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도장에서 수련을 시작한 양자광은 양자 세계에 본격 입문한다. 스승은 비기에 대한 수련을 정진하면 독립(창업)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데···. 비기의 이름은 ‘규비도’! 이를 현실에서 수련 중인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를 토대로 창업에 나섰다는 김동규 KAIST 물리학과 교수를 6월 20일 찾아갔다.
편집자 주
“복잡하죠?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양자컴퓨터와 양자 제어입니다.”
김동규 KAIST 물리학과 교수를 따라 연구실에 들어서자 문 앞에 놓인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시선을 가로챘다. 화이트보드에는 김 교수가 연구하는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를 풀이하는 복잡다단한 그래프들이 한가득했다. 비전공자가 보기엔 얼핏 낙서 같기도 한, 도통 알아볼 수 없는 내용이 그야말로 ‘비기’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제자들과 함께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올해 1월 한국에서 첫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스타트업을 창업했어요.” 김 교수가 창업한 스타트업은 ‘OQT(오큐티)’. OQT는 중성원자 방식 양자컴퓨터의 개발 가능성을 인정받아 설립 직후인 2025년 2월, 카카오벤처스와 블루포인트파트너스에서 30억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는 원자의 특정 상태를 기준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계산한다. 중성원자는 자연 상태의 원자를 뜻한다. 원자는 기본적으로 중성이지만, 전하를 지닌 이온을 큐비트로 이용하는 이온트랩 양자컴퓨터와 구분하기 위해 중성원자로 표현한다.
현재 양자컴퓨터 구현에는 정석이 없는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고 투자받기까지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창업에 나서서 단기간에 투자 유치에도 성공할 수 있던 걸까. 비결을 캐묻자, 김 교수는 중성원자의 강점인 ‘논리 큐비트’를 짚었다.
“양자컴퓨터를 잘 구동시키려면 논리 큐비트가 핵심입니다. 큐비트가 많아도 논리 큐비트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면 무용지물이거든요. 중성원자를 큐비트로 이용하면 논리 큐비트를 만드는 데 유리해요.”

큐비트는 큐비튼데… ‘논리’를 곁들인?
앞서 양자문에 입문하며 큐비트를 겨우 이해했는데, 갑자기 논리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새로운 용어의 연속인 양자역학 세계에서는 차근히 용어에 대한 개념을 따라가야 이해가 수월하다. 김 교수가 언급한 논리 큐비트를 이해하려면 우선 ‘물리’와 ‘논리’로 나뉘는 큐비트 개념을 익혀야 한다.
물리 큐비트(Physical Qubit)란 이름대로 ‘실제 큐비트’를 뜻한다. 초전도 회로, 이온 트랩, 광자 등 실제 양자 시스템에서 구현된 큐비트와 같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큐비트가 물리 큐비트를 뜻한다. 물리 큐비트는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에 매우 민감하다. 하나의 물리 큐비트는 오류가 쉽게 발생하므로 오류 없는 정확한 계산을 위해 보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논리 큐비트 개념이 탄생했다.
논리 큐비트(Logical Qubit)는 여러 개의 물리 큐비트를 조합해 오류를 보정한 하나의 큐비트다. 쉽게 말해, 물리 큐비트 여러 개를 묶은 하나의 ‘큐비트 세트’다. 즉, 큐비트 하나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 물리 큐비트 10개를 이용해 1개의 ‘똑똑한 큐비트’를 만드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여러 개의 큐비트를 하나로 묶어 사용해야 할까. 큐비트 10개를 각각 따로 사용한다면 10단위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데 말이다. 모든 건 오류 때문이다.
양자컴퓨터는 오류와의 싸움이다. 양자컴퓨터에서 오류란 ‘의도한 값과 다른 값을 지니는 상태’를 가리킨다. ‘1’이라고 생각하던 값이 ‘0’으로 변했다면 오류가 있는 것이다. 1 상태의 큐비트는 연산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도 1로 쭉 남아 있어야 한다. 오류는 확률로 나타낸다. 1이 1로 있을 확률이 처음의 100%에서 점차 90~80%로 더 낮아지는 상태를 오류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양자컴퓨터 작동에는 오류라는 장벽이 늘 존재한다. 양자컴퓨터를 작동하려면 레이저를 쏘는 등 어떻게든 외부 작용이 동반되는데, 외부 작용이 많아질수록 오류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물리 큐비트를 묶어 논리 큐비트로 만든다. 큐비트 하나가 오류를 띠더라도 다른 큐비트를 참고해 오류 큐비트가 정신을 차리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마치 종이 한 장(물리 큐비트)은 쉽게 구겨지거나 찢어질 수 있지만, 여러 장을 겹쳐 만든 두꺼운 종이(논리 큐비트)는 훨씬 튼튼한 것과 비슷하죠.” 김 교수는 설명했다.
