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이 없는 해파리는 북극에서 북위 47도 사이에만 서식한다.
해파리는 어디든 유유히 갈 수 있을 듯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신체 조건이 하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비에르 몬테네그로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 생명과학부 연구원이 이끄는 국제 공동연구팀은 혹(knob)이 달린 해파리는 전 세계 심해에 분포하는 반면, 혹이 없는 해파리는 북위 47도 이상 심해에만 거주하며 아래 위도로 내려가지 않는다고 최근 밝혔다.
연구팀은 보트리네마 브루세이(Botrynema brucei ellinorae)라는 심해 해파리를 관찰했다. 혹은 해파리 머리 부분에 튀어나온 돌기 부위를 말한다. 해당 종은 깊이 약 1000~2000m의 바닷속에 서식하며 개체에 따라 혹이 있거나 없다. 연구팀은 연구용 선박의 그물과 무인 수중 로봇, 120년 이상의 기존 관측 기록과 유전 분석 데이터를 이용해 해파리의 분포를 정밀하게 조사했다.
그 결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해파리임에도 혹의 유무에 따라 분포 지역이 극명하게 갈림이 드러났다. 혹이 있는 해파리는 전 세계 심해에 고르게 분포하지만, 혹이 없는 해파리는 오직 북위 47도 이북 지역에서만 발견됐다. 이러한 경계선을 ‘생물학적 장벽’이라고 한다. 물리적 장벽이 없음에도 원숭이와 유대류가 사는 구역이 구분되는 동남아시아의 ‘월리스선’이 대표적이다.
심해 속 생물학적 장벽의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해류 등 지역 간의 환경적 차이로 장벽이 그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혹이 없는 해파리가 포식자 회피나 수압 적응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할 여지가 있다는 추정이다.
연구팀은 심해의 생물학적 장벽이 심해 생태계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몬테네그로 연구원은 “유전상 차이가 거의 없음에도 형태에 따라 분포가 갈리는 건 심해의 알려지지 않은 생물학적 장벽이 존재한다는 강한 증거”라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해당 연구는 국제학술지 ‘해양학 연구 보고서(Oceanographic Research Papers)’ 9월호에 게재됐다. doi: 10.1016/j.dsr.2025.1045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