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와도 대부분의 학생은 책상 앞에 고개를 숙인 채 보낸다. 방학 특강과 밀려오는 숙제 때문이다. 반대로 오직 호기심 하나를 해소하기 위해 방학 내도록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별 덕후’들이 있다. 한국천문올림피아드 여름캠프에 모인 학생들의 이야기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 미래의 칼 세이건을 꿈꾸는 105인의 별을 쫓는 2박 3일 제주도 여정을 함께했다.
“저 구름들 사이에 M57이 있어.”
7월 19일 토요일 오후 9시, 제주 한화리조트 앞은 피곤함을 잊은 학생들이 굴절망원경을 들여다보느라 분주했다. 이날 늦은 오후 제주에 도착해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특강까지 들은 밤늦은 시각에도 이들의 눈은 들여다보고 있는 별처럼 반짝였다. 한라산 끝자락에 위치한 숙소에서 흐린 밤하늘 사이로 드문드문 천체가 모습을 드러내자 서로에게 별을 향한 ‘덕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이내 이야깃소리가 주변의 고요한 풍경을 풀벌레 울음과 함께 가득 채웠다.
학생들이 유난히 눈에 불을 켜고 하늘을 뒤지던 이유는 당일 관측 대상인 밝은 별뿐만 아니라, 바로 천문학계의 마라톤 ‘메시에 마라톤’까지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메시에 마라톤은 메시에 천체를 찾는 대회다. 메시에 천체는 프랑스의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가 혜성을 찾는 데 방해가 되는 천체들로 작성한 110개의 천체 목록을 말한다. 1970년대에 미국과 스페인 아마추어 천문인들이 소형망원경으로 하룻밤 안에 천체들을 찾으면서 메시에 마라톤이 시작됐다. 학생들은 아마추어 천문인답게, 광대한 해변에서 조개껍데기를 찾듯 광활한 우주에서 빛나는 천체를 집어냈다.
한국천문학회 산하 한국천문올림피아드위원회는 매년 전국의 중학생 및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국제 천문 경시대회에 참가할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한국천문올림피아드(KAO)를 개최한다. 동시에 매년 여름이면 이렇게 여름 천문캠프를 열어 참가자를 모집한다. 그간 여름 천문캠프는 경기 국립과천과학관에서 당일치기로 진행돼 왔다. 그러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한국천문학회 측과 양해각서(MOU)를 맺으며 지원을 받아 올해 처음으로 제주에서 2박 3일간 이뤄졌다.
학생들은 제주도의 밤하늘을 관측할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캠프 내내 고개를 들고 종종 하늘을 바라봤다. 한창 학원 방학 특강 등으로 바쁠 시기지만 별 덕후 학생들에겐 별 관측이 책상 앞 공부보다 의미있게 느껴졌다. 한 학생은 여름캠프가 “연예인 콘서트보다 값진 시간”이라며 만족감을 전했다.

별을 보며 생을 탐구하는 이공계 철학, 천문학
첫날 첫 일정부터 밤하늘에 푹 빠진 학생들. 이들은 왜 이토록 별을 들여다보는 걸까. 땅을 열심히 파면 100원짜리 동전을 얻을지 모르지만, 하늘을 뚫어지게 노려본들 10원 하나 나오지 않는데 말이다. 학생들이 천체 관측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박병곤 한국천문학회장에게 슬쩍 묻자, 박 회장은 “천체를 관측하는 천문학은 인생에 쓸모가 많은 공부”라고 답했다.
“천문학은 보기보다 인생에 굉장한 도움이 됩니다. 요즘의 이공계 공부는 주로 무언가를 만드는 구체적인 기술을 배우려고 하잖아요. 반면 천문학은 곧 하늘을 공부하는 ‘철학’이라서 인생의 기반 지식을 배우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을까’를 끝없이 탐구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천문학은 취업에 도움이 안 될 거야’라는 흔한 걱정과 달리, 천문학은 수많은 다른 진로에 활용할 수 있어요. 이공계의 철학과 같은 학문이죠.”
옆에서 박 회장의 설명에 귀 기울이던 윤성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겸 한국천문올림피아드 위원장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보탰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이 별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데아’라는 개념도 안 나왔을 거예요. 그의 사상처럼 땅과 하늘을 구분시키는 발상도 없었을 테고요. 별 관측이 없었다면 철학이나 종교의 발전도 지금과는 달랐을 겁니다.”