논리 큐비트를 만드는 접착제는 ‘양자 얽힘’이다. 물리 큐비트는 얽힘을 통해 서로 묶이면서 논리 큐비트로 작동한다. 이렇게 얽힘으로써 물리 큐비트의 오류를 고치는 과정을 ‘양자 오류 정정’이라고 부른다. 김 교수는 “구글에서 물리 큐비트를 백 개 단위로 만들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구동에 있어 중요한 논리 큐비트의 개수는 아직은 그보다 훨씬 적다”면서 “구글은 실제로 물리 큐비트 수십 개를 하나로 엮어 수 개의 논리 큐비트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중성원자 양자컴퓨터의 구조

중성원자 양자컴퓨터가 제어의 달인 된 비결
정리하면, 양자컴퓨터에서 실제로 계산에 쓰이는 큐비트란 수십 개의 물리 큐비트가 엮인 ‘논리 큐비트’다. 양자컴퓨터 경쟁이란 논리 큐비트 싸움인 셈이다.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위를 지닌다. 김 교수는 “현존하는 양자컴퓨터 중에 논리 큐비트 프로세서를 구현한 건 중성원자 기반 양자컴퓨터뿐”이라며 “50개 정도 되는 논리 큐비트 간의 연산에 유일하게 성공했다”고 말했다.
원자는 자연에 존재하는 양자 하드웨어다.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는 원자의 각운동량(원자 내 전자의 궤도 운동과 자전으로 발생하는 고유한 회전 운동량)이 다른 두 가지 상태로 구분해 큐비트를 정의한다. 예를 들면, 팽이가 시계 방향으로 도는 상태와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상태로 두 경우를 구분하는 식이다. 1화에서 다룬 이온트랩 양자컴퓨터의 경우 이온의 전자 위치로 두 경우를 나눠 정보를 저장했다.
중성원자 양자컴퓨터가 다른 방식에 비해 논리 큐비트를 좀 더 유연하게 구현할 수 있는 비결은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온트랩 양자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이온이 전하를 지닌 데 비해 원자는 중성”이라고 설명했다. “이온은 전하를 띠기 때문에 큐비트 간에도 밀어내는 등 굉장한 상호작용을 해요. 서로가 이미 아는 사이라 친구가 되기도 쉽죠. 반대로 중성인 원자는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영향을 잘 안 줍니다. 그러면 개별 큐비트를 조작하기 수월하고 큐비트를 더 추가해도 큰 무리가 없어요.”
물리 큐비트를 조작할 때는 논리 큐비트가 무너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한다. 중성원자는 이때 강점을 발휘한다. “중성원자는 이온과 달리 기본적으로는 상호작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얽힘을 만들 때에는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특별한 상태로 변합니다. 한번 얽힘을 만들면 다시 상호작용하지 않는 독립적인 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에 조작에서 훨씬 유리하죠. 양자컴퓨터는 큐비트 결맞음 유지뿐만 아니라 제어가 핵심입니다. 제어를 잘해야 논리 연산에서 오류를 줄이고, 오류를 줄여야 상용화까지 할 수 있거든요.”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는 원자에 ‘전하 분포 차이’를 줘서 상호작용을 만든다. 상호작용된 큐비트들을 다시 원상태(전하 분포가 없는 상태)로 돌려놓으면 얽힘만 유지된다. 상호작용을 마치 스위치처럼 온·오프할 수 있다.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는 이런 방법으로 다른 양자컴퓨터에 비해 능숙한 제어가 가능하다. “상용화의 핵심은 양자 얽힘과 물리 큐비트를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중성원자 양자컴퓨터가 가장 큰 장점을 보이는 부분이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를 다룰 때는 강한 레이저를 사용하기 때문에 보안경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창업 선도하는 중성원자 양자프로세서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로 가장 널리 알려진 기업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 연구팀이 2019년 창업한 ‘큐에라 컴퓨팅’과, 202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알랭 아스페 프랑스 에콜폴리테크니크 교수가 2018년에 세운 ‘파스칼’이다. 큐에라는 루비듐(Rb) 기반의 물리 큐비트 300개가량을 이용해 50개의 논리 큐비트를 구현했다고 알려졌다. 당시 MIT 소속 연구원이던 김 교수는 큐에라 컴퓨팅 창업을 함께한 초기 멤버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김 교수는 중성원자 양자컴퓨팅 연구를 이어가며 2025년 1월 OQT를 설립했다. 그는 연구실 내 박사과정 대학원생들과 함께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위한 연구를 하는 동시에, 제자들에게 많은 양자 기술의 비법을 전수해 주고 있다. 그는 양자컴퓨터를 연구하는 데 있어 창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양자 산업이 빠르게 성장 중입니다. 양자컴퓨터가 지닌 잠재력이 굉장하거든요. 미래를 주도할 양자컴퓨터에는 아직 정답이 없어요. 그것 하나만으로 창업에 도전해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미지의 양자컴퓨터 세계에서 최대한 많은 화살을 날려 보세요. 미래 주인공이 여러분이 될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