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독한 환경 속에서 오랜 기간 대를 이어온 이들에겐 굳은살처럼 흔적이 남는다. 산소가 부족한 티베트 고산지대에 살아가는 이들은 혈중 산소 운반에 유리한 돌연변이 유전자를 얻었고, 고대 유럽에선 전염병과 기근이 만연한 가운데 우유를 소화시킬 수 있는 유당 내성을 갖춘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런 적응의 흔적이 누구보다도 치열한 삶을 살아간 한국 제주의 해녀에게도 남았다는 연구 결과가 5월 27일 국제학술지 ‘셀 리포트’에 발표됐다. 물질을 위해 진화할 수밖에 없었던 제주 해녀의 삶을 만나기 위해 8월 2일, 연구가 진행된 제주 하도의 바다에 몸을 던졌다.

제주 하도 바닷물은 짰다. 물질을 하려면 일단 바닷속에 머리를 집어넣어야 한다. 파도에 따라 몸이 해초처럼 나부끼는 와중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해 바닷속을 살핀다. 전복과 성게가 ‘나 잡아 잡수쇼’ 하고 나와 있을 리 없다. 까만 현무암 사이 숨은 바다생물을 찾다 보면 금세 숨이 달린다. 고개를 들어 숨을 쉬면 입으로 바닷물이 들이친다. 그 탓에 물 속에서도, 밖에서도 정신이 얼얼하다. 일주일 전, 하도어촌체험마을 홈페이지에서 해녀 물질 체험을 신청할 때는 상상 못했던 고충이다. 해녀들은 이렇게 하루 평균 7~8시간 동안 물질을 한다.
기자가 8월 2일, 해녀 물질 체험을 하러 제주로 떠난 건 멜리사 일라르도 미국 유타대 의대 생체의학정보학과 교수팀이 발표한 한 편의 논문 때문이었다. 이들은 5월 27일 국제학술지 ‘셀 리포트’에 제주 해녀의 유전자에서 물질을 위한 진화적 적응의 증거를 찾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doi: 10.1016/j.celrep.2025.115577
기자는 서울 토박이다. ‘유전자부터 다르다’는 제주 해녀의 잠수 능력과 기자의 잠수 능력을 비교해 보고 싶었다. 취미로 수영을 하고 있어서 자신감이 붙은 것도 사실이었다. 제주 하도는 제주에서 가장 많은 해녀가 사는 마을로, 일라르도 교수팀이 연구를 수행한 곳이다. 해녀 물질 체험을 할 때 경력 40년 이상의 베테랑 해녀들이 동행한다고 했다. 기자의 잠수 시간이 해녀의 잠수 시간과 유의미하게 다른지 측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생각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는 바다에 머리를 담그자마자 알았다. 출렁이는 파도를 이기고 ‘잠수’라고 할 만큼 머리를 오래 담그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래도 바닷속은 아름다웠다. 해녀 물질 체험이 진행된 하도 바닷가의 수심은 고작해야 1~2m 정도였다. 수면에서 산란된 햇빛이 현무암 위에 내렸다. 복어나 돔, 전갱이 등 자잘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빛줄기 사이를 쏘다녔다.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지. 다가와 손가락을 스쳐 지나가는 녀석도 있었다.
파도가 자아내는 포말 탓에 시야가 깨끗하지 않았다. 그래도 간혹 돌 틈 사이에 성게가 끼어 있는 모습이나, 돌 위에 손톱만 한 고둥이 몇 마리 올라가 있는 모습을 포착할 수는 있었다. 성게를 잡진 못했다. 성게를 잡으려면 돌을 들어내야 할 텐데, 그만큼 숨을 참다가는 성게가 아니라 사람을 잡을 것 같았다. 체험이 진행되는 2시간 여 동안 기자가 세운 최대 잠수 기록은 고작해야 18초였다.
