인츠나 알렉스 알본의 레이스카는 보통 어디에서 조립하고 분해하는지 물었다. 총 4개의 칸 중 알본의 차량은 대개 3번에서, 사인츠의 차량은 2번에서 작업이 이뤄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Atlassian Williams Racing
    탄소 섬유 복합재를 정밀하게 가공할 수 있는 장비인 지머만 CNC 밀링 머신. 수십 마이크로미터(μm) 단위까지 제어해 공기역학 파츠부터 금형, 구조 부품을 직접 제작할 수 있다(위). 풍동센터의 핵심인 거대 송풍기의 모습(아래). F1 경기 속도 수준의 바람을 만들어 실제 레이스 환경을 실내에서 재현하는 핵심 장치다.

     

    수백 개의 나침반이 북쪽을 가리키듯
    한 곳을 바라보는 엔지니어들

     

    레이스 베이에서 곧 반가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김효원 공기역학 엔지니어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김 엔지니어는 2010년 3월 F1에 첫 발을 내디딘 뒤 지금까지 16년간 F1에서 공기역학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김 엔지니어는 윌리엄스 공기역학(에어로다이내믹) 프로젝트 리더 직을 맡고 있다. 레이스카는 구역을 나눠 개발이 이뤄진다. 김 엔지니어는 올해 봄부터 리어윙(뒷쪽 날개)과 리어윙에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의 공기역학적 성능을 개선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가 이끌고 있는 리어윙 그룹에는 총 5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공기역학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풍동 실험에 사용하는 축소 모형을 디자인하는 인력까지 포함된다. 그에게 관리자급 엔지니어의 역할에 관해 묻자 “윌리엄스가 추구하는 레이스카 개발 방향에 맞게 리어윙을 개발하는 게 맞는지를 끊임없이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고 답했다. 또 워낙 일이 많고 바쁘다 보니 팀원들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것도 리더의 역할이다.


    F1 팀은 매년 레이스카를 새로 개발해 선보인다. 그러면서 시즌 중에도 레이스카의 단점을 보완하거나 그랑프리가 열리는 서킷 특성에 맞춰 새로 개발한 부품이나 여러 부품을 묶은 ‘패키지’ 업데이트를 진행한다. 때문에 F1 엔지니어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 찾아야 한다. 김 엔지니어는 “이때 문제는 차량의 성능을 더 좋게 만들 방법이 단 한 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윌리엄스가 택한 개선 방향이 다른 팀의 개선 방향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지 않으면 개발의 의의가 사라진다. 따라서 방법을 찾는 일은 언제나 치열하다.


    “나침반은 수백 개를 갖다 놓아도 모두가 한쪽 방향으로 정렬돼 있잖아요.” 김 엔지니어는 F1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삶을 나침반에 비유했다. 특히 그는 2022년, 윌리엄스로 팀을 옮긴 뒤 1000명이 넘는 윌리엄스의 직원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일을 하는 느낌을 크게 받는다고 말했다. “지금 윌리엄스는 모두가 서로를 돕고 또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는 구성원들의 마음가짐이 분명히 있어요. 힘들거나, 괴로울 때 사람들은 쉽게 날카로워질 수 있는데 여기선 최대한 배려하려 하거든요.”


    “F1에서 혹은 윌리엄스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기자의 질문에 김 엔지니어가 웃으며 대답했다. “포디움에 오르는 것 그리고 그랑프리 우승을 하는 것, 마지막으로는 챔피언십 우승을 다시 차지하는 거죠.”

     

    ▲김소희
    김효원 윌리엄스 공기역학 엔지니어가 2010년 1월 첫째 주(당시 주간지) ‘오토스포츠’ 잡지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김 엔지니어는 이 잡지에 실렸던 르노 F1 팀 구직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냈다.

     

    ▲김소희
    엘리자베스 우드-보이어 윌리엄스 퍼포먼스 최적화 엔지니어는 2020년 7월부터 약 4년간, F1 그랑프리 현장에서 일했다.

     

    트랙 바깥, 엔지니어들이 만드는
    F1 포디엄과 우승의 영광

     

