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 전문가에게 과학대중화를 시작한 나라를 묻는다면, 십중 팔구 영국을 떠올릴 것이다. 200년 전 크리스마스, 전자기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이클 패러데이는 평범한 가정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공개 강연을 열었다. 모두를 위한 과학을 전하려는 이 정신은 오늘날 세계 최대의 과학축제 ‘에든버러 과학축제’에 고스란히 남았다. 과학동아는 창간 40주년 특별연재 ‘과학자본’을 시작하며, 에든버러 과학축제 2025가 한창 진행되던 4월 영국을 찾았다. 지식 너머의 경험과 공감대를 만드는 축제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1 2025년 개최된 에든버러 과학축제 2025에서 어린이들이 체험 프로그램을 즐기는 모습.
“매년 부활절 시기면 에든버러 전체에 과학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요. 그걸 보고 축제 홈페이지에 접속해 올해는 무슨 행사에 참여할지 고르죠. 오늘 있을 리처드 도킨스 강연이 너무 기대돼요.”
고딕 양식의 첨탑이 노을로 물들던 4월 14일 오후 6시, 영국 에든버러대 맥이완 홀 앞에서 만난 한 소녀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홀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잠시 뒤 6시 30분부터 열릴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강연을 기다리는 이들이다. 에든버러대는 441년의 역사 내내 영국 에든버러의 상징이자, 시 그 자체였던 학교다. 에든버러를 ‘대학 도시’라고 할 정도다. 찰스 다윈, 제임스 맥스웰, 다니엘 러더퍼드, 피터 힉스 등 과학계의 수많은 거목들이 이 학교를 거쳤다.
맥이완 홀은 에든버러대의 졸업식이 거행되는 건물이다. 홀 내부에 아로새겨진 화려한 벽화와 샹들리에가 에든버러대의 자부심을 보여준다. 그런데 맥이완 홀이 이날만큼은 에든버러 시민 모두가 과학을 즐기는 장이 됐다. 4월 5일부터 20일까지 보름간 에든버러 전역에서 진행된 ‘에든버러 과학축제 2025(Edinburgh Science Festival 2025)’ 때문이다. 특히나 14일 진행된 도킨스의 ‘죽은 자의 유전에 대한 서(The genetic book of the dead)’ 북토크는 기자가 에든버러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가장 관심있는 프로그램으로 꼽은 행사였다.
강연장 옆자리에는 일가족이 앉아 있었다. 아들은 에든버러대 물리학과 학생, 어머니는 생물학자, 아버지는 “그냥 도킨스의 팬인 평범한 사람”이라고 설명한 이들은 도킨스의 강연 내내 눈을 반짝이며 경청했다. 족히 300명은 넘어 보이는 관객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2층짜리 강연장을 메웠다. 에든버러 전역에 분포한 29곳의 에든버러 과학축제 2025 행사장에선 도킨스의 강연을 포함해 무려 117가지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방문한 이는 총 11만 447명이었다.
과학에게 환영받은 경험의 합, 과학자본
기자가 영국 에든버러를 찾은 이유는, 2026년 1월이면 창간 40주년을 맞는 과학동아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짚어 보기 위해서였다. 지난 40년 동안 세상은 많이도 바뀌었다. 책을 찾아보지 않고도, 인공지능(AI) 챗봇에게 질문하면 손쉽게 과학기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3월 3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발표한 ‘2024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생성AI 서비스를 사용한 사람의 비율은 2023년 17.6%에서 2024년 33.3%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2024년 기준, 생성AI 서비스를 경험한 사람 중 81.9%가 생성AI로 정보 검색을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한편, AI를 온전히 믿지는 못했다. 6세 이상 설문조사 참가자 중 44.3%가 “AI 서비스가 제공하는 정보나 결과물을 신뢰할 수 있다”고 답했으며, 35.9%가 “알고리즘 편향성, 오정보, 프라이버시 침해 등 AI 기술이 가지는 위험성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마냥 미덥지는 못한 AI와 공존하기 위해 생성AI가 내놓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 진짜를 걸러낼 지혜가 중요해졌다.
