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양자 도장의 비기 규비도를 익히는 데 성공한 양자광. 그러나 기쁨을 나누기도 전에 스승이 적에게 당하고 만다. 자광은 상대를 꿰뚫는 ‘양자 선심’으로 적을 찾아내는데···. 상상 속 무공 같은 양자 센싱을 연구하는 임향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의 연구실을 7월 31일 방문했다.
편집자 주

한계의 극한까지 꿰뚫는 ‘양자 센싱’
7월 31일, 무더위가 절정에 달한 날이지만 ‘양자 선심’의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를 찾아갔다. 이곳에서 만난 임향택 책임연구원은 대상의 극한까지 꿰뚫어 정보를 측정하는 ‘양자 센싱(양자 측정)’을 연구하고 있었다. 양자와 센싱, 낯선 두 단어의 조합은 어떤 뜻일까. 처음 접하는 ‘비기’인 만큼 우선 임 책임연구원의 설명을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양자 센싱이란 양자를 이용해 고전적으로는 달성할 수 없던 정밀도에 도달하는 측정 기술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더욱 촘촘한 자가 생긴 셈이에요. 만약 1mm 단위의 자가 지구상에서 가장 정밀한 자였다면 1mm 간격의 길이 정보를 재는 게 최대였겠죠. 양자 센싱을 이용하면 0.0001mm 단위까지 길이 측정이 가능한 셈입니다. 이로써 측정할 때 오차가 훨씬 줄어들며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어요.”
센싱(sensing)이란 물체를 감지하고 인식하는 과정이다. 레이더와 같은 센서(sensor)를 사용해 주변 환경이나 대상의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일을 뜻한다. 주로 측정을 원하는 대상에 전자기파(빛)를 쏴 반사된 정보를 분석한다. 다만 기존의 센서는 물리적인 한계가 뚜렷했다. 나노미터 정도의 미세한 단위까지 측정하더라도, 광자나 전자처럼 입자 수준의 정보는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자 센싱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 입자 수준의 정보까지 분간해 낸다.
양자 센싱에서는 빛 알갱이인 ‘광자’ 하나하나까지 셀 수 있다. 임 책임연구원은 이를 ‘눈 수술’에 빗댔다. “빛을 광자 단위까지 측정할 수 있다는 건 흐린 눈으로 물체를 보던 사람이 라식 수술을 한 듯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양자 센싱은 양자 얽힘 상태의 광자들을 원하는 대상에 쏴 측정합니다. 그럼 같은 파장의 빛을 써도 최소 몇 배 더 정밀하게 볼 수 있어요. 광자 하나까지 측정하기 때문이죠. 고전적 방법의 한계를 뚫을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측정에 관해선 전능해 보이는 양자 센싱에도 천장은 있다.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제안한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양자역학에서도 측정의 정밀도에 관한 한계(하이젠베르크 한계)가 존재한다. 즉, 양자 센싱이란 ‘이론상 양자역학에서 허용하는 가장 최고로 정밀한 측정’이다. 기존 측정이 일반 레이저를 썼다면, 양자 센싱에서는 레이저(광자)에 얽힘을 가해 양자 수준의 정보까지 읽을 수 있는 덕이다.

‘과자 부스러기’처럼 정보 남기는 ‘광자 양자컴’
양자 센싱의 재료는 빛을 구성하는 입자인 광자다. 물의 가장 작은 단위가 H2O라는 물 분자 알갱이인 것처럼 빛도 광자라는 빛 알갱이로 이뤄진다. 광자는 빛의 최소 단위 입자로서, 광자를 활용하면 양자 센싱과 양자컴퓨터처럼 무궁무진한 양자 기술을 구현할 수 있다. 임 연구원 역시 광자 하나하나를 조작해 양자 센싱을 포함한 양자 기술을 구현하는 방법을 주로 연구한다.
