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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SF] 청둥오리 부활 사건

▲Midjourney, 라헌

 

오늘날 탐정업은 인공지능(AI) 구독료가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다. 사건 관련자의 신상, 현장 사진, 여러 증거 그리고 MBTI만 입력하면 짜잔. 범인이 도출되고, 심문 방법까지 추천받을 수 있다. 곧 뇌를 직접 AI와 연결해서 사용한다는 마당에 대화 내용이나 이용자 정보가 데이터 학습에 사용되거나 탈취될 수도 있다는 위험은 어디까지나 암묵적인 서비스 이용료로 인식될 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같은 탐정에게 넘어오는 사건은 일반적이지 않다. 어떤 경우엔 이상하기까지 하다. 예를 들면…
“아버지 유서에서…” 상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흐느낀다. 축 처진 어깨, 술 냄새, 떡진 머리. 그런데 그 위로, 퍼덕이는 청둥오리 한 마리가 보인다. 눈을 비빈다. 사무실을 유유히 돌아다니는 그건, 청둥오리 한 마리였다.
“이 오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기로 오라 하셨습니다…”
하긴, 이렇게 AI조차 다루지 못한 사건이 있어야 우리 같은 탐정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오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다 본능적으로 몇 가지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오리 농장 절도? 오리를 둘러싼 치정극? 그게 아니면 오리의 죽음을 둘러싼 뭔가 더 기이한 사건?
“경기도 외곽… 구옥 2층에… 핸드폰 대신 노트를 쓰는 아날로그 탐정에게 꼭 가야 한다고…”
아날로그라니. 적어도 나는 아니라며 부정하고 싶었지만 의뢰인이 굳이 그런 우리를 찾아왔다고 하는데 반박할 이유는 없었다.  사무실을 유유히 거닐던 청둥오리는 어느새 자신이 주인인 듯 행세하고 있었고, 의뢰인은 눈물을 쏟으며 몸을 웅크렸다. 나는 휴지 두 장을 뽑아 건넸다. 이렇듯 인간적인 위로를 바라고 탐정을 찾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의뢰인에게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잘못 찾아왔다고.
“그래서 왜 오신 겁니까?” 콜센터 통화 기록을 학습한 AI가 타칭 ‘법 지키는 사이코패스’ 최 교수보다 훨씬 인간적인 위로를 하겠지. 그의 냉랭한 반응에 의뢰인은 훌쩍임을 멈추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게… 저 오리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거든요.”
살아 움직이다니.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의뢰인은 휴대폰을 꺼내더니 홈캠 영상을 보였다. 화면 속에는 대리석 바닥과 원목 가구가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거실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건 거실 곳곳을 채운 박제된 새들이었다. 참새, 제비, 갈매기… 그리고 문제의 청둥오리까지. 그 수가 많았다. 최 교수가 물었다. “아버님께서 새를 좋아하셨나 보군요.”
“네… 조류 연구자셨거든요…” 의뢰인은 영상을 가리켰다. “이제 곧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현관이 열리더니 의뢰인이 먼저 거실로 들어섰고, 이어서 관이 들어왔다. 관이 거실을 한 바퀴 빙 돌더니 이어서 서랍장을 지나 서재로 향하는 그 순간, 서랍장 위의 오리가 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꽥!” 소리를 질렀다. 영상 속 의뢰인은 자리에 넘어졌고, 사람들은 관을 바닥에 내던졌다. 의뢰인이 물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박제된 오리가 살아 움직이다니. 최 교수는 오리를 붙잡고는 날개 아래를 들춰 보았다. “정말 박제된 흔적이 있군.”
의뢰인의 말대로 박제에 사용된 긴 침이 날개 아래에 박혀 있었다. 그 와중에 오리는 놀라울 정도로 얌전히 최 교수의 품에 안겨 있었다.
“오리가 당신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이 있습니까?” 최 교수가 물었다. 그의 무뚝뚝한 질문에, 나조차도 마음속에서 그가 무례한 것이 아니라 편견이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어떤 면에서는요.” 의뢰인은 얼굴에 쓴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저 오리 때문에, 가정이 풍비박산 났거든요.”
“풍비박산이요? 영상 보니 잘사시는 것 같던데요.”
