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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SF소설] 빚쟁이도 유산을 남긴다

▲Midjourney, 라헌

 

케이(K)는 섹터 4에서 태어나 섹터 5, 섹터 8을 가보았고, 지금은 섹터 3에 산다. 스승인 제이(J)가 열 살 때 일어난 3차 대전의 상흔은 아직도 선명하다. 한때 세계를 이었다던 철도는 끊어져 휜 철로 조각마저 남지 않았다. 케이도 철로를 뜯어 판 적이 있으니 누구를 비난할 처지는 못됐다. 다른 섹터로 이사 갈 때는 항상 스승의 낡은 트럭을 탔다. 어느 섹터든 잘 정돈된 도시 구역을 벗어나면 끝도 없는 황무지가 펼쳐졌다. 스승은 젊었을 적 그 황야를 걸어 다른 섹터로 건너갔다는데, 그때 어찌나 고생했는지 트럭을 한 대 샀다고 한다.
케이는 장거리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낡은 트럭은 승차감이 나빴고, 풍경은 내내 똑같았다. 거의 평생을 함께한 스승과는 내밀한 이야기마저 더 나눌 게 없다. 엉덩이가 짓무를 듯한 지루함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만 상대할 수 있었다. 다행히 어릴 적부터 스승 제이의 플레이리스트에 길들여진 케이는 그와 음악 취향이 비슷했다.
“난 있잖아, 아이(I) 영감이 거두지만 않았어도 음악가가 됐을 거야.”
제이가 섹터 3으로 오기 전의 전쟁 전 음악을 들으며 탄성을 질렀다.
“오른팔이 없는데 어떻게 악기를 연주하려고 했어요?”
스승은 오른팔이, 케이는 왼팔이 없었다. 케이는 어린 시절 지뢰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팔을 날려 먹었다. 스승은 팔뚝에 총알을 맞았는데 감염이 심해 잘라냈다고 들었다. 그 수술을 아이 영감이 해주었고, 돈을 받지 않는 대신 인형사로 살게 되었다나. 케이랑 똑같은 이야기였다. 케이도 인형사의 불법 치료를 받고 살아남은 대신, 인형사의 제자가 되어야 했으니까. 다만 그 결정을 내린 어머니는 원망하지 않는다. 케이는 자신이 ‘케이’라고 불리기 전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얼굴도 흐릿했다.
“음악가 제이는 비오-아우토를 끼고 있었겠지. 요 녀석아.”
스승은 ‘기계화 의체’와 ‘비오-아우토’를 명확히 구분해서 사용한다. 기계화 의체는 비오-아우토를 포함하는 기계 몸을 일컫는 말이고, 비오-아우토는 쾨르퍼사의 기계화 의체 브랜드이니, 독자 규격으로 기계화 의체를 제작하는 인형사는 비오-아우토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나. 비오-아우토를 끼면서까지 악기를 배우고 싶었다니, 케이는 트럭 안에서 자기 왼팔을 보았다. 하도 부숴 먹어서 스승이 임시로 뼈대만 만들어준 기계화 의체는 미세한 힘 조절이 잘되지 않았다. 오카리나라도 불어보려고 하면 왼손의 악력을 못 이겨서 오카리나가 깨졌다.
“아이 영감님이 만들어준 팔은 얼마나 정교하게 작동해요? 악력도 사람 손만큼 조절할 수 있어요?”
“악기를 연주할 손으로는 안 만들어줬어. 그 괴팍한 영감 때문에 즉흥연주나 해야 할 내 자유분방한 영혼이 이 팔에 갇혔지.”
“그러면 제 팔은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팔로 만들어주세요.”
“그렇게 만들면 나 죽기 직전에 부숴 먹을 테니까 안 돼…….”
섹터 3은 그간 살았던 섹터보다 화려하고 번쩍이며 풍요로운 곳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먹을 게 없으면 굶는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는 끔찍한 맛이지만 영양분이 고루 함유된 영양 젤리를 나눠주었다. 온 도시에 돈이 흐르는 것 같았다. 섹터 3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는 새로운 음악이 매일 발표되었다. 스트리밍 사이트의 순위는 볼 때마다 변했다. 그간 자동차 라디오만 듣던 케이는 몇 주 동안 섹터 3의 최신 음악을 계속 들었다. 그리고 곧 전쟁 전 세상의 음악으로 자기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제이에게 물려받은 취향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스승님, 비(b), 에이(a), 알(r)이 무슨 뜻이에요?”