그가 다루는 광자를 기반으로 한 양자 기술 분야에는 양자 센싱 외에 광자 기반 양자컴퓨터도 있다. 광자 기반 양자컴퓨터는 광자를 하나의 큐비트로 이용한다. 입자의 전하나 자성 정보를 큐비트로 이용하는 여타 양자컴퓨터와 달리, 광자 기반은 편광, 위상, 경로 등 광자의 다양한 ‘물리적 특성’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수직 편광은 0, 수평 편광은 1로 정의하고, 두 상태로 양자 얽힘을 만들어 연산하는 식이다.
광자 큐비트는 ‘물리적 실체가 없다’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빛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임 책임연구원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주인공들이 길을 따라 흘리는 과자 부스러기처럼 ‘빛이 남긴 길’이 곧 큐비트라고 부연했다. “광자는 이온이나 원자 큐비트처럼 물리적 큐비트가 없어요. 광자가 지나간 흔적으로 연산 결과를 확인하는 거죠. 따라서 광자가 지닌 편광이나 경로를 바꾸면서 정보를 정의하는 셈입니다.” 광자의 ‘부스러기’는 거울, 빔 스플리터, 위상 변조기 등 각종 광학 소자를 이용해 관측한다. 빔 스플리터는 광자를 두 경로로 나누어 중첩 상태를 만들고, 위상 변조기는 광자의 위상을 정밀하게 조절해 연산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광자가 얽힘 상태를 형성하면서 정보를 정의하고, 복잡한 연산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임 책임연구원이 광자 기반 양자컴퓨터 연구에 뛰어든 이유는 광자에 포기하지 못할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우선 광자는 극저온 냉각 없이 상온에서도 작동할 수 있어 유지 난이도가 크게 줄어든다. 또한, 광자는 광섬유를 통해 수십 킬로미터 이상 전송할 수 있어 장거리 양자 통신에도 유리하다. 거기다 광자는 주변 입자와도 잘 상호작용하지 않아서 안정적인 양자 상태를 유지하기 용이하다. 이 덕분에 결맞음을 유지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다.
물론 광자에도 다른 양자컴퓨터 방식처럼 한계는 있다. 단일 광자를 원하는 시점에 정확하게 생성하는 기술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광자는 전송 과정에서 소멸하거나 손실될 위험이 큰 탓이다. 또, 광자 검출기의 효율이 아직 온전하지 않아서 측정 단계에서 정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연산을 하는 데 핵심인 대규모 집적 광회로를 제작하는 것도 높은 정밀도와 비용을 요구해 상용화를 가로막는 요소로 꼽힌다. 여전히 양자컴퓨터 춘추전국시대가 이어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임 책임연구원은 광자 기반 방식에 대해 강한 확신을 보였다.
“광자 기반 양자컴퓨터는 양자컴퓨터 플랫폼 중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는 플랫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응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특히 양자 기술을 한 데 연결하는 양자 통신과 양자 네트워킹 등에서 그 진가를 발휘할 겁니다. 광자 기반 양자컴퓨터 분야 선두 주자인 미국의 ‘프사이퀀텀(PsiQuantum)’은 이미 한화로 2조 원 이상의 투자를 받으며 광자 기반 양자컴퓨터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고요.”
광자 기반 양자컴퓨터의 연산

‘분산형 양자 기술’을 열어줄 광자
“서울과 대전, 부산에 있는 양자컴퓨터들은 모두 하나로 이어질 겁니다.” 임 책임연구원은 광자가 곧 양자 기술을 잇는 틀이라고 설명했다. “광자는 기존 통신 체계인 광섬유를 통해서 먼 거리도 넘나들 수 있습니다. 광자가 미래 양자 기술의 기반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예요. 기존 인터넷망이 광통신을 통해 연결되듯이 양자 통신 또한 광자를 이용하면 같은 원리로 가능합니다. 다른 지역에 떨어져 있는 양자컴퓨터끼리 연결해 클라우드 시스템을 만드는 것과 같아요.”