최 교수의 말에 의뢰인은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겉으로는 그렇죠. 속은 곪아 터졌습니다. 박제된 새들 보셨죠? 집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연구실엔 더 많았어요. 심지어는 살아 있는 새들도 있었고요.” 의뢰인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실패한 연구자였습니다. 학교나 기업 공모에 단 한 번도 선정된 적 없었어요.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죠. 학자로선 존경받았을지 몰라도, 아버지로서는 아니었어요. 저에게 무관심한 것은 물론, 엄마가 아팠을 때도 연구실에만 계셨으니까요.”
최 교수에게 눈짓했으나 반응은 없었다. 계속 의뢰인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엄마는 다행히 살아 있지만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성인이 된 이후 저는 아버지와는 의절했습니다. 연구가 그리 좋으면 연구만 하며 살라고 했죠. 그렇게 엄마와 둘이서 살았는데… 얼마 전 연락이 왔습니다. 돈을 좀 빌려달라고. 대뜸 연구실에 수조를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이유를 물으니 돌고래 연구를 시작하겠다고. 참.”
새에 이어 돌고래라니. 의뢰인이 문서 여러 장을 품에서 꺼냈다. 독촉장, 차용증, 급전 요청서. 전부 의뢰인 아버지 명의였다. 심지어 연구 결과를 어디에도 발표하지 않고 넘기겠다는 각서도 있었다. “아버지는 연구에 미쳐서 재산을 탕진했죠. 유언장에도 새들을, 특히 오리를 잘 지켜보라고 적혀 있더군요. 그 잘난 연구를 죽는 순간까지… 참…”
내가 조심스럽게 휴지를 뽑아 의뢰인에게 건넬 준비를 하는 동안 최 교수는 무표정하게 다리를 꼬고는 대화에 끼어들었다. “당신 아버지는 어떤 연구를 하셨습니까?”
의뢰인이 시선을 오리에게 돌렸다. “이 오리와 관련된 연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장례식에서 아버지 지인 한 분이 그러더군요. 아주 허무맹랑한 연구를 하셨다고…” 의뢰인은 입술을 꾹 다물고는 울음을 억눌렀다.
“그래서 저희에게 뭘 원하시죠?” 최 교수는 집요했다. 그는 사건 해결과 무관한 의뢰인의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의뢰인이 울먹였다. “모르겠습니다… 유언장에선 오리에 문제가 있으면 여기로 데려오라 하셨거든요…” 
내가 AI에게 의뢰를 맡기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연체된 월세, 삐걱대는 간판, 밀린 고지서가 나를 굽신거리게 했다. 억지 미소를 띄우며 의뢰인에게 말했다. “그래도 어떤 의뢰인지 설명을 해주셔야 저희가 뭘 할 수 있을지…”
그가 울음을 터뜨렸다. “저 오리 좀… 어떻게 해주세요. 제가…”
우득— 사무실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최 교수에게 향했다. 그는 오리의 목덜미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고, 오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자, 이제 사건 해결된 거 아닙니까?”
*
“이 사건 왜 맡은 거야?” 
서울 외곽을 벗어나던 중 나는 앞서가는 의뢰인의 차를 바라보며 최 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의뢰인 아버지가 집필한 조류 대백과에 시선을 둔 채로 답했다. “이미 죽어서 거절할 수가 없었으니까.” 
하긴, 오리 목을 비틀어 버렸으니. 물어줄 돈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까 왜 그런 거야?”
“왜 그랬냐니? 오리를 어떻게 해달라고 했잖아. 난 원래대로 돌려놨을 뿐이야.”
괜히 엑셀을 더 깊게 밟았다. 차가 도로를 밀어붙이며 나아갔다. “의뢰인도 혼란스러워서 그랬겠지. 아버지가 죽은 데다, 박제된 오리가 살아났는데 어떻게 침착하게 의뢰를 맡기겠어?”
최 교수가 책을 내리고는 나를 바라봤다. “의뢰인은 아버지가 죽길 바란 것 같던데.”
나는 그의 얼굴을 슬쩍 훑었다. 뭔가 감을 잡은 듯한 표정이었다. “의뢰인이 아버지 죽음에 연관돼 있다는 거야?”
“어느 정도는.” 애매한 대답이었다. 최 교수에게 이어 물었다. “그럼 오리가 되살아난 것도 의뢰인 아버지 죽음이랑 관련 있다고 보는 거야?”
“그럼. 죽음을 조사하면 부활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릴 거야.”
“어떻게 확신해?”