케이는 튜닝숍 유리로 아르바이트 가기 전에 의뢰 게시판을 확인했다. ‘재즈바 플라시보’에서 오토마타(automata)를 해체해달라는 의뢰였다.
“뭐라고?”
제이는 공방에 틀어박혀 나무를 다듬는 중이었다. 섹터 외곽 지역이 아니었다면 애저녁에 소음 공해로 끌려갔을지도 모르는 기계 소음이었다.
“재즈바 플라시보요!”
스승은 그제야 공방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고글과 앞치마에 모두 톱밥이 잔뜩 묻어 있었다.
“너 튜닝숍 사장이 돈 떼어먹었냐? 아르바이트 새로 구하려고?”
“아니요! 여기서 의뢰가 들어왔어요! 그런데 바(bar)가 뭐 하는 곳인지 몰라서요!”
“재즈바니까 재즈 연주 들으면서 술 한잔하는 곳이지. 넌 연주할 줄 아는 악기가 없어서 일 못할 텐데? 케이, 넌 노래도 못 부르잖아.”
노래는 못 부르는 게 아니다. 부끄러워서 안 부를 뿐이다. 스승과 떨어져 혼자 보낼 시간이 없으니까.
“거기서 오토마타를 해체해달라고 의뢰가 들어왔어요.”
“오토마타? 지금 당장 간다고 해!”
스승이 환장하는 두 가지 중 하나는 아름다운 오브제, 다른 하나는 전쟁 전에 만들어진 오토마타였다. 오토마타는 휴머노이드와 달리 인형사들이 구현한 자동인형이다. 휴머노이드 같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은 불가능해도 인형사들 특유의 집착 덕분에, 아름다운 오브제이기도 했다. 3차 대전 때 인형사들도 많이 죽어 그 기술도 거의 소실되었고, 스승은 전쟁 전의 오토마타 제작 기술을 익히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 오토마타의 해체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가자! 케이!”
제이는 톱밥도 털지 않은 채 공방에서 뛰쳐나왔다. 케이는 스승의 단단한 오른팔에 붙들려 재즈바 플라시보로 끌려갔다. 그곳은 부두 근처의 오래된 가게였다. 지하에 있는 바에 들어서니, 아주 작은 무대 위에 드럼과 피아노, 거대한 앰프가 놓였고, 다양한 술이 바텐더 뒤로 늘어서 있었다. 오래된 나무 바닥은 디딜 때마다 기이한 소리를 내며 독특한 냄새를 풍겼다. 그리고 바텐더 옆에 기타를 든 채 다리를 꼰 오토마타가 있었다.
“아직 영업시간은 아니지만, 어서 오십시오. 재즈바 플라시보입니다.”
“의뢰를 받은 인형사 제이입니다. 여기는 제 제자 케이.”
“정말 빨리 오셨네요. 내일 오실 줄 알았어요. 의뢰 한 시간 만에 오실 줄 알았으면 음료라도 준비하는 건데…….”
“괜찮습니다. 제가 구시대 오토마타에 관심이 있어서요.”
스승의 눈은 이미 바텐더가 아니라 오토마타로 향한다. 케이도 오토마타를 본다. 인형사가 만든 게 분명했다. 인형사 같은 괴짜가 아니라면 기타를 연주하는 인형 따위 생각도 않을 테고, 생각해서 만들어낸들 굳이 이렇게까지 섬세하고 아름답게 제작할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
인형이 느닷없이 기타를 연주했다. 음감이 없는 케이도 잘 조율된 기타라고 느꼈다. 이 오토마타는 정말 기타를 연주한다. 기타 지판을 짚는 손가락의 힘이나 박자 감각이 또렷이 느껴졌다. 이것만으로도 이 오토마타는 이곳에서 각별한 관리를 받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
문제는 노래였다. 성대를 구현한 것 같지는 않고, 누군가가 녹음한 노래를 재생하는 구조 같았는데, 너무 오래 재생한 탓에 녹음된 목소리가 노래라기보다는 늘어지고 지직대는 소음으로 변하고 말았다. 음량 조절 기능도 고장 났는지 귀가 아플 정도로 소리가 컸다.
“예전에는 연주 시간을 세팅해 놓으면 알아서 연주하고 노래 부르던 녀석이 요즘에는 아주 멋대로 움직여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라이브를 전혀 못 하고 있어요.”
“이 오토마타는 어쩌다 이곳에 있게 된 건가요? 사장님께서 주문 제작하신 거예요?”
