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에 24번의 그랑프리가 개최될 때마다 포뮬러1(F1) 팬들의 눈은 그랑프리가 개최되는 전 세계 서킷으로 향한다. 그런 서킷으로 최고의 레이스카를 만들어 내보내는 사람들은 각 팀의 본부(Headquarter)에 있다. 본부는 공장이란 뜻의 ‘팩토리’라고도 불린다. F1 팀은 어떻게 ‘지상 최대의 레이스’를 대비할까. 과학동아는 지난 반 년간 진행한 F1 연재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8월 29일, 영국 옥스퍼드셔 그로브의 아틀라시안 윌리엄스 레이싱팀 본부로 향했다.
영국 런던에서 약 100km 거리, 차로 1시간 30분가량 떨어진 옥스퍼드셔의 작은 마을, 그로브. 이곳에는 포뮬러1(F1) 아틀라시안 윌리엄스 레이싱팀(이하 윌리엄스)의 본부가 있다. 윌리엄스는 1977년 창단해 지금까지 총 9번의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을 차지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F1에서 스쿠데리아 페라리, 맥라렌과 더불어 대표적인 ‘헤리티지 팀(heritage team)’으로 꼽힌다.
F1에 참여하는 10개 팀(2025년 기준) 중 무려 7개 팀의 본부가 영국에 있다. 윌리엄스를 비롯해 메르세데스-AMG F1, 레드불 레이싱, 맥라렌, 애스턴 마틴 등의 본부가 런던에서 차로 2시간 이내의 영국 남동부에 모여 있다. 본부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있지만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차량을 설계, 제작하는 하스 F1 팀까지 포함한다면 80%의 F1 팀이 영국을 근거지로 하는 것이다. F1 그랑프리가 최초로 개최된 서킷이 있는 실버스톤과 이들 본부가 모여 있는 영국 남동부를 ‘영국 모터스포츠 밸리’라 부른다.
F1 팀 본부는 레이스카를 개발하고, 팀 운영에 관여하는 모든 인력과 시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풍동 센터(윈드터널)부터 1년 365일 거의 쉼 없이 돌아가는 제조 및 조립공장, 드라이버들의 경기 시뮬레이터 등이 이곳에 있다.
윌리엄스 본부는 총 3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레이스카 개발 및 제작의 핵심 시설이 모여 있는 ‘메인 팩토리 빌딩’과 새로 개발한 부품이나 레이스카를 실제 60% 크기로 제작해 실제 바람이 부는 환경에서 실험하는 ‘풍동센터’, 그리고 ‘익스피리언스 센터’다. 이중 익스피리언스 센터 1층과 지하층은 윌리엄스 헤리티지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은 사전 예약을 받은 날이나 행사가 있을 때만 개방하는데, 이날은 과학동아 취재를 위해 특별히 문을 열어 줬다.
“만나서 반가워요.” 박물관에서 기자를 맞이한 이는 짐 바커 윌리엄스 헤리티지 차량 제작 매니저였다. 바커 매니저는 1992년에 윌리엄스에 입사해 변속기 제작 기술자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1994년부터 약 10년 동안 모든 그랑프리에 참여해 윌리엄스 차량을 정비했다. 피트스톱에서 다른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차량 바퀴를 교체하는 ‘휠 건 맨(wheel gun man)’이기도 했다.
이후엔 약 15년 동안 풍동센터에서 기술자로 근무했다. 그리고 2022년 9월부터는 헤리티지 차량 제작 매니저로 자리를 옮겼다. 박물관에 소장 중인 역대 레이스카를 관리할 뿐만 아니라, 윌리엄스의 레이스카를 구매해 소장하는 개인 소장가들을 지원하는 일이다. 33년 동안 수십 대의 윌리엄스 레이스카를 직접 만지고 고쳐온 경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바커 매니저는 2021년 사망한 윌리엄스 레이싱의 창립자, 프랭크 윌리엄스 경(그는 1987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 받았다)을 기억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에게 “프랭크 윌리엄스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자 그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며 자기 팔을 내보였다. “경쟁심이 굉장히 강했던 사람이었고, 레이싱카와 우리가 하는 일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었어요.” 바커 매니저는 그랑프리 현장에서 일하던 당시 드라이버가 사고를 내거나, 메카닉들이 피트스톱에서 실수할 때마다, 프랭크 윌리엄스가 모든 사람을 모아 격려하고 우리가 최고라는 것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운이 좋지 않은 순간에 자신감을 잃지 않고, 다시 승리하는 길로 돌아갈 수 있도록 팀을 이끌었죠.”