최 교수는 조수석을 앞으로 세우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오리가 어떻게, 왜 부활했는지 같은 건 지금 잊어. 오리보다 의뢰인 아버지가 죽기 전에 뭘 했는지 떠올려봐.”
잠시 고민을 하고는 말했다. “…유언장을 썼겠지.”
“그렇지. 의뢰인에 따르면 유언장에 ‘오리를 유심히 보라.’고 적었다며. 새에 미친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바로 이어진 문장이 모든 걸 바꿔놓지.”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우리를 찾아오라고 한 거.”
차가 실선을 벗어나며 주변 차들이 경적을 울렸다. 가까스로 핸들을 잡고는 평형을 유지했다. 최 교수가 내 등을 두드렸다. “맞아. 탐정은 우연 속에서 의도를 찾아야지. 특히 중첩된 우연은 필연으로 간주해야 해.”
하지만 의뢰인 아버지의 죽음과 오리 부활 사이의 연관성이라니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근데… 죽음을 조사하자는 건… 혹시 타살일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려는 찰나, 최 교수가 먼저 내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뭐 하는 거야?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사무실 비밀번호에 특수문자 몇 개 붙여봤지. 네 성격이야 뭐 뻔하니까.”
최 교수는 내 문자 목록을 뒤지더니 과거 동료였던 한 경위와 나눈 메시지를 내게 보였다. 최 교수는 한 경위가 술에 취해 노상방뇨하는 사진을 그에게 보냈고, 그에 한 경위는 욕설을 퍼부었다. 물론 내 핸드폰으로 보낸 것이라 욕설은 날 향하고 있었다. 최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인터넷에 사진을 올린다고 한 경위를 협박하며, 의뢰인 아버지의 사망 사건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고 곧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최 교수가 말했다. “타살은 아니야.”
사진엔 목을 맨 의뢰인 아버지의 시신과 그 아래 놓인 유서가 보였다. 한 경위도 이어서 메시지를 남겼다. 타살 혐의점은 찾을 수 없다고. “경찰도 확인했어. 자기 관도 직접 준비했대. 자살로 보기엔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지.”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죽음에 관해 뭘 더 조사하자는 거야?”
최 교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조사해보면 알겠지.”
*
의뢰인 아버지의 집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차압 딱지였다. 의뢰인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부 경매에 들어갈 겁니다. 빚이 많아서 상속을 포기했거든요.”
차압 딱지는 박제된 새들에도 붙어 있었다. 그것들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았다. 최 교수는 조류 대백과를 펼쳐 들고는 새들과 책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그 사이에 의뢰인이 잠긴 방문을 열었다. “이리 오시죠.”
의뢰인이 우리를 이끈 곳은 서재였다. 책과 문서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벽을 둘러싼 유리 박스 안엔 수십 마리의 박제가 전시되어 있었다. 파산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은신처 같았다.
“북극제비갈매기, 알바트로스, 재갈매기…” 최 교수는 박제 하나하나를 확인하며 학명을 읊었다. 나는 책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철새의 행동 패턴, 조류와 인간의 뇌 관계 같은 학술 논문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혼잣말을 했다. “이런 건 왜 연구하는거지? 인간한테 도움도 안 될텐데.”
“거울을 봐.” 최 교수가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왜 새 뇌 연구가 인간에게 도움되는지 알 수 있을거야.”
화를 누르며 주위를 둘러보다 문득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시상식 사진 같았다. 현수막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인 연구 지원 협약 양해각서(MOU)’. 사진 속에는 의뢰인 아버지와,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이 함께 트로피를 들고 있었다. 트로피에는 익숙한 로고가 박혀 있었다. 의뢰인이 끼어들었다. “올로이드… 아시죠?”
모를 리가. 현실을 완벽하게 모방한 가상현실 게임부터 동명의 AI 서비스로 우리 밥줄을 끊어놓은 회사였으니까. 의뢰인이 말을 이었다. “옆에 계신 분은 올로이드 정 실장님입니다.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고마운 분이시죠.” 
“어떤 부분에서요?”
“MOU도 MOU지만… 생전 아버지가 올로이드에 진 빚이 정말 많았거든요. 그걸 한 번에…”
최 교수가 물었다. “어떤 연구를 하셨길래 올로이드에서 지원을 했죠? AI 관련된 연구였습니까?”