“내 어머니께서 사 오셨어. 여기는 인형사의 작품들이 자주 경매장에 오르거든. 오픈 당시에는 연주자 구하기가 어려워서 이 오토마타가 공연을 했지. 혼자서 열 곡 정도 노래하며 연주할 수 있어. 지금은 연주자가 많아 대기까지 걸어놓는 상황이니 가게 마스코트로 쓰고 있지만 말이다.”
오토마타가 저 위에 홀로 올라가서 공연하는 재즈바라니, 이 인형은 고장 나기 전에 얼마나 멋진 공연을 했을까?
“이 오토마타는 이름이 뭐예요?”
“플라시보(placebo). 내 아버지가 이름 붙였어. 폴라리스(Polaris·북극성)랑 헷갈리신 바람에 우리 바 이름이 플라시보가 돼버렸지.”
케이는 그 실수도 나름 재지(jazzy)하다고 생각했다.
“저와 제 제자가 이 오토마타를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
“오래 걸리시더라도 고쳐주셨으면 합니다. 플라시보는 우리 바의 메인 아티스트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스승은 고개는 끄덕였지만 복잡한 표정으로 오토마타를 보았다.
“이 오토마타, 의자와 세트로 만들었죠? 기타는 전쟁 전 유명했던 브랜드네요.”
“기타는 인형사가 인형을 만들 때 쥐여준 거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의자는 인형과 함께 만들어진 게 맞고요. 만든 지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이동하다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이 자리에서 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고치는 과정에서 인형 옷을 벗길 수도 있는데 괜찮으십니까?”
“그럼요. 고칠 수만 있다면 뭐든 괜찮습니다. 해체하셔도 괜찮아요. 그래도 손님들이 보시면 오해할 수 있으니 가림막 정도는 치겠습니다.”
사장은 연주자들의 대기실에서 길쭉한 칸막이를 가져와 인형과 제이를 가려주었다. 제이는 인형의 긴 머리를 위로 바싹 올려 목과 등을 드러냈다.
“어렵겠는데, 이거…….”
케이도 그 말을 이해했다. 이 인형, 이음매가 없었다. 인간을 흉내 낸 인형은 팔다리를 움직일 관절이 있기 마련이다.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해서라도 구부러지는 부위는 어느 정도 노출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오토마타는 마치 인간의 몸 같아서, 각 관절의 접합부를 찾기 어려웠다. 움직임이 가장 섬세해야 하는 손가락도 마찬가지였다.
“이 인형의 전원은 어떻게 끄는 걸까요?”
이 오토마타는 전선이 연결되지 않았다. 코드를 빼서 해결됐다면 인형사에게 의뢰가 들어오지도 않았을 테니.
“전원은 없어. 태엽을 돌려 동력을 만드는 아주 오래된 구조일 거야.”
“태엽 감는 걸로 기타 연주가 가능한 오토마타를 만든다고요?”
“일단 나는 못 만들어. 태엽 하나로 악기 연주가 가능한 정교한 오토마타를 만들 수 있다니…….”
세상에, 스승이 못 만드는 것도 있다니. 케이는 오토마타의 구조를 상상했다. 태엽을 감으면 기타를 연주할 수 있다. 그리고 녹음된 노래가 재생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태엽을 꽂아서 돌리면 작동하는 기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기타 소리에 대응하는 손가락 위치와 손가락의 힘 조절을 다루는 시스템, 노래가 저장된 디지털 보관소가 필요하다. 플라시보를 만든 인형사는 스승처럼 인형의 형태를 추구하지도 않았고, 입실론처럼 인형의 마음을 좇지도 않은 모양이다. 케이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세계를 뒤덮은 불꽃을 떠올린다. 인형사가 죽으면 그의 계보도 사라진다. 인형사는 원래 쓸쓸한 운명인 걸까? 허무하게 잊힐 기술을 끝까지 이어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장님, 이 인형 태엽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갖고 계십니까?”
“드리는 걸 깜박했군요. 가슴 한가운데 꽂으면 됩니다.”
진짜로 태엽으로 돌아가는 인형이었다니. 태엽을 보자 스승은 도리어 막막해진 모양이다. 진짜 태엽으로 이렇게까지 작동한다고?
“있잖아요, 스승님.”
제이는 오토마타의 가슴에 태엽을 꽂고, 조금 돌리며 내부 기계들이 작동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왜.”
“저 아르바이트 갈 시간이에요.”