바닷물 맛을 한참 보고 있는데, 저쪽에서 베테랑 해녀가 기자를 불렀다. 물 속을 가리키기에 들여다보니 주먹만 한 소라 하나가 떡하니 바위 위에 올라가 있었다. ‘이걸 왜 못봤지?’ 의심하며 얼른 잡았다. 첫 수확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육지 사람의 형편없는 물질 실력을 배려해 당신이 잡은 소라를 슬쩍 올려놓은 것 같았다. 그에게 “어떻게 이렇게 잠수를 잘 하시냐”고 물었다.
“물을 세게 차고 들어가야 해, 깊이 들어가면 (소라가) 있어.”
깊이 들어가려면 숨을 18초보다는 더 참아야 할 텐데. 숨을 얼마나 오래 참느냐고 물었더니 “몰라, 한번에 50초 참나?”란 덤덤한 답이 돌아왔다.
제주해녀문화연구원에서 2015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제주 해녀는 물질을 할 때 한번에 40~50초간 숨을 참는다. 그 사이 숨을 쉬는 시간은 10~20초 정도다. 이걸 한 시간에 60여 회씩 반복하는 것이다. 고령의 해녀 중에는 청소년기부터 물질을 한 이도 많다. “잠수를 어떻게 그렇게 오래 하세요, 저는 무섭던데….” 기자의 감탄을 뒤로 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해녀 삼춘이 허허 웃으며 먼바다로 나아갔다.

물질과 연관된 신체 특성 실험 결과

찬 바다 위로 퍼진 숨비소리, 제주도민 유전자에 남았다
해녀가 ‘바당(바다)’에 목숨을 내 놓고 살아간 세월은 유전자에 남았다. 연구팀은 논문에 “자연 선택과 상대적 고립은 유전자와 생리적 특성을 바꾼다”면서 “우리는 찬 바닷물에서 놀랄 만한 잠수 능력을 보이는 것으로 잘 알려진 한국의 여성 다이버, 해녀 또한 이런 변화를 겪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해봤다”고 썼다.
일라르도 교수팀의 연구 대상은 제주 해녀 30명, 해녀가 아닌 제주 여성 30명, 해녀가 아닌 서울 여성 31명이었다. 해녀 그룹은 제주 하도 지역에서 최소 3대 이상 물질을 한 평균 65세의 여성을 선정했다. 해녀가 아닌 제주 여성과 서울 여성의 평균 연령도 65세로 맞췄다. 제주의 해녀가 물질을 통해 얻은 잠수에 특화된 체질이 유전자에 의한 것인지, 세월에 따라 체득한 것인지 구분하기 위해서다.
연구팀은 제주도민의 유전자형에는 한반도 본토 주민의 유전자형과 다른 지점이 있을 거라고 봤다. 제주에서는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부터 사람이 정착해 살아왔다. 제주와 한반도 본토 사이를 오가는 뱃길이 험했기에, 제주가 한반도 본토와 활발히 교류하기 시작한 건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실제로 연구팀이 제주도민과 한반도 본토 주민의 유전자를 비교 분석한 결과, 두 집단은 약 5000~7000년 전부터 분화돼, 유전적으로 뚜렷이 구분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한편, 제주도민 간 유전자 교환은 활발히 일어나, 해녀 집단과 해녀가 아닌 제주도민 집단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유전자의 관점에서 제주도민은 사실 잠수를 하지 않는 해녀로 보인다”고 썼다.
따라서, 해녀와 해녀가 아닌 제주도민이 공통적으로 보인 특성이 서울 여성에서 보이지 않는다면, 이는 해당 특성이 해녀, 나아가 제주도민이 진화를 통해 얻은 유전적 차이에서 비롯함을 알 수 있다. 한편 제주 해녀에게 보이는 특성이 해녀가 아닌 제주도민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면, 이는 해당 특성이 해녀가 훈련을 통해 체득한 결과물이므로 유전자에 남지 않음을 뜻한다.