의뢰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버지는 조류 관련 연구만 하셨어요. 올로이드는 사용자 체류 시간 증가에 필요한 정보만 수집한다고 했고요.” 서재에 가득한 박제들이 대신 답하는 듯했다.
한동안 문서들을 뒤적였지만 전부 학술 자료뿐이었다. 오리 부활의 단서는커녕, 의뢰인 아버지의 죽음과 연결될 만한 것도 찾을 수 없었다. 기지개를 켜다 최 교수를 발견한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누구는 허리 아프고 눈 시릴 정도로 뒤지고 있는데, 그는 박제된 새들과 눈싸움이나 벌이고 있었다. “그렇게 본다고 되살아나겠어?”
“무슨 소리야?” 최 교수가 나를 노려봤다. 그 반응에 화가 나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상식적으로 누가 오리를 바꿔치기한 거지. 박제된 걸, 산 걸로 말이지.”
“경찰 조사 결과에서 외부 침입 흔적이 없다고 했잖아. 홈캠에도 찍힌 게 없고.”
“그럼 진짜 되살아난 거라고?” 최 교수는 이번에도 나를 빤히 보았다. “되살아났다는 게… 뭘 뜻하지?”
“무슨 말이야?”
“되살아났다는 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거잖아. 그런데 삶과 죽음의 기준은 누가 정하지?”
나는 할 말을 잃고 그를 바라봤다. 갑자기 삶과 죽음 타령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최 교수는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예전엔 심장이 멈추면 죽었다고 규정했어. 근데 요즘은 뇌가 멈추면 죽음으로 판단하지. 죽음에 대한 정의는 시대마다 달라.”
“넌 오리가 진짜 되살아났다고 믿는 거야?”
최 교수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아니. 죽은 게 살아날 리 없잖아.” 그는 유리 박스를 열고는 박제된 새 하나를 꺼냈다. “이게 좋겠군.” 짧은 감상과 함께 그는 새를 손에 든 채, 문밖으로 걸어나갔다. 
최 교수를 따르며 속삭였다. “어디 가는 거야?”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답했다. “확인하러 가야지. 진짜 죽었는지.”
그때 의뢰인이 불렀다. “이 교수님, 아버지 연구실 위치 알려드릴게요.”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현관 쪽으로 몸을 돌렸으나 이미 최 교수는 집을 떠나고 없었다.

*
의뢰인은 연구실이라 했지만, 첫인상은 고문실에 가까웠다. 문을 열자마자 역한 냄새가 밀려온 데다 철제 새장들이 콘크리트 벽을 따라 줄지어 있고, 곳곳에 수술 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미완성 상태로 방치된 크고 낡은 수조가 연구실 한가운데에 있었다. 정말 이곳에 돌고래라도 들일 작정이었을까 싶었다.
연구실로 더 들어가자 ‘사무실’이란 팻말이 보였다. 문을 여니 책상 하나와 컴퓨터, 그리고 뭔가 커다란 직사각형 형태의 물체가 놓였던 자국이 있었다. 자국 위에 선 의뢰인이 말했다. “여기가 아버지 관이 놓여 있던 자리입니다.”
나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서 관이 놓였던 자리 주변을 살폈다. 의뢰인은 마음대로 둘러보라 했지만, 커튼을 들추고 바닥을 이리저리 두들겨봐도 특별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서재처럼 이곳도 문서들로 어지러웠다. 논문들 사이로 올로이드를 인간의 뇌에 직접 연결해 24시간 서비스를 이용하게 할 것이라는 기사도 섞여 있었다. 그 기대감에 올로이드의 주식은 사상 최고가를 기록 중이었다.
나는 문서들을 뒤적이다 단서 하나 찾지 못하고 금세 지쳐버렸다. 의자에 털썩 몸을 맡기자, 의뢰인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 제 아버지, 이상한 사람이죠?”
뭐라 답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긁적이자, 의뢰인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엄마가 아프면서 아버지는 점점 더 연구에 빠져들었죠…”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님께선 어떻게…”
“뇌 쪽이 문제였어요. 커다란 종양이 있었는데, 수술 후에도 뇌 한 부분을 아예 쓰지 못하셨어요.”
책상 위에 있던 휴지를 뽑아 건넸으나 의뢰인은 휴지를 손에 쥐고만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에서 도피하려 연구에 매진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결국엔 돈도 가족도 다 잃고… 연구도 실패하고… 유언장만 남긴 채 돌아가셨죠. 아버지의 유언장이 없었으면 그 오리, 그냥 동료 분처럼 목 비틀고 치워버렸을 거예요.”