    8월 29일은 네덜란드 그랑프리의 첫째 날이었다. 대개 그랑프리는 총 3일간 개최되며 첫째 날에는 두 번의 연습 주행(프랙티스) 경기가 열린다. 때문에 윌리엄스 본부는 다소 한산한 편이었다. 경기 현장에서 레이스카와 드라이버를 지원하는 인력들이 모두 네덜란드 잔드포르트 서킷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서킷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는 트랙 사이드 엔지니어라고 부른다. 본부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실제 경기에서 100%의 성능을 발휘하도록 관리하는 현장 전문가다. 트랙 사이드 엔지니어에는 드라이버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경기의 전략과 차량 세팅 값을 조율하는 레이스 엔지니어부터, 레이스카의 상태를 최적화하는 퍼포먼스 엔지니어 등이 모두 포함된다. 퍼포먼스 엔지니어는 경기가 있는 주말 동안 레이스카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데이터를 실시간을 분석하고, 다시 현장에 맞춰 레이스카 상태를 최적화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 외에도 파워유닛의 시스템과 전자 시스템을 관리하는 시스템 엔지니어나, 타이어 상태를 확인하고 전략을 짜는 타이어 엔지니어도 함께한다.
    잔드포르트에 가 있는 이들을 만날 순 없었지만, 엘리자베스 우드-보이어 퍼포먼스 최적화 엔지니어가 트랙 사이드 엔지니어 경험에 대해 들려줬다. 그는 2020년 7월부터 약 4년 동안 트랙 사이드 퍼포먼스 엔지니어로 일했다.


    “트랙 사이드에서 일하는 퍼포먼스 엔지니어는 공항의 관제사 같은 역할을 해요. 앞선 시즌, 시뮬레이터에서 나온 데이터는 물론 그랑프리 주말 동안 차량에서 실시간으로 나오는 데이터를 분석해 언제나 레이스카가 최선의 상태가 될 수 있게 하는 일이죠.” 우드-보이어 엔지니어는 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다. 2018년 윌리엄스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피트스톱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며 F1에 첫발을 내딛었다.


    우드-보이어 엔지니어는 메카닉들이 타이어를 교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는 업무를 1년 내내 맡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매주 주말마다 레이스 운영실에서 일했는데 일요일 저녁마다 프랭크 윌리엄스가 제 자리로 와서 피트스톱 속도가 얼마나 빨라졌는지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는 약 1년간의 인턴십이 끝난 후 학교로 돌아와 석사학위를 받았다(영국은 4년제 학석사 통합 학위 시스템을 운영한다). 그리고 2020년, 다시 윌리엄스에 정식 입사했다.


    대부분 트랙 사이드 엔지니어는 F1 본부에서 오랜 경험을 쌓고 이동하지만 우드-보이어 엔지니어는 입사 후 바로 서킷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2020년 윌리엄스는 이전과 다르게 팀을 구성하려 했고 당시 신입 엔지니어에게 트랙 사이드 엔지니어로 일할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턴십 동안 레이스 운영실에서 근무하며 보고 배운 기술과 노하우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퍼포먼스 엔지니어도 팀으로 일을 해요. 저는 두 명의 시니어 엔지니어와 함께 일했죠. 그리고 하나의 팀은 한 명의 드라이버와 짝을 이루며 일하고요. 저희 팀은 니콜라스 라피티와 로건 사전트 드라이버와 함께 일했죠.” 우드-보이어 엔지니어는 라피티와 사전트의 레이스카의 브레이크를 관리하며 적정 온도로 유지하는 일을 맡았다. 이를 위해 연료를 얼마나 넣을지, 스티어링 휠에서 드라이버가 다룰 수 있는 전자 장비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우드-보이어 엔지니어의 일이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스티어링 휠의 설정 값만 바꿔도 차량의 밸런스를 크게 바꿀 수 있어요. 때문에 (날씨와 같은) 환경 조건이 바뀌거나 타이어가 마모되면 그에 맞춰서 설정 값을 바꿔야 했어요.” 


    우드-보이어 엔지니어에게 “서킷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냐”고 물었다. 그는 “1년에 24번의 그랑프리 주말을 보내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시차 적응을 한다”면서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 12~14시간씩 일을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쉽지 않은 일인 것은 사실이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는 체력적인 문제보다 결정을 내리는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차의 속도를 최대한 빠르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드라이버를 안전하게 달리게 하는 것도 트랙 사이드 엔지니어들의 책임이에요. 그러다 보니 경주를 완주하기 위해선 어떤 때는 차의 속도를 일부러 느리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오는데, 경쟁하는 순간의 특성상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밖에 없거든요. 이성과 충돌하는 순간이 늘 힘들었습니다.”


    이처럼 F1 레이스카를 제작하고 최고의 경기를 만드는 것까지, 대부분이 엔지니어와 기술자의 손끝에서 이뤄진다. 포디엄에 오르는 건 드라이버뿐이지만, 그 영광은 수백 명의 엔지니어와 기술자가 함께 만들어낸 것이다.

     

    ▲Atlassian Williams Racing
    윌리엄스 드라이버 카를로스 사인츠가 경기 시작 전, 트랙 사이드 엔지니어들과 함께 데이터와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

     

    ▲Atlassian Williams Racing
    2024년 윌리엄스 미캐닉들이 차량의 타이어를 교체하는 연습, 즉 모의 피트스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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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기획

      영국 옥스퍼드셔 그로브=김태희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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