연구 결과, 오랜 물질의 역사가 제주 해녀의 몸을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바꿨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숨을 참고 잠수를 할 때 인체에서는 ‘잠수 반사(dive reflex)’가 일어난다. 대표적으로는 심장박동수가 줄어들고, 혈압이 높아지는 현상이 있다. 산소를 아껴 쓰기 위해, 심장박동수를 줄인다. 또, 뇌와 심장 등 중요한 기관에 산소가 풍부한 혈액을 먼저 보내기 위해 손, 발 등을 지나는 말초혈관을 수축한다. 그러면 혈액이 주요 장기에 몰리면서 혈압이 높아진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의 잠수 반사를 측정하기 위해 잠수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심박수와 혈압을 측정하는 가운데 10℃의 찬 물에 얼굴을 담갔다. 그 결과, 잠수할 때 해녀의 평균 심박수가 해녀가 아닌 제주도민보다 더 큰 폭으로 감소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렇게 심박수가 줄어드는 증상을 서맥이라고 한다. 해녀의 평균 심박수 변화는 -18.8bpm(beats per minute·1분 당 심장박동수)이었던 한편, 해녀가 아닌 제주도민의 평균 심박수 변화는 -12.6bpm으로 감소폭이 작았다. 심장박동수를 줄여 잠수를 돕는 해녀의 신체적 특성은 후천적인 훈련의 결과물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단일 염기 다형성(SNP) 변이

임신 중인 해녀를 지켰던 유전 변이 ‘rs66930627’
한편, 유전자 차원의 변화도 있었다. 해녀를 포함한 제주도민은 서울의 실험 참가자들보다 이완기 혈압이 10mmHg(수은주 밀리미터) 더 높았다. 이는 잠수를 할 때와, 잠수가 끝난 뒤 잠시 쉴 때 보이는 특성으로 유전적 변이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연구팀은 논문에 “우리는 잠수와 자연 선택의 연관성에 관심이 있다”면서 “특히나 이완기 혈압이 높아지는 현상은 인체가 잠수 중 뇌로 흐르는 혈류를 높이는 식으로 숨을 오래 참는 데 도움을 얻는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팀은 해녀의 오랜 역사가 실제로 유전자에 미친 영향을 살펴봤다. 단일 염기 다형성(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유전자를 분석하면 해녀의 유전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단일 염기 다형성이란, 전체 염기서열에서 한 개의 염기가 달라 발생하는 변이다. 아데닌(A)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구아닌(G)이 위치하는 식인데, 이런 작은 차이 하나하나가 모여 개개인의 고유한 유전자형을 만든다.
분석 결과, SNP 유전 변이 ‘rs66930627’에서 해녀를 포함한 제주도민과 서울의 실험자 간 차이가 보였다. 제주도민에게서는 rs66930627이라고 하는 염기서열의 특정 위치에 사이토신(C)이 있을 확률이 33%로 나타났다. 한반도 본토의 경우엔 이 확률이 7%로 떨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C 대립유전자’는 오히려 이완기 혈압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도 약 10mmHg만큼.
연구팀은 역설적인 상황을 이렇게 해석한다. 해녀의 물질은 자연 선택 결과, 모든 제주도민의 잠수 전후 이완기 혈압을 높이는 진화를 이끌었다. 그게 물질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높은 혈압은 임신기 여성과 태아에게 위험하다는 함정이 있다. 특히 고혈압성 질환인 임신중독증이 발생할 경우 부종이나 발작, 심하게는 조산이나 임산부가 사망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과거 제주의 해녀는 출산 당일까지 물질을 하는 경우도 많았을 정도로 쉼 없이 일했다. 임신 중인 해녀가 물질을 할 때 혈압이 높아진다면, 임신중독증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 위험하다. 그래서 제주도민 인구 33%에 높아진 혈압을 다시 낮추는 유전자가 높은 빈도로 존재했던 것이다.