새롭고 불안한 AI 시대가 시작된 가운데, 살아갈 밑천이 될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은 매해 높아진다. 2024년 12월 발표된 ‘2024 과학기술문화 사회조사연구 결과보고서’에는 2000년부터 2024년 사이 한국 국민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도를 조사한 결과가 나타나 있다. ‘전혀 관심없음’이 0점, ‘매우 관심있음’이 100점인 척도를 기준으로 봤을 때, 성인의 경우 2000년 36.8점에서 2024년 59.1점까지 점수가 크게 상승했다. 청소년도 2005년 46.2점에서 2024년 60.7점까지 증가세가 뚜렷했다. 과학대중화의 필요성이 점차 커지는 지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40년간 과학대중화를 위해 과학동아는, 나아가 한국 사회는 무얼 해야 할까. 과학동아는 많은 이들이 과학대중화의 시작점으로 꼽는 영국에 주목했다. 1799년 설립된 왕립 연구소(The Royal Institution)는 과학기술과 대중 사이의 벽을 허물기 위해 주기적으로 강연을 열었다. 부유하고 힘 있는 이들이 과학기술 연구의 주류였던 당시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수많은 어린 과학기술 인재가 탄생하고, 성장하고, 다시 또다른 인재를 키우는 선순환을 이룬다.
그런 영국이 최근 들어서 ‘과학자본’이라는 개념을 급부상시키며, 이 개념을 이공계 인재 양성과 관련한 정책에도 도입하고 있다. 과학자본은 ‘개인이 살아가면서 쌓는 과학과 관련된 지식, 태도, 경험, 그리고 관계의 총합’이다. 쉽게 말해서 과학과 관련해서 무얼 알고, 이해할 수 있는가(지식), 과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태도), 과학과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하는가(활동), 과학과 관련된 누구와 연결돼 있는가(관계) 네 가지 기준으로 판단한다.
과학자본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 건 루이스 아처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대 교육사회학과 교수다. 2015년 그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만든 ‘사회자본’ ‘문화자본’이란 개념을 과학대중화에 접목해 과학자본을 탄생시켰다. 임동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9월 5일 과학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과학자본이란 개념은 사회학의 맥락에서 해석하면 돼요. 사회자본은 가족이나 친구 등 사회적 관계가 얼마나 잘 형성돼 있는지 나타내는 척도입니다. 문화자본은 지식, 취향, 태도 등을 말하죠. 미술관에 자주 가는 것, 식사예절을 아는 것, 와인의 맛을 구분하는 것 등이 문화자본에 속합니다. 과학자본은 과학과 관련된 사회자본, 과학과 관련된 문화자본을 합친 개념이고요.”
그래서 과학자본은 전통적인 과학교육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과학 지식 축적’보다 한 발짝 나아간다. 가족이나 지인 중에서 과학기술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과학과 관련해서 해본 활동이 있는지, 과학을 친숙하게 여기는지 등이 과학자본에 포함된다. 임 교수는 “결국 과학자본이 많은 사람들은 ‘과학은 나를 위한 것(Science is for me)’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서 “이에 따라 자연스레 과학과 관련된 진로를 택하거나, 과학기술 지식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식”이라고 말했다.
에든버러 과학축제에서도 과학자본은 중요한 한 축을 맡는다. 에든버러 과학축제를 주관하는 비영리 단체 ‘에든버러 사이언스(Edinburgh Science)’는 축제의 첫 번째 목표가 바로 “방문객들의 과학자본을 키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에든버러 사이언스가 낸 ‘에든버러 과학축제 2025 임팩트 리포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에든버러 사이언스가 하는 모든 일은 방문객들의 과학자본을 키워 주기 위해 설계됐습니다. 이는 과학에 대한 초기 관심을 불러일으키거나, 기존 지식을 심화시키거나, 대화를 촉발하거나, 과학이 모두를 위한 것임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흥미로운 체험형 활동을 통해 우리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미래의 기회를 보여주며, 과학적 소양을 갖춘 사회를 만듭니다.”

에든버러 과학축제에서는 나이와 젠더, 배경에 관계없이 모두가 과학을 즐겁게 경험할 프로그램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개관 시간이 끝난 밤, 스코틀랜드 박물관 로비에서 성인만을 대상으로 한 과학 공연이 펼쳐지는 모습이다.
이공계 진로 선택하는 이유, ‘재능’보단 ‘과학자본’
과학자본의 효과에 관한 연구는 현재 진행중이다. 루이스 아처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대 교수팀은 2009년부터 과학자본이 다양한 연령대의 사회 구성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ASPIRES(아스파이어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998년 9월에서 1999년 8월 사이에 태어난 50명의 아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14년간 추적하는 한편, 4만 7000명 이상의 청년으로부터 수집한 설문조사 데이터를 분석하는 프로젝트다.