“어, 그래. 다녀와라. 난 아무래도 돈 받기는 글러 먹었으니 너라도 벌어야지.”
인형이라면 자신만만한 제이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이번 의뢰가 어지간히 까탈스러운 모양이다. 케이는 섹터 3의 명물, 영양 젤리를 먹고 싶지 않았으므로 재즈바를 빠져나와 튜닝숍 메이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왔니?”
튜닝숍 메이의 사장은 유리, 언제나 말끔한 복장에 유기농 소스를 뿌린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남자다. 사장은 친절했지만 언제나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 케이와도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면 거의 입을 열지 않던 사람이 오늘은 케이를 맞이하는 목소리부터 다르다. 케이는 사장이 기분 좋은 이유를 바로 알아챘다. 튜닝숍 메이에 없던 게 생겼다. 오토마타였다. 사장은 누가 봐도 오래되고 비싸 보이는 자동인형을 손보고 있었다.
“오토마타네요?”
“응, 전쟁 전에 제작된 앤티크 오토마타야. 보통 오토마타는 특수한 기능 하나만을 위해 만드는데, 앤티크 오토마타는 사치재라서 수행 기능이 없어도 화려하지. 경매에서 낙찰받아서 오늘 새벽에 도착했어. 막 조율도 끝냈고.”
사장의 소개대로 앤티크 오토마타는 아름다웠다. 마치 스승이 모든 것을 쏟아부어 만든 팔을 봤을 때처럼 전율이 일 정도였다. 스승이 직접 봤다면 오른팔과 바꿔서라도 가져왔겠지.
“오토마타에 관심 있으신지는 몰랐어요.”
“나는 네가 오토마타를 알아보는 게 더 신기한걸? 너희 세대는 휴머노이드가 더 익숙하지 않나?”
그 말대로였다. 케이는 오토마타보다 휴머노이드가 익숙했다. 이번 의뢰만 아니었어도 유리가 무슨 오토마타를 샀든 아는 척하지는 않았을 거다.
“안-녕-. 나는 라보-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오토마타에는 분명 태엽이 꽂혀 있었다. 그런데 사장은 태엽에는 손대지 않고 오토마타를 일으켜 세워, 말까지 하게 했다. 그는 오토마타의 코어와 연결한 랩톱 키보드를 두드렸을 뿐이다.
“오토마타가 말하네요?”
“응. 오토마타는 휴머노이드의 전신(前身)이라 원시적인 제어 시스템도 있거든. 거기에 접속해서 시스템을 조금 바꿔주면 인공지능을 심을 수 있어. 목소리 샘플도 넣어주면 말하는 오토마타가 되는 거지.”
“사장님, 저 대신 일 시키려고 오토마타 들이신 거예요?”
케이는 사장에게 배신감이 들었다. 일한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오토마타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다니, 섹터 3은 인간의 마음이 없는 곳이 맞았다.
“라보보가 아니라 라보야. 그리고 얘는 마스코트야. 일은 네가 다 해. 걱정마.”
뒤늦게 케이는 자신의 진심을 깨달았다. 케이는 일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라보가 되고 싶었다. 일은 라보에게 맡기고 마스코트는 케이가 되어야 했다.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실험이 있어서 데려온 건데 생각보다 쉽게 성공했어.”
“실험이요?”
“오래된 인형에도 AI를 설치해서 사고를 부여할 수 있는지 궁금했어. 섹터 3은 이런 오토마타가 유난히 싸게 팔려서 와본 거고.”
인형에 사고를 부여한다? 케이는 얼마 전 공사장에서 파업한 로봇들이 생각났다. 그 로봇들은 30분의 휴식 시간을 요구하며 무장 파업했는데, 휴머노이드의 AI를 중심으로 로봇들과 연결되어, 기업의 AI 제한을 뛰어넘어 독자적으로 사고하는 공유 지성 마르스가 그 중심에 있었다. 제이는 분명 이 마르스에 인형사가 개입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인형의 마음을 빚는 인형사, 입실론(Υ).
“그……. 사장님, 인형사인가요? 입실론?”
“맞아. 제이가 말 안 했니?”
“제 스승님하고도 아는 사이였다고요? 진짜 입실론이라고요?”
“응.”
“여태 제가 제이의 제자인 것도 모른 척했고요?”
“응. 누가 봐도 인형사가 만든 팔을 달고 다니는데 몰라보기가 더 어렵지.”
“왜 모른 척했어요?”
