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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기후 디스토피아 ②] 불타버린 낙원에서 다시 심는 씨앗, Sunset

     

    편집자 주
    과학자가 직접 쓰는 SF 소설 ‘불타버린 낙원에서 다시 심는 씨앗’은 기후위기로 인해 인류 문명이 끝을 맞이한 2080년을 배경으로 합니다. 주인공 일행은 초거대 다국적 기업에 맞서 생태계를 되살리기 위해 한반도 곳곳을 누비는 활극을 벌입니다.

     

    ─ 이전 이야기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 문명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2080년, 지구 환경을 되살리려는 조직 ‘시드키퍼스(Seedkeepers)’의 한국지부 수색팀 이삭, 요나, 엘레나, 린 웨이는 다국적 기업 ‘니세이 애그로테크’에게 멸망의 책임이 있다고 의심한다.
    세계는 왜 멸망했는가. 다시 되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실마리를 찾아 간 니세이 애그로테크의 인천 송도 데이터센터에서 일행은 동료인 요나를 잃는 대신 니세이 애그로테크가 경남 창녕에서 비밀 실험을 진행했단 단초를 찾는다. 

     

    ─ Prologue


    창녕의 하늘에는 해가 떠 있었지만, 구름 너머로 희미한 빛을 드리우며 곧 사라질 것 같았다. 지표면의 물기는 가시지 않았고, 공기에는 여전히 비릿한 내음이 배어 있었다. 침수된 도시에서 남하한 그들의 도착지는 바로 물과 생명이 머물던 습지였다. 이삭은 외투의 목덜미를 당기며 습한 공기 속으로 숨을 천천히 뱉었다. 그들 앞에 우포늪이었던 곳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늪이라기보다 썩어버린 평야에 가까웠다. 갈대와 버드나무의 잔해는 남아 있었지만, 그 위를 덮고 있는 건 생명의 움직임이 아니라 침묵이었다.
    “여기… 진짜 늪이 맞긴 한 거야?” 엘레나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늪에는 검은 막 같은 것이 물 위를 얇게 덮고 있었고, 냄새는 익숙하지 않을 정도로 시큼했다.
    “과거에는 자생적으로 생태계가 갖춰진 상태였지. 기온 변화, 토양 침식, 오염 물질 방류…. 대체 무엇이 생태계를 무너뜨렸을까?”
    이삭은 중얼거리며 발을 디뎠다. 늪의 가장자리 흙은 젖어 있었고, 껍질 없는 씨앗 같은 무언가가 이따금 흙 위로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식물이 아니었다.
    “현 위치 복원 실패 구역. 실험 데이터 기록 탐색 불가.” 린웨이의 말에 엘레나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니세이의 실험이 있었다면 뭐라도 남아있긴 할 거야.” 이삭이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고, 말보다 시선이 먼저 늪의 중심부를 향해 있었다. “이런 곳에선 성공했든 실패했든 흔적이 남아.”
    그는 오래된 경작지 위를 걷는 농부처럼, 천천히 발끝을 눌러 늪의 표면을 디뎠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분명 실험의 흔적이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 2080.07.31


    늪의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공기는 무거워졌고, 물 위를 떠다니는 입자들은 점점 더 짙어져 갔다. 그들은 그것이 조류가 번성한 곳에서 발생한 단순한 유기 침전물이라 생각했다. 늪에 조류가 퍼지고 죽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퇴적된 부산물. 그러나 그건 전혀 달랐다.
    “으음…. 조류 기원 물질 아님. 박테리아 군체로 추정.” 린웨이가 샘플을 채취하며 말했다. 그의 손끝에는 검은 점액질의 막이 들러붙어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증식한 게 보이네. 자연 상태에서 이렇게까지 되는 경우는 드물 거야.”
    엘레나는 발끝을 조심히 늪 위로 옮기며 부풀어 오른 갈대의 잔해를 하나 집어 들어 찢어보았다. 갈대 줄기 내부는 검은 점액질로 가득 차 있었다. “원래 이곳에 살던 생명체의 외피를 이용해서 생존하려는 것 같아.” 그는 말없이 그 조각을 다시 늪에 떨어뜨렸다. 조각은 소리 없이 얕은 물에 가라앉았고, 위로 얇은 막이 다시 덮였다.