2023년 발표된 ‘ASPIRES 3 메인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들이 이공계 진로를 선택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됐던 건 수학·과학 분야의 재능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청년들의 정체성이 이공계 진로와 일치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아시아 학생들이 이공계에서 활약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공계 진로를 선택하거나, 여성은 수학에 재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공계 진로를 기피하는 식이다. 청년들이 살아가며 쌓은 과학자본 또한 중요한 요인이 됐다. 과학자본을 쉽게 쌓을 수 없는 조건의 학생들은 이공계 진로를 쉽게 선택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영국은 교육 정책에서 ‘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는 기존 목표를 ‘과학자본을 키운다’는 새로운 목표로 변경하고 있다. 공공기관인 영국연구혁신기구(UKRI)나, 과학대중화를 담당하는 과학 박물관 그룹(Science Museum Group) 차원에서 교육 현장에 과학자본을 키우는 요소를 접목하기 위한 노력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호주, 뉴질랜드, 노르웨이 등 국가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는 추세다.
나만의 과학 이야기 새로 쓰는 축제의 장
과학자본을 키워주는 축제의 모습은 과연 독특했다. 기자는 4월 13일부터 4월 15일까지 3일간 에든버러에 머물며 에든버러 과학축제 2025 행사장 이곳저곳을 찾았다. 이 부분부터 한국과 달랐다. 한국에서 과학축제는 대부분 광장에서 진행된다. 여기서 연구기관이나 학교, 기업 등이 ‘부스’를 열고 간단한 과학 실험이나 체험활동 등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다 보는 데 하루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데 에든버러 과학축제의 경우, 도시 전체가 행사장이다. 프로그램 주제에 따라 어떤 것은 스코틀랜드 박물관 로비, 어떤 것은 에든버러대, 어떤 것은 식물원인 로얄 보태닉 가든 에든버러에서 진행된다. 심지어는 스코틀랜드 시 도서관(Scottish Poetry Library)에서도 에든버러 과학축제 2025를 만날 수 있다. 내게 맞는 프로그램을 찾아, 나만의 축제 스케줄을 짜 보는 과정이 보물찾기 같다. 스코틀랜드 시 도서관에는 AI와 함께 소설을 써볼 수 있는 기계가 설치돼 있다. 4월 15일 이 기계를 직접 사용해봤다. 소설의 배경과 등장인물 등을 입력하면 기계가 이야기를 만들어 준다. 한참 소설을 쓰다 보면 기계가 오류음을 내며 ‘생성AI에 반대하는 해커들에게 공격받는’ 상황이 펼쳐진다. 방문객은 이를 통해 생성AI의 위험성에 대해 고민해 본다.
알리 바 스코틀랜드 시 도서관 부관장은 “에든버러 과학축제 기간이면 조용하던 도서관에 기계음이 들리고, 평소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찾아온다”면서 “사람들이 이 기계를 보러 오면서 작은 도서관이 북적이는 것이 꽤나 즐겁다”고 말했다. “과학축제를 한 바퀴 둘러보려는 가족 단위 방문자나, 평소 AI에 관심이 많던 어른들이 대다수”라는 것이 바 부관장의 설명이다.
상설 전시 외에도, 참가 신청을 따로 받아 진행하는 강연이나 체험 프로그램도 많다. 4월 13일 오후 6시에는 스코틀랜드 박물관에서 ‘폐경의 신비를 풀다(Demystifying the Menopause)’라는 주제의 강연이 진행됐다. 주제에 걸맞게 강의실은 중년 여성 30여 명으로 가득 찼다. 강연자와 활발히 이야기를 나누며, 폐경이란 무엇인지, 자신의 폐경 증상을 극복하기 위해선 어떤 약을 먹어야 할지 묻는 방문자들의 모습을 보며 놀랐다. 과학축제의 주인공은 어린이와 청소년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한껏 상기된 어린이와 청소년의 목소리로 시끌시끌한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스코틀랜드 박물관 로비와 에든버러의 사설 과학관 ‘다이내믹 어스(Dynamic Earth)’에서는 과학자가 자신의 일을 쉽고 재미있게 전하는 부스들이 여럿 마련돼 있었다. 다이내믹 어스에서 만난 인공위성 연구자 제시카 징어 씨는 축제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인공위성이 촬영한 이미지를 어떻게 분석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면서 “이런 행사에 참여하면서 내가 어릴 때 이런 (인공위성 연구자를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신났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징어 씨와 이야기를 마치고, 어머니와 아들이 부스에서 체험활동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위성 지도에서 승마장이나 녹조, 항구를 찾아보는 게임을 하면서 이들은 인공위성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배웠다. 징어 씨와 대화를 나누는 아이의 표정이 밝았다.