그 순간, 의뢰인의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그는 무심코 핸드폰을 꺼냈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눈이 커지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내게 내밀었다. “이게… 방금… 왔습니다.”
화면에는 메시지 하나가 떠 있었다.

‘나는 살아 있단다.’
보낸 사람: 아버지
받은 시각: 21:14

곧이어 의뢰인의 핸드폰에 또 하나의 알림이 떴다. 그는 화면을 내려다봤다가 다시 나를 올려다봤다. “발신 위치가… 아버지 집 건너편 옥상이에요.”
나는 의뢰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동시에 차를 향해 달렸다.
*
차를 급히 몰아 메시지로 받은 주소에 도착했다. 허겁지겁 계단을 올라 옥상 문을 열자 뜻밖의 얼굴이 보였다.
“늦었군.”
최 교수였다. 의뢰인이 주변을 둘러보다 그에게 달려들 듯 소리쳤다. “아버지는요? 어디 계십니까?”
“저기로 가보시죠.” 최 교수가 가리킨 곳에는 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영상에서 보았던 의뢰인 아버지의 관이었다. 의뢰인은 관을 향해 달려가 뚜껑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이게 뭡니까?” 의뢰인이 최 교수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았다. 
“AI가 좋긴 좋군요. 그 문자가 정말 당신을 속일 줄이야.” 둘 사이를 급히 떼어놓으려 했으나 의뢰인은 강경했다.
“지금 장난쳐? 나랑 내 아버지를 갖고 놀아? 당신들 같은 구닥다리 탐정을 믿는 게 아니었어. 차라리 AI한테…”
최 교수가 의뢰인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내 핸드폰이었다. “AI에게 물어보시죠. 사건 개요는 입력해뒀습니다.”
의뢰인은 최 교수를 한 대 후려치고는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들었다. 그리곤 올로이드 앱을 실행하더니 최 교수가 입력한 사건 정보를 불러왔다. 씩씩거리던 의뢰인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애초에… 오리는… 죽지 않았다…”
“놀라긴 이릅니다.” 최 교수가 웃으며 반대편 아파트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 나와 의뢰인도 고개를 돌렸다. 어둠에 잠긴 의뢰인 아버지의 집이 보였다. 최 교수는 마법사처럼 손가락을 접으며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갑작스레 SUV 여러 대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이닥쳤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 ‘G 네트워크’라 적힌 검은 옷을 입고서 일사불란하게 공동 현관으로 향하더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들이 의뢰인 아버지 집의 문을 강제로 개방하고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기까지 채 2분이 걸리지 않았다. 의뢰인은 그들 등 뒤에 적힌 회사 이름을 보고 중얼거렸다. “G 네트워크면… 경매 처분 업체일 겁니다. 그런데 처분 날짜가 오늘이 아닐텐데…”
최 교수는 작은 쌍안경을 꺼내 들었다. 아파트 단지 한켠의 검은 차량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 낙찰받았더군요.”
의뢰인은 쌍안경을 받아들고 차 쪽을 바라봤다. 이내 그가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 실장…”
그 이름이 입 밖에 나오는 순간,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의뢰인 아버지의 집에서 박제된 새며 자료며 닥치는 대로 쓸어 담더니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단지를 빠져나갔다. 의뢰인은 아무 말도 못한 채 그 광경을 바라봤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게 전부 어떻게 된 일이죠?”
“당신 아버지, 애초에 죽지 않았습니다.”
“뭐라고요…?”
최 교수는 관에 천천히 다가가더니 곁에 있던 새 박제를 집어넣었다. “사망 판정은 받으셨겠죠. 오늘날 죽음의 기준은 ‘뇌 활동의 정지’이니까요.”
의뢰인은 나를 바라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들어보자는 손짓을 했다.
“박제된 새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모두 반구수면을 하는 조류라는 점입니다. 반구수면은 좌뇌와 우뇌를 번갈아 쉬게 하며 24시간 깨어 있는 수면 방식이죠. 북극제비갈매기, 알바트로스, 청둥오리… 그리고 하나 더, 돌고래까지. 당신 아버지는 이 동물들의 반구수면 메커니즘을 연구해 인간의 뇌 활동을 제어할 방법을 찾으신 겁니다.”