논문에선 아래 두 문장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rs66930627 변이가 이완기 혈압 감소와 연관된다는 사실은, 자연선택이 제주도민의 이완기 혈압 상승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임신 기간에도 물질을 한 여성 잠수부들이 경험했을 이완기 고혈압의 합병증을 완화하기 위해 자연선택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제주도민의 몸에서 자연 선택이 총 두 번 작용했다는 것이다. 한 번은 물질에 유리한 이완기 혈압을 높이는 방향으로, 또 한 번은 임신기 생존에 유리한 이완기 혈압을 낮추는 방향으로.


해녀 연구할 ‘골든 타임’ 얼마 남지 않았는데…한국은?
일라르도 교수팀과 함께 연구를 진행한 이주영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와 8월 1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해녀 연구에 공백기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한국인이 진행한 연구는 해녀의 생리의학적 특성에 대해 활발히 연구하시던 고 홍석기 전 뉴욕주립대 의대 교수가 은퇴하신 1980년대 이후로 명맥이 끊긴 상태였어요. 해녀 연구의 잠재력에 대해선 이미 해외에 잘 알려져 있어서 저는 미국과 일본에서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하는 내내 해외 생리의학자를 만날 때마다 ‘한국의 해녀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는 질문을 자주 들었죠.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해녀 연구를 하리라 생각했고, 서울대에 온 2012년부터 해녀의 추위 적응 능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일라르도 교수가 협력 제안을 한 건 2010년대 말이었고요. 한국 해녀 연구의 공백기가 약 20년 있었던 셈이죠.”
한국에서 해녀 연구의 명맥이 끊긴 사이, 해녀의 생리의학적 특성은 해외에서 더 주목받는 연구 주제가 됐다. 고 홍 전 교수는 미국과 일본의 연구 지원을 받아 해녀를 연구했다. 2000년대 들어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미국 해군도 한국 해녀 연구에 연구비를 지원했다. 해녀들은 잠수복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부터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가리지 않고, 얇은 면으로 된 물옷에 의지해 바닷속을 누볐다. 이들이 극한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었는지 알아내면 극지방이나 우주 등 극한환경에 적응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일라르도 교수 또한 미국국립보건원(NIH)의 연구 지원을 받아 해녀를 연구했다. 일라르도 교수팀은 논문에서 “해녀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는 앞으로 질병의 유전적 조절에 대한 이해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연구자들은 한국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는 해녀의 생리의학적 연구가 현재 전무하다고 말한다. 해녀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이자, 한국 국가무형문화재다. 문화재를 관리하는 국가유산청이나 해녀 정책과 해녀 문화 보존을 위한 부서인 제주도청 해녀문화유산과에서는 현재 해녀의 생리의학적 특성에 대한 연구 지원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다. 관계자들도 유관 부서를 파악하기 어려워했다.
2015년 제주해녀물질실태조사를 진행한 사단법인 제주해녀문화연구원의 조남용 대표는 7월 31일 과학동아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생리의학 분야에서도 해녀에 대한 제대로 된 학술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선 나오고 있지만, 국가 차원의 지원이 없어 따로 후원금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제주해녀물질실태조사 또한 개인이 보낸 후원금을 모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해녀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나 어린 시절부터 물질을 했던 해녀가 속속 은퇴하는 상황이다. 이 교수는 애석하다는 듯 말했다.
“제주 해녀분들이 지금 평균 70대세요. 물론, 50대나 60대 해녀도 계시지만 이들은 소수죠. 청소년기 이전부터 물질을 시작한 경우엔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얻은 특성이 성인기 이후부터 물질을 시작한 해녀보다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런 해녀가 점점 줄고 있어요. 앞으로 5년 이내로 모두 물질을 그만둘 겁니다. 어려서부터 추위에 노출된 경험을 가진 유일한 집단이 바로 해녀예요. 이들이 겪은 세월은 중요한 과학적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라르도 교수도,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한국을 찾고 있죠. 안타까워요. 해녀 문화 자체는 전승할 수 있지만, 이들의 몸에 남은 물질의 역사는 이제 끊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