4월 15일 오후, 축제 현장에서 만난 하순 엘 자파 에든버러 사이언스 총괄디렉터 겸 최고경영자(CEO)는 “모두가 허락을 구하지 않고도, 환영받으며 과학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의 미션은 과학에 민주적인 속성을 더 부여하는 겁니다. 나이와 젠더, 배경에 상관없이 모두가 존중받는 축제를 만들고자 해요. 그래서 당신이 봤던 도킨스 강연이나 폐경 강연과 같은 성인용 프로그램부터, 가족용 프로그램, 스코틀랜드 시 도서관처럼 장소의 특성을 살린 베뉴 프로그램, 과학자와 예술가가 함께 만든 작품을 전시하는 아트 프로그램, 그리고 공간의 제약을 없앤 온라인 프로그램까지 각기 다른 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했죠.”
영국의 고민 ‘16세 장벽’ 과학자본으로 허물 수 있을까
16세 이후 ‘부모님은 과학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는 문항의 동의율이 떨어진다. 진로를 정한 뒤, 과학교육에 대한 가족의 지지가 줄어들며 과학 자체를 멀리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처 교수는 “과학자본을 잘 축적한 경우, 16세 이후에도 과학을 자신의 것이라고 인식한다”고 했다.
과학자본 쌓아줄 ‘사회의 책임’ 이야기할 차례
자파 총괄디렉터에게 과학자본이란, 과학자가 되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쌓아야 하는 필수 요소다. 그는 “우리는 방문자 모두가 과학자가 되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대신 과학기술이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그 영향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받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학자들과 사회는 개개인의 과학자본을 쌓아줄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에든버러 과학축제가 시작된 지 올해로 35년이 됐습니다. 35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에든버러 과학축제가 쌓아 준 과학자본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직접 경험했어요. 우리 직원 중 하나는 에든버러 사이언스에서 14년간 일했어요. 그가 초창기에 진행했던 ‘응급실 수술’이라는 프로그램을 체험한 아이 하나가 14년 뒤에 다시 돌아와 ‘프로그램에 참가한 경험을 계기로 의대에 진학했다’며 감사 인사를 해 온 적이 있습니다. 35년간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있었겠어요. 더 많은 가능성을 위해, 나이, 인종 등 장벽을 없애서 가능한 많은 사람이 과학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과학을 알릴 책무’는 에든버러 과학축제 관계자들 뿐 아니라 영국 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공통된 분위기다. 4월 14일 에든버러대 재생 및 회복연구소에서 만난 베스 밀스 염증연구센터 중개적 보건의료기술 그룹장은 “영국에선 연구자와 연구 기관을 평가할 때 이들이 사회에 얼마나 관여했는지를 중요한 요소로 본다”고 말했다. 밀스 그룹장은 다음날인 4월 15일 ‘의약 분야의 빛나는 아이디어들(Bright ideas in medicine)’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앞두고 있었다.
“재미있을 거예요. 물리학자, 의과학자, 의사, 엔지니어가 모여 빛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설명할 건데요, 행사를 재미있게 이끌기 위해서 수개월 전부터 준비했어요. 고대 이집트부터 제임스 본드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룰 겁니다.” 설렌 것이 표정에서부터 드러나는 그였다.
밀스 그룹장에게 과학자본을 쌓는 일은 자신의 업무이자, 미래를 만나는 즐거운 시간이다. 밀스 그룹장은 “연구비 지원을 요청할 때, 해당 연구팀이 사회의 과학자본을 쌓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 적는 칸이 있다”면서 “영국에선 최근 2년 사이 과학기술계에 사회의 과학자본을 쌓는 책임을 묻는 정책이 점점 더 많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승진 심사 때, 해당 연구자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반드시 평가합니다. 저도 그룹장으로서 소속 대학원생들이 지역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비워줘요. 과학기술계 종사자에게는 특히나 가끔은 책상에서 벗어나 사회와 관계를 맺는 경험이 필요하거든요. 어떤 연구가 사회에 필요한지 알아야 하고요.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연구 방향을 재정립해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연구소에는 공보담당관이 있어서, 연구자들이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더 잘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시스템도 있죠. 하지만 그것 만큼이나 제가 어릴 때 학교나 과학축제에서, 지인인 미생물학자의 연구실에서 쌓았던 과학과 관련된 경험이 과학대중화 활동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런 경험은 저를 과학자가 되도록 만들어줬고, 앞으로 미래 과학자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되겠죠. 무엇보다, 연구소를 벗어나는 게 재미있잖아요!”
4월 15일 오후 5시 30분, 에든버러대의 한 강의실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분주히 강연 준비를 하는 밀스 그룹장을 다시 만났다. 강연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이 강연을 찾았나’는 질문을 던졌다. 의학 분야의 진로를 꿈꾼다는 청소년, 루벤 군부터 과학 이야기가 너무 신기하다며 웃는 노인 버니 씨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4월, 에든버러에서는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에든버러 과학축제 2025 자원봉사자들 중 다수가 지역의 과학기술 전공자나, 관련 분야 대학생으로 구성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