“내겐 별로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거든.”
인형사가 되면 어디 나사가 빠져버리나? 제이는 언젠가 기계화 의수를 전시하고 싶다는 부자에게 전기톱을 들이대며 “내가 만든 팔을 쓰고 싶거든 팔이 필요한 상태로 오라.”고 엄포를 놓았는데, 입실론은 스승을 알면서도 케이에 대해서는 “중요한 정보가 아니라” 모른 척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과 행동에서 진심이 느껴진다는 점이 문제다.
“사장님도 인형사라면 사장님 제자는 어디 있어요?”
라보의 프로그래밍에 온 신경을 쏟던 입실론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 사람의 연두색 눈동자에는 케이가 담겨 있지만, 그의 시선은 그 너머를 바라본다.
“나는 그 책임을 묻기 위해 이 도시로 왔어.”
케이는 지뢰가 터지는 순간을 안다. 그래서 방금 자신이 입실론의 지뢰를 터뜨렸다는 것을 눈치챘다.
“죄송합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메이였어. 곧 타우(Τ)란 인형사의 이름을 계승할 아이였지. 그 아이는 공유 지성에 관심을 보였는데 완성을 앞둔 시점에 살해당했어. 나는 그 흔적을 추적하다 보니 이곳에 왔고.”
공유 지성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던 인공지능 이론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개별 로봇의 인공 지성을 하나로 통합하여, 어떤 개체라도 같은 수준에서 사고하게끔 만드는 가능성에 대한 이론이다. 그러나 세상에 로봇을 만드는 회사는 많았고, 로봇의 목적에 따라 부여되는 인공지능의 구조도 달랐다. 그러니 보안과 알고리즘이 모두 다른 개별 로봇의 지성을 하나의 지성으로 통합해, 같은 수준에서 사고하게 만들기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공사장 파업을 주도한 마르스를 마주치기 전까지는.
“우리는 기억하는 인형사, 기억의 계보를 건드린 쾨르퍼사는 기억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
제자가 살해당한 책임을, 입실론이 섹터 3을 지배하는 쾨르퍼사에 어떻게 물을지 케이는 묻지 않았다. 입실론이 제자의 기술로 엮어낸 공유 지성의 이름으로 충분했다. 마르스(Mars), 그 이름은 먼 과거에 전쟁의 신을 일컬었다.
“생각 없이 말해서 죄송해요.”
“미안할 일은 아니야.”
그는 흘러내린 안경을 올리며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너를 보면 가끔 메이가 떠올라. 딱 네 나이대였거든. 활달하고 호기심 많고……. 너무 이른 나이에 살해당해서 나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변할 때가 있어. 나야말로 미안하다.”
케이는 다른 방향으로 충격받았다. 케이가 몇 번째일지 모를 의수를 고장 내는 동안 메이는 인공지능을 통합하는 공유 지성을 만들었다니. 케이는 튜닝숍 메이를 청소하며 입실론을 본다. 사장은 깊이 몰입해서 케이가 진공청소기를 돌려도 신경 쓰는 기색도 없다. 오늘은 손님이 없어서 다행이다. 손님이 왔다면 다른 세계로 건너간 사장을 보고 성질을 냈을 테니 말이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케이는 공방으로 돌아왔다. 제이는 없었다. 어지간히 골치 아픈 의뢰거나, 다 포기하고 재즈바에서 한잔하고 있을 수도 있다. 케이는 앤티크 오토마타를 조정한 입실론이 떠올라 랩톱을 챙겼다. 해가 지는 시간의 재즈바는 아침과 다른 풍경이었다. 작은 무대에서 조명을 받는 피아노 연주자와 금빛 관악기 주자가 호흡을 맞춰 옛날 음악을 연주한다. 케이도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은 선율이었다. 부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바에 머물며 바텐더가 만든 술과 간식을 즐긴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스승은 보이지 않았다.
“스승님, 저 왔어요.”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제이는 항상 끼고 다니는 장갑까지 벗었다. 스승의 기계화 의체 손가락 끝에는 옛날에 쓰이던 공구가 있다. 저것까지 꺼냈다면 진짜 만만치 않은 인형이었던 거고, 저것까지 꺼냈는데도 해결이 안 됐으면 보통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했다. 스승도 해체는 포기하고 종이에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었다.
“이음매는 찾았어. 부품들도 파악했고. 거기까지 도달하니 진짜 문제를 알게 됐지.”
“진짜 문제요?”