역사가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윌리엄스 헤리티지 박물관
바커 매니저는 이날 윌리엄스 헤리티지 박물관의 ‘도슨트(해설사)’를 자처했다. 그는 윌리엄스가 영국 실버스톤에서 최초의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한 1979년 레이스카 FW07과,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우승은 물론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까지 ‘더블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1980년 레이스카, FW08B를 차례로 소개했다. 1977년 창단한 윌리엄스는 1980년 첫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우승과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에 성공했다. F1 경력의 시작부터 화려한 역사를 썼다.
소위 말하는 ‘위닝 카(우승 차량)’에 감탄하던 중 기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퀴가 6개나 있는 레이스카였다. 앞바퀴가 2개, 뒷바퀴가 4개다. “앞바퀴로 방향을 바꾸고, 뒷바퀴 4개로 구동하는 6륜차예요.” 윌리엄스는 1982년 6륜 레이스카를 개발해 시험 주행에서 4륜 레이스카보다 훨씬 빠른 랩타임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자동차연맹(FIA)이 ‘레이스카는 4개 바퀴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규정을 만들어 경기에 사용하지는 못했다. 바커 매니저는 “이 레이스카는 지금도 운행이 가능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바커 매니저는 1990년대 윌리엄스가 F1을 지배하던 시절을 생생히 기억했다. 윌리엄스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총 5번의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1995년 2위 기록). “젊고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모여 만든 혁신이 매년 윌리엄스를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는, 정말 신나는 시간이었죠.” 그가 말했다. 당시 윌리엄스는 1988년에 서스펜션의 높이와 차체의 자세를 제어하는 시스템, ‘액티브 라이드’를 처음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노면의 높낮이 변화나 방향 전환에도 ‘항상 완벽한 자세로 달리는 차’를 만든 셈이다. 하지만 바커 매니저는 액티브 라이드만이 윌리엄스의 성적을 만든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당시 에이드리언 누이가 윌리엄스 공기역학 파트를 이끌었어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이건 꼭 짚고 넘어가야 해요.”
에이드리언 누이는 전설적인 F1 공기역학 엔지니어다. 윌리엄스는 물론 맥라렌, 레드불에서 위닝 카를 만든 장본인이다. 바커 매니저는 1990년도 레이스카의 바퀴와 차체(섀시)를 연결하는 서스펜션의 주요 부품인 위시본의 끝을 가리켰다. 위시본을 섀시에 단단하게 고정하기 위해선 볼트와 U자 모양의 이음쇠(클레비스)를 사용했다.
“누이는 볼트와 클레비스, 이 작은 부품도 공기 흐름에 관여해 항력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윌리엄스는 그 다음해 곧바로 위시본을 고정하는 부품을 섀시 안쪽에 설치하는 것으로 차량 디자인을 바꿨다. 크고 작은 혁신이 모두 모여서, 당시 윌리엄스 레이스카의 압도적인 성능과 성적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한편, 윌리엄스의 마지막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우승은 1997년에 머물러 있다. 이후 2010년대 중반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 3위까지 올라서며 부활하는 듯했지만, 2018년부터 2022년까지는 사실상 ‘꼴찌’로 전락했다. 하지만 윌리엄스는 2023년부터 차근차근 반등했고 9월 8일 현재, 2025년 시즌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4강 팀(맥라렌, 페라리, 메르세데스, 레드불)’ 바로 아래로, 상위권 도약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메인 팩토리 빌딩으로 이동해 윌리엄스의 현재를 만드는 이들을 만나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