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지구평면설’. 지구평면설의 지지자를 뜻하는 ‘flat-earther’라는 영단어는 그 일차적인 의미 외에도 ‘틀린 것으로 증명된 이론을 고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지구평면설이 틀린 것으로 증명된 이론, 유사과학의 대표 격인 이론이라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그런 지구평면설을 믿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편집자 주
이 만화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Behind the Curve)’의 일부 장면에서 착안해 만들어졌습니다.
지구는 평평하다는 오래된 직관
지구평면설은 지구가 공처럼 둥글지 않고 평평한 원반 형태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모델마다 세부 내용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지구평면설에 따르면 지구의 중심에는 북극이 있고 가장자리에는 거대한 얼음벽이 있으며, 중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인간은 지구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으며 인공위성과 우주 탐사는 모두 조작된 것이다. 정부와 과학자, 우주비행사들은 모종의 이유로 이 진실을 숨기고 있다.
요약된 주장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지구평면설은 유사과학 중에서도 믿기 위한 난도가 상당히 높다. 앞선 연재에서 다뤘던 백신부정론이나 MBTI는 일상적인 대화의 소재가 되기도 할 정도로 거부감이 적고 널리 알려져 있다. 설령 MBTI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MBTI를 얘기할 때 면전에서 반박할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지구평면설은 다르다. 당신이 지구평면설을 진지하게 믿는다고 고백한다면, 친구들은 당신과의 우정을 계속 이어 나가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유명인이 지구평면설을 믿는다고 발언하면 영원히 온라인상에 박제돼 조롱거리가 될 테다. 오죽하면 지구평면설을 믿는 척하면서 노이즈 마케팅한다는 소리까지 나올까.
지구평면설이 이렇게 유사과학 중에서도 특히 조롱의 대상이 된 데에는 한 가지 통념이 영향을 끼쳤다. 바로 ‘고대 그리스인들도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알았다’라는 것이다. 이는 일정 부분 사실이다. 피타고라스는 달이 둥글면 지구도 둥글어야 한다고 추론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위도에 따라 볼 수 있는 별자리가 달라진다고 말했으며, 심지어 에라토스테네스는 위도에 따라 달라지는 태양 그림자를 이용해서 지구의 둘레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추정했다. 마찬가지로 중세의 지식인들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 왕권의 상징이었던 ‘보주’의 둥근 디자인은 세계, 즉 둥근 지구를 상징했다. 하지만 철학자와 지식인들이 알았던 사실을 대중도 알고 있었을까?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이 평평하다는 생각은 철저히 시각적 직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이 한 번에 볼 수 있는 시야에 비해 지구는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인간은 지구의 곡률을 감각으로 느낄 수 없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사실’은 학교나 책에서 배워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 경험 속에서 의문의 여지 없이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것이었다. 즉, 지구평면설은 체계적인 이론으로 존재하다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 폐기된 것이라기보다는, 직관에 기반한 상식으로 이어져 오다가 근대에 와서 새롭게 체계를 갖춘 유사과학이라 볼 수 있다.
지구평면설이라는 허수아비
흥미로운 것은 지구평면설이 등장하기 몇백 년 전부터 지구평면설은 풍자의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지식인들은 항상 지구가 구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상식이 전해지지 않은 ‘깜깜한 시기’는 없었다. 심지어 유럽 지식인들은 논쟁 상대를 비난하기 위해 상대편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을 정도로 어리석다’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예를 들어 17세기의 개신교도들은 가톨릭 교육을 비판하기 위해 “가톨릭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가르친다”라고 선전했다.
지구평면설을 구시대적이고 낡은 사상과 연결 짓는 경향은 18세기 들어 종교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더욱 자주 나타났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했던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구가 구형이라고 주장했던 이유로 종교 재판에 회부됐으며, 교회의 압력에 의해 지구가 평평하다고 인정해야 했다고 말하는 오류를 저지르기도 했다. 실제로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주장해서 종교 재판에 회부됐음에도 말이다.