잠시 후, 새가 꿈틀거리더니 어둠 속으로 날아올랐다. 우리는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바라봤다. 침묵과 놀라움이 공기를 메웠다. 최 교수는 관 위에 손을 올렸다. “이건 단순한 관이 아닙니다. 뇌 상태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장치죠. 누굴 위해 이걸 만들었는지는, 당신이 잘 알겠죠.” 의뢰인은 ‘엄마’라는 입모양으로 소리 없이 뻐끔거렸다.
“물론 첫 사용자는 당신 아버지였습니다. 이 장치로 반구수면 조류의 뇌파를 이용해 좌우 뇌를 번갈아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심박수와 체온은 조류처럼 낮춰, 겉으로 죽은 것 같아도 뇌는 특정 신호 안에서 살아 있게끔 했죠.”
의뢰인의 눈빛이 떨렸다. “아버지는 스스로 죽음을 가장하신 거군요…”
“네. 올로이드는 당신 아버지와 MOU를 체결하며 사용자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한 정보를 수집한다고 했지만…”
올로이드를 뇌에 연결해 24시간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의뢰인 아버지 사무실에서 본 기사가 떠올랐다.
“그 기술에 당신 아버지의 연구가 필요했고, 올로이드는 그걸 뺏기로 한 거죠. 그는 이 사실을 알았고요.”
“알면서도 대체 왜…”
최 교수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혼자서는 연구를 이어갈 수 없었으니까요. 당신이 가져온 아버지의 각서 기억하십니까? 연구 결과를 어디에도 발표하지 않고 넘긴다는 그 각서요. 그 업체도 조금만 조사해보면 올로이드와 연관이 있을 겁니다.” 머금은 연기가 혀 끝을 맴돌며 소용돌이쳤다. 최 교수가 연기를 뱉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연구 결과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당신 아버지는 스스로 죽음을 가장해 가족을 지키려 한 겁니다.” 최 교수는 밤하늘의 새를 바라봤다. 새는 연기와 함께 어둠 속으로 멀어져갔다. 의뢰인은 무릎을 꿇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결국 가족을 버린 줄로만 알았어요. 미친 연구에 빠져 우리를 등진 줄로만….”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런데 결국… 우릴 지키려고, 그랬던 거군요…”

*
자정이 되어서야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창밖은 어둡고, 간판은 여전히 삐걱거렸으며, 서랍 속 고지서들은 그대로였다. 나는 소파에 구겨진 채 최 교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의뢰인 아버지는 왜 의뢰인에게 직접 말하지 않은 걸까?”
커피잔을 내려놓은 그가 창밖을 가리켰다. 저 멀리 빌딩 위, 회전하는 올로이드 로고가 어둠 속에서도 선명했다.
“올로이드는 서비스 제공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에게서 데이터를 가져가. 데이터 학습이 끝나면 커다란 데이터 더미 속에서 그 사람 흔적을 지워버리지. 그들에겐 사람도 그저 데이터일 뿐이야. 그것도 쉽게 지워버릴 수 있는.”
나는 조용히 노트를 덮었다. “비밀이란 벽으로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단 말이군.”
최 교수는 창가로 다가가 담배를 물었다. 불빛이 작게 흔들렸다. “자기 연구를 어떤 놈들이 뺏을지 알았으니까.”
그의 등을 향해 물었다. “왜 의뢰인한테 그 부분은 직접 말해주지 않은 거야?”
“우리 의뢰인이 원하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았으니 의뢰를 거절할 수도 없었고.” 
무슨 말이냐 물어보려다 말았다. 처음 우리에게 의뢰하라고 한 사람, 진실이 묻히지 않고 밝혀지도록 이끈 사람은 의뢰인이 아니라, 의뢰인의 아버지였다. 
“죽음은 판단이 아니라, 선택일 수도 있어. 심장이나 뇌의 정지가 아니라, 어떤 외부 요인으로 달라질 수도 있지.”
“외부 요인이라….”
“그래. 죽음보다 더 중요한, 그런 외부 요인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간판 위로 바람이 스치며 뭔가 푸드덕하는 기척이 들렸다. 창밖을 봤지만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청둥오리였을까? 최 교수는 낡은 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다들 죽었다고 말해도,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살았을지도 몰라.”
사무실 안은 고요했고, 창밖에서는 작은 날갯짓 같은 바람이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필자 소개
김준녕: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으로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장편 소설 ‘빛의 구역’, 소설집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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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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