이처럼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양자컴퓨터들을 하나의 양자컴퓨터로 연결해 연산하는 기술을 ‘분산형 양자컴퓨터’라고 부른다. 전국에 있는, 나아가 전 세계에 있는 양자컴퓨터를 하나로 모으는, 양자컴퓨터 궁극의 목표인 셈이다. 멀리 떨어진 양자컴퓨터를 연결하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임 책임연구원은 이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슈퍼컴퓨터”를 언급했다.
“슈퍼컴퓨터는 중앙처리장치(CPU) 100개를 연결해서 100대의 컴퓨터가 마치 하나의 컴퓨터처럼 돌아가는 것처럼 엄청난 성능을 내는 식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양자컴퓨터도 여러 개 큐비트 연산 장치를 하나로 연결하면 폭발적 성능을 낼 수 있습니다. 만약 복잡한 분자 구조를 계산하고 싶다면, 분자의 전자 개수 하나당 큐비트 하나가 필요해요. 대략 200개가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내가 가진 큐비트가 100개밖에 없어도 큐비트 100개짜리 컴퓨터를 하나 더 연결하면 연산 가능합니다. 이렇게 양자컴퓨터의 계산 능력을 키우고 싶으면 여러 개 연결해 병렬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게 분산형 양자컴퓨터예요.”
양자 얽힘을 이용한 1대1 연결은 ‘양자 통신’, 3곳 이상의 다자 간 연결은 ‘양자 네트워크’라고 분류된다. 임 책임연구원은 분산형 양자컴퓨터의 시작으로 KIST 실험실 인근에 있는 한양대 연구실과 양자 얽힘 채널을 연결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그의 목표는 1대1 양자 통신을 넘어선 전국적 양자 네트워킹이다. “현재 한양대 실험실과 양자 얽힘 채널을 연결 중인데, 앞으로 서울대, 연세대처럼 서울 내 대학부터 시작해 대전과 부산 등 먼 곳까지 확대하려고 합니다. 마치 기존 고전 컴퓨터에 있던 병렬연결 개념을 양자컴퓨터로 확장하는 거죠.”
그렇다면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양자컴퓨터들을 대체 어떻게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걸까. 핵심 원리는 ‘양자 얽힘’과 ‘양자 순간이동’이다. 양자 얽힘을 통해 서로 떨어진 양자컴퓨터의 큐비트들이 마치 하나의 시스템처럼 동작하게 할 수 있다. 양자 순간이동은 물리적으로 큐비트를 이동시키지 않고도 그 상태 정보를 다른 양자컴퓨터 속 큐비트로 전달한다. 이를 통해 각 양자컴퓨터의 연산 결과를 합쳐 대규모 병렬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분산형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려면 그 전에 양자 네트워크 구현이 필수다. 즉, 양자 통신부터 양자 네트워크, 분산형 양자컴퓨터까지의 기술을 순서대로 달성해야 한다. 임 책임연구원은 양자 네트워크가 구동된다면, 지금의 인터넷 환경이 양자컴퓨터에도 적용될 것이라 점쳤다. 그는 “광통신이 가능해지자 각자의 지역에서만 소통하던 전 세계의 컴퓨터가 하나로 연결됐다”면서 “양자 네트워킹이 실현된다면 양자컴퓨터에도 인터넷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광자 기술은 어떤 미래든 살아남을 것”
현재 양자 기술은 어느 하나의 기술이나 플랫폼이 치고 나가지 않는다. 비슷한 수준에서 각자의 장점을 겨루는 양상이다. 향후 어떤 기술이 천하통일을 할지 묻자 임 책임연구원은 “광자는 어떤 플랫폼이 전권을 쥐어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양자 기술이 공존하는 미래를 제시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원자, 초전도, 양자점 등 다양한 플랫폼이 공존하고 있어요.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죠. 지금의 인터넷 체계가 윈도우 기반으로 통일된 것처럼 양자컴퓨터의 메모리가 될 큐비트는 특정 플랫폼이 결국엔 득세할 거예요. 다만 어떤 시나리오에도 광자 기술은 살아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광자 기반 양자 통신과 양자 네트워킹에서 광자 기술이 없으면 안 되거든요. 어쩌면 제가 광자에 유독 애정을 느끼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