19세기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지구의 나이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인해 이른바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격화된 시기다. 과학의 옹호자들은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라는 프레임으로 역사를 재해석했으며, 이 과정에서 지구평면설은 종교가 과학과 대립하면서 무지를 조장하고 인류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근거로 사용됐다. 심지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항해를 떠났으며,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그를 보고 비웃었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실제로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신항로를 찾기 위해 항해를 떠났지만, 계산 과정에서 지구의 반지름을 너무 작게 잡는 실수를 저질러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이처럼 지구평면설은 등장하기도 전에 비판받았다. 특히 19세기 들어 중세가 ‘종교적 암흑기’였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중세인들이 실제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는 잘못된 통념인, 이른바 ‘플랫 에러(flat error)’가 널리 퍼지게 됐다. 이렇게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격화되던 시기에 등장한 지구평면설이 종교와 강하게 결부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오직 눈으로 보는 것만 믿겠다
지구평면설이 하나의 체계적인 주장으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중반 영국의 발명가이자 작가인 새뮤얼 로버섬이 ‘회의론적 천문학(Zetetic Astronomy)’이라는 제목의 책자를 발간했을 때였다. 이후에 ‘둥글지 않은 지구(Earth Not a Globe)’라는 책으로 확장된 이 책자에서 로버섬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지구평면설의 기본적인 개념들(원반 모양 지구, 가장자리의 얼음벽,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는 천체들 등)을 제시했다.
로버섬은 기독교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관점을 고수하면서 성경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기술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책에서 “성경은 인간의 감각에서 오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직관을 지지하며, 이는 과학을 비롯한 인간의 추측을 넘어선다”고 말했다. 로버섬이 창시하고 그의 사후에도 이어진 ‘평평한 지구 운동’은 과학이라는 인간의 오만으로부터 종교적 진리를 회복하는 종교 운동이었다. 지구평면설의 이러한 종교적 성격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일부 지구평면설 지지자들은 기독교 근본주의와 그에 입각한 음모론을 지구평면설과 결합시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오늘날 지구평면설을 믿는 이들이 모두 기독교 근본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기독교도가 아님에도 지구평면설을 믿는 사람들은 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것일까? 그에 대한 힌트는 로버섬이 최초에 제안했던 명칭에서 찾을 수 있다. ‘zetetic’은 ‘탐구심을 갖고 나아가는’ 또는 ‘회의적인’이라는 뜻이 있다. 하지만 로버섬이 주장한 회의주의는 현대의 과학적 회의주의와 많은 면에서 다르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주장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요구하고, 이를 통해 지식의 신중한 확장을 추구하는 자세다. 반면에 로버섬의 회의주의는 우리가 절대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계속 “모른다”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로버섬의 회의주의는 지구평면설 지지자들의 두 가지 특징을 설명해준다. 먼저, 첫 특징은 지구평면설 커뮤니티 내에서도 다양한 지구 모델이 상존하는 점이다. 평평한 지구에 극점이 몇 개가 있는지, 일식과 월식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지구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등에 대해서 지구평면설 지지자들은 통일된 모델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지구평면설 지지자들은 지구 바깥에서 직접 관찰할 수 없으므로 (이들에 따르면 인공위성과 우주비행은 모두 사기라는 것을 잊지 말자) 절대적인 진리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오직 내 눈으로 보는 것만 믿겠어!”라고 말하는 지구평면설 지지자들의 태도다. 이들은 과학의 도구와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자신의 감각으로 직접 받아들인 것만 인정하겠다고 말한다. 그들의 이런 주장이 일견 합리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들의 회의주의적인 태도가 선택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것을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도 신뢰한다. 스마트폰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 그 작동 원리를 세세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스마트폰이 잘 작동할 거라고 신뢰하고, 건물 기둥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고도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신뢰한다. 우리가 스마트폰과 건물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그와 연관된 과학자, 엔지니어, 회사, 정부와 제도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지구평면설 지지자가 아닌 대부분 사람은 지구가 둥글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 중에 둥근 지구의 증거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지구가 둥글다고 믿는 것은 과학과 교육 제도라는 시스템을 믿기 때문이다. 지구평면설 지지자들에게 지구가 둥근 과학적 증거를 아무리 들이밀어도 설득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유사과학 테이스팅 노트
지구평면설
역사성
★★★☆☆지구가 평평하다는 직관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됐지만,
구체적인 지구평면설은 19세기 들어서야 제시됐다.
흥미도
★★★★☆지구평면설은 진입 장벽이 높은 만큼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믿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관련된 책과 다큐멘터리가 나왔을 정도다.
완성도
★★☆☆☆통일된 평면 지구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제시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영향력
★★☆☆☆지구평면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많은 사회적 리스크를 수반한다. 널리 퍼질 가능성은 낮다.
총평
“자신의 견해 때문에 모욕과 조롱과 무시를 당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없다. (중략) 재미 삼아 그런 모욕을 견디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리 매킨타이어(과학철학자,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中)
장준오
현재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취미로 잡지를 만들고 있다. ojunj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