이어 윤 위원장은 인류 문명의 발전에도 천문학이 얼마나 지대한 기여를 했는지 덧붙였다. “지구에 구름이 1년 내내 껴있어서 별을 보지 못했더라면 문명이나 과학이 얼마나 발전할 수 있었을까라는 상상을 종종 합니다. 시간의 개념부터 농사, 항해 등 역사 속 문명은 전부 별을 보고 연구한 결과로 발전했거든요. 근대의 지동설에서 뉴턴의 만유인력,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까지 모두 별에서 나온 이론들입니다. 인류가 별을 몰랐다면 분명 문명 성취가 힘들었을 겁니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원지가 천문학인 거죠.”


천문은 협력의 학문, 그 현장을 엿보다
“풀었다…!”
둘째 날은 이른 아침부터 학생들이 강당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고난도의 올림피아드 문제를 풀기 위해 두뇌를 모으는 그룹 프로젝트를 위해서였다. 교육 봉사 중인 천문학과 대학생들이 조별 멘토로 나섰다. 처음에는 머리를 싸매며 진도를 빼지 못하던 학생들이지만, 한두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해답을 찾는 데 성공했다. 복잡한 문제를 두고 서로 협력하는 학생들을 보던 윤 위원장은 이 모습이 “천문학 연구의 핵심”이라고 귀띔했다.
윤 위원장은 “천문학은 그 어떤 학문보다 국제협력이 활발한 분야”라며 설명에 나섰다. “천문 관측 기기는 굉장히 비싸요. 그리고 위치에 따라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도 다릅니다. 관측이 곧 발전이 되는 천문학은, 그래서 각자의 관측 결과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등 협력이 중요하죠. 천문학은 단순히 주어진 문제 해결을 잘하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무더운 날씨가 점차 풀리는 오후에는 천문 협력 현장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한라산 언저리에 위치한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탐라관측소로 향했다. KVN은 한국천문연구원이 운영하는 거대한 전파망원경 시스템으로, 한국에선 서울과 평창, 울산 그리고 제주에 각각 세워진 전파망원경으로 구성된다. 네 망원경은 사각편대를 이뤄 하나의 시스템으로 지름 500km에 이르는 관측망을 만든다. 여러 전파망원경의 데이터를 취합하면 안테나가 커지는 효과가 있어, 실시간으로 소통, 협력하는 네 망원경을 통해 보다 선명한 영상을 얻어내고 있다.
거대한 전파망원경에 빠져있던 학생들은 이동 시간이 되자 아쉬움을 삼키며 제주별빛누리공원으로 향했다. 제주별빛누리공원은 4D영상관, 천체투영관, 관측실 등을 모두 갖춘 제주도의 대표 천문우주 과학시설이다. 해가 기우는 오후 7시를 넘겨 도착한 학생들은 우주의 역사를 시청하는 천체투영관으로 들어섰다. 컴컴한 조명에 푹신한 의자, 온종일 바쁜 일정을 따르느라 쌓인 노곤함조차 별덕들의 눈을 감기진 못했다. 상영이 끝나고도 이들은 천문올림피아드 국가대표 선배의 올림피아드 출전 경험담 등을 듣기 위해 동분서주 움직였다.
외부 일정을 마치고 오후 9시를 넘겨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학생들이 곧장 향한 건 방이 아닌 밖이었다. 자율 천체 관측 실습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여서다. 전날 못다한 메시에 마라톤의 시동을 다시 켠 것이다. 이들은 정리 시간이 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하늘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피곤하면 들어가 쉬어도 되는데, 끝까지 관측하려는 의지만 봐도 얼마나 다들 별 덕후인지 아시겠죠?” 캠프 내도록 학생들을 이끌던 김경희 한국천문올림피아드위원회 사무국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덕’에서 전문가로의 첫 단계, 천문올림피아드
“질문 수준이 너무 높아져서 이만 끝내야 할 것 같은데요?”
캠프 마지막 날, 오전부터 암흑에너지 특강에 나선 이강환 천문학자는 학생들의 수준급 질문에 당황하면서도 기쁜 내색을 보였다. 특강이 끝나고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학생들이 연이어 전공자 수준의 깊은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천체망원경과 전파, 암흑에너지 등을 주제로 열린 총 세 번의 특강에서 학생들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특강 후 수료식을 가지며 2박 3일 캠프 여정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들의 별을 향한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당장 내후년 열릴 천문올림피아드가 그 시작이다. 윤 위원장은 별을 향한 여정에서 천문올림피아드가 갖는 의미를 이렇게 전했다.
“우주와 천문에 깊은 호기심을 갖는 학생들에게는 천문올림피아드가 그 욕구를 발현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올림피아드는 개인적으로 탐구하는 게 아니고, 단체로 연구하는 과정이에요. 천문 공부에 굉장히 효과적이죠. 혼자면 성장이 느리고 사고가 좁아질 수 있어요. 반면 잘하는 부분과 관심사가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면 동기부여와 자극이 되고, 결국 천문학의 핵심인 융합을 배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