“옛날 인형사들은 아주 작은 부품까지 독자 규격으로 사용했나 봐. 우리 스승님이 전해준 구시대 인형사 공구도 안 통해. 그래서 여태 이걸 해체하려면 어떻게 생긴 공구가 있어야 할지 디자인하고 있었어.”
안 돼. 의뢰는 실패해도 된다. 하지만 스승이 새 공구를 만들면 안된다. 이 사람, 공구는 만들어두면 평생 쓴다면서 분명히 전부 최고급으로 제작할 거다. 그 꼴을 두고 봤다가는 가계부에 메울 수 없는 깊은 구멍이 날 테고, 기약 없이 섹터 3의 영양 젤리를 먹으며 삶을 견뎌야 한다…….
“스승님, 저 튜닝숍에서 배운 게 있는데 옛날 오토마타도 제어 시스템이 있대요.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그 제어 시스템에 접속해서 기능을 끄는 건 어때요?”
“그건 내 영역이 아니라서 튜닝숍 사장을 불러와야 할 텐데, 그 사람, 돈 계산 칼같지 않냐?”
“네.”
“그러면 우리 의뢰비까지 나눠달라고 할 테니까 우리끼리 해보자.”
입실론은 그때 랩톱을 오토마타의 가슴 한복판에 연결했었다. 이 오토마타의 가슴 중앙에는 태엽 꽂는 부분이 있지만, 주변을 꾹꾹 누르니 컴퓨터에 연결하는 작은 구멍이 드러났다. 케이는 그 부위에 케이블을 꽂고 제어 시스템에 접속했다. 시스템은 케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했다. 케이는 인형의 악기 연주와 노래 기능을 껐다.
“연주하고 노래하는 기능은 껐어요.” 그때 케이는 인형 안에서 어떤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명백한 붕괴의 전조였다. 연주 기능을 끄자 오토마타는 3kg 넘는 기타를 들 이유가 없어졌다. 몇십 년간 기타를 안은 채로 굳었던 인형의 관절이 움직였다. 전조를 눈치챈 제이가 떨어지는 기타는 잡았지만 오토마타의 붕괴는 막지 못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혼란에 빠진 케이와 달리, 제이는 기타 상표를 확인하고 안심했다.
“이야, 최신 기술이 좋긴 좋네. 온종일 붙잡아도 나사 하나 못 푼 인형을 완전히 분해해 버리고.”
어쨌거나 의뢰는 망쳤고, 기타값은 물어주지 않아도 되며, 인형은 완전히 망가졌다는 사실만 남았다.
“케이, 그 인형 안에 종이가 있는데 좀 봐줄래? 코어 완충재로 쓴 것치고는 뭐가 많이 쓰여 있는데. 책이야?”
붕괴한 오토마타에서 삐져나온 구겨진 종이는 전부 오토마타 제작 주문서였다. 그 문서들의 맨 끝 문장마저 똑같았다. 아마 이 인형사는 서류에 굉장한 원한을 가진 모양이다. 같은 걸 수십 장 복사해 오토마타에 쑤셔 넣었으니.
“의뢰인은 주문서의 사양으로 제작된 오토마타를 아래 주소로 수령하는 대로 제작자의 부채를 전부 탕감한다.”
그 문장을 들은 스승이 미간을 찌푸렸다.
“의뢰인하고 인형이 가야 할 주소는 어디였냐?”
“쾨르퍼사 본사, 의뢰인은 대문자로 엔(N), 아이(I), 에이(A)라고만 쓰여있어요.”
“그거 한 장만 챙겨놔. 오토마타 부서진 건 신경 쓰지 말고.”
케이는 스승이 시킨 대로 계약서 비슷한 것을 랩톱 사이에 끼워 넣었다. 뒤늦게 인형이 박살 난 것을 안 의뢰인은 화내는 대신 인형을 고쳐오거나, 새 인형을 만들어오라며 둘을 쫓아냈다.
바보 같은 의뢰인, 스승이 제일 좋아하는 작업을 부탁하다니. 이번 달은 공구비 아끼려다가 인형값으로 파산해 버렸구나. 케이는 싱글벙글 웃는 제이를 보며 가계부에 얼마나 큰 구멍이 날지 계산했다. 아득히 깊었다. 

 

조현아
2019년 브릿G 작가 프로젝트로 데뷔했다. 소설 ‘확장윤회양분세계’ ‘밥줄광대놀음’을 출간했다.

2025년 9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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