    “식생 분포가 너무 단조롭고, 다양성이 붕괴된 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제거된 걸로 보여.”
    “너무 조용하지.” 엘레나가 덧붙였다. “이 정도의 공간이면 어디선가 곤충이든, 새든 보여야 하는데….”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철컥’ 하는, 작고 단단한 기계음이 울렸다. 
    세 사람 모두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그들이 먼저 느낀 것은 울림이었다. 깊고, 묵직하고, 어딘가 불균형한 진동이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물속에서 맥박을 내뿜는 심장처럼 주기적으로 땅을 흔들고 있었다. 엘레나가 한쪽 무릎을 꿇고 땅에 귀를 댔다. “이건…. 네발 달린 짐승이 걸어오는 소리야.”
    수풀 사이, 검은 그림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처음엔 대형 고양잇과 짐승처럼 보였지만, 눈에 띈 것은 폴리머 피부 위에 흉터처럼 남은 식별 코드와 번뜩이는 안면부의 카메라 소켓이었다. 
    “엘레나! 즉시 대응 사격하고 가능하면 팔다리를 노려!” 검은 그림자가 그들을 발견하고 쏜살같이 다가오자 이삭이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마치 후각이나 진동에 반응하는 들짐승 같았다.
    “인공 생명체 모듈이 아직도 살아서 돌아다닌다고? 난 호랑이 잡던 사냥꾼이야!” 엘레나는 즉시 연발로 검은 그림자의 다리를 적중시켰다. 수색팀에서 유일하게 화기를 사용할 수 있는 엘레나는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금속인지 유기물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잔해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검은 그림자의 육중한 몸이 늪지대 바닥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린웨이는 재빨리 통신 차단 카트리지를 꺼내 쓰러진 그림자 쪽으로 던졌다. 이삭은 버둥거리는 검은 그림자로 달려가 머리와 심장부에 칼을 꽂아 헤집기 시작했다. 마침내 검붉은 액체에 젖은 금속 조각을 찾아내 손에 쥔 이삭은 퇴각 신호를 보냈다.
    “코어 유닛을 찾은 것 같아. 분석을 진행할 은신처를 찾자.” 세 사람은 빠른 속도로 장비를 들고 늪지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그들의 뒤에는 늪에 가라앉기 시작한 생물 기계체의 붉은 렌즈가 검은 수면 위에 희미한 고리를 여럿 만들고 있었다.
    그들이 몸을 숨긴 곳은 예전엔 관리소로 쓰였던 콘크리트 잔해였다. 문짝은 떨어져 나갔고, 지붕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린웨이가 가방에서 전선을 꺼내 관리소 내부에 간이 패러데이 새장을 만들어 전파를 차단했다.
    이삭은 손에 쥐고 있던 젖은 금속 유닛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내부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저전력 수신 모듈이 붙어 있었다. 그 위에는 이전 니세이의 로고와, 누군가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낸 듯한 프로젝트 이름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린웨이가 손목에 찬 단말에서 인터페이스 잭을 뽑아 꽂았다. 딸깍, 하는 전자음과 함께 낮은 진동이 유닛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정말 구형인 포맷.” 린웨이가 귀찮은 표정으로 콘솔을 켰다.

    Nissei Biosys Archive Interface v3.4.1
    Override Access: Pending…
    …Override Accepted (Passive Mode)

    “읽기 가능. 복사 또는 추출 불가.” 린웨이는 전력 손실을 피하기 위해 해상도를 낮춰 메모리 클러스터를 탐색했다. 디지털 공간 위, 데이터 구조가 패턴을 그리며 펼쳐졌다. 여섯 개의 중심 노드, 그 주위를 도는 수십 개의 섹터.
    “이건 단순 기록 장치가 아니야.” 엘레나가 화면을 훑으며 말했다. “모니터링 기록, 바이오 시뮬레이션 로그, 그리고… 대상 생물의 생리 반응?” 
    린웨이가 한 섹터를 확대했다. 그곳엔 여러 시계열 그래프가 겹쳐져 있었다. 뇌파, 체온, 혈중 당수치, 그리고 ‘기관 반응 적응 계수’ 같은 기묘한 항목들.
    “복원 생태계의 중심에… 인위적으로 구성된 ‘코어 생물’을 넣은 거야. 아까 녀석도 그중 하나였겠지.” 이삭이 조용히 결론 내렸다. “기준 종으로서 작동하도록, 그리고 주변 유기체를 교란하지 않도록 유도한 것이 분명해.”
    “하지만 실패함.” 린웨이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화면 가장자리에, Termination Protocol이라는 플래그가 나타났다. “정해진 수치 이상으로 편차가 발생하면 즉시 종료. 유기체든 시스템이든 간에.”
    그 순간, 유닛의 인터페이스가 진동하며 스스로 꺼졌다. 동시에 이삭의 단말기에 메시지 하나가 짧게 떴다.
    “보안 응답 시퀀스 재개. 신호 노출 경로: 활성화.”
    린웨이가 욕설을 뱉으며 장비를 뽑았다. “역탐지 발생! 잭 아웃!”패러데이 새장의 금속 간격을 보충하고 난 후, 한숨 돌린 린웨이는 유닛에서 복사한 로그 파일들을 열어 확인했다. 그들의 눈앞에 점점 선명해지는 건 단순한 데이터 기록이 아닌 사전 시뮬레이션 된 복원 생태계 모델과 해당 지역에 대한 토양과 기후의 상호작용 실험 기록이었다.
    “송도 포맷 대비 개선된 데이터 추출 완료.” 엘레나가 화면을 가리키며 이삭을 불렀다. “8년 전의 우포늪 전체 생태계를 모델링한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한 거군. 그때 이미 이 생태계를 ‘재구성 대상’으로 분류했어. 기준 종은 수생 미생물과 양서류, 포식자가 될 고양잇과 동물. 모든 유입종은 필터링. 여기서 활용한 유전자 스풀은….” 엘레나의 눈이 순간 멎었다.
    “니세이에서 개발한 생태계 유전자 관리 플랫폼이야. 기억하고 있어. 나도 관여했으니까.” 이삭이 눈을 감고 기억을 되살렸다. 엘레나와 린웨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이삭은 말없이 모듈 창을 넘겼다. 거기에는 ‘Nissei Agrotech — Edenfall Experimental Series 3: Habitat Integration Trials’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이건 단순한 복원 프로젝트가 아니었어.” 이삭은 이어진 문서 내용을 읽었다. “본 실험은 기존 생태계 파괴에 따른 복원 가능성 검토가 아닌, 생태계의 기초 기능을 효율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최소 유전자 군집 모델의 유효성 검토를 목표로 한다. 그러니까, 선택된 생명체만 남겨 생태계를 만들고, 자연을 대체하겠다는 거군.”
    “이 복원 유닛에서 우포늪이 어떤 실험장이었는지 일부 정보만 얻은 것 같아. 하지만 우리는 전말을 알아낼 거야.” 엘레나가 마치 예지하듯 말했다. 이삭은 엘레나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급진적이야. 기술 수준이 아니라 시도 방식이. 실패를 감수하고 버릴 걸 전제로 했던 프로젝트로 보여. 테스트베드였던 거지. 본래 실험지는 따로 있을 거야.”
    엘레나는 숨을 내쉬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할지도 몰라.”

     

    ─ Epilogue


    늪의 가장자리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물빛은 더 이상 생명체를 품지 못한 채, 흑변한 수면에 조용히 부패의 냄새만을 풍기고 있었다. 이삭이 상황을 종합하며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린웨이는 복원 유닛의 남은 캐시 메모리 영역을 불러왔다. 당연히 지워졌다고 생각했던 데이터가 좌표와 함께 남아 있었다.
    ‘35.881542, 126.949744’ 린웨이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김제.” 엘레나는 그 좌표를 눈으로 읽으며 반문했다.
    “전남 아닌가?” 이삭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 예전에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였던 자리. 오래전에 시작된 농업 복합 구역이지. 그게 지금도 가동 중이라면…. 식량 문제를 해결할 해답이 거기 있을지도 몰라.”
    그 순간, 통신기에서 교신 감지음이 흘렀다. 파형은 규칙적이지 않았지만, 신호의 방향은 북북동이었다. 김제가 위치한 방향임을 확인한 엘레나가 놀라며 물었다. “수신기 꺼두지 않았어?”
    “다시 켰지. 자동 암호화 모드로.” 이삭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 셋 모두는 동시에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누군가 그들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다. 

     

    ▲창녕군청
    경남 창녕 우포늪은 한반도에서 가장 큰 내륙습지로, 이곳에서는 800여 종의 식물, 209종의 조류, 28종의 어류, 180종의 저서성 대형 무척추동물, 17종의 포유류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1998년 ‘람사르 협약’에 의해 세계적으로도 보호할 가치가 있는 생태계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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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8월 과학동아 정보

    • 정대호 연암대 스마트원예계열 교수
    • 에디터

      김소연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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