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자력, ‘계륵’인가 전략인가
2025년 4월 1일, 핀란드 헬싱키 살미사리 지역에 위치한 ‘살미사리 발전소’가 운영을 영구적으로 중단했다. 살미사리 발전소는 석탄을 이용한 열병합발전소(연료를 태워서 전기와 열에너지를 동시에 얻는 발전소)로, 핀란드에서 석탄을 태우는 마지막 발전소였다. 살미사리 발전소를 운영했던 에너지 기업 ‘헬렌(Helen)’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로써 핀란드에선 석탄의 시대가 끝났다”고 평했다.
그 다음 벌어진 일이 의미심장하다. 6월 9일 헬싱키에서 만난 핀란드의 소형원자로(SMR) 기업 ‘스테디에너지(Steady Energy)’의 라우리 무라넨 대외협력 책임자는 “올해 말부터 살미사리 발전소 부지에서 SMR 실증 시스템 사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력이 빈자리에 원자력이 들어서는 것이다.
석탄의 시대가 끝나고, 원자력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이유는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지 않거나, 날씨가 흐리면 발전량이 줄어든다. 갑자기 바람이 너무 많이 불거나 맑은 날이 이어지면 발전량이 늘어난다. 발전량이 늘어나는 것도 마냥 호재는 아닌 것이, 전력은 ‘흐름’이 핵심인 까닭이다. 전력 수요보다 많은 발전량이 전력 시스템으로 들어오면 전압이 과하게 발생해 전력 시스템이 손상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량이 요동치더라도, 삶은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항상 일정하게 사용되는 기본적인 전력수요 ‘기저전력’을 고려한다. 기저전력에는 날씨가 어떻든 상관없이 발전이 가능한 화력발전이나 원자력 발전을 주로 활용한다. 파리협약에 의해 각국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뤄야 하는 상황에서 양자택일에 놓인 것이다. 화력은 꺼려진다. 탄소를 배출하니까. 그럼 원자력을 써야 할까. 아니면 원자력도 축소하면서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할까.
핀란드는 지속적으로 원자력 발전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해 온 드문 유럽 국가 중 하나다. 이 태도는 2024년부터 시범 운영이 시작된 세계 최초의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 ‘온칼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도 있다. 핀란드는 원자력 발전소를 처음 짓던 1980년대부터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 건설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6월 5일 핀란드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비즈니스 핀란드’에서 만난 유씨 오케르베르그 유연 에너지 시스템 프로그램 총괄은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 “수소 경제와 SMR이 미래 에너지의 중요 요소”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웃나라 스웨덴에선 걱정이 많다. 2022년 출범한 스웨덴의 현 정부는 2023년 말 원자력 발전법을 개정하면서 원자로 개수 및 건설 지역 제한을 해제하고, 2045년까지 신규 원전 10기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6월 13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만난 폴 웨스틴 스웨덴 에너지청 수석 비즈니스 개발 매니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규 원전은 매우 비쌉니다. 스웨덴 내에서도, 심지어 우리 기관 내에서도 정부의 원자력 확대 결정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그것이 대형 원자로인 경우에 의견이 갈리죠. 하지만 SMR는 장기적으로 더 실현 가능할 수 있어요. 작은 원자력 발전소를 여럿 짓다 보면 건설 비용이 적어질 테니까요.”
한국에서는 2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을 발표하며 2030년대에 SMR을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황정아 의원이 6월 12일 대표발의한 ‘SMR 특별법’은 이르면 7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하지만 환경단체의 반발 또한 거세다. 환경운동연합은 6월 13일 성명서에서 “SMR은 기술적으로 실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경제성과 안전성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면서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단위 에너지당 20~30배 더 많은 핵폐기물을 발생시킬 수 있으며, 현재도 핵폐기물 저장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는 장기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미국 스탠퍼드대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공동연구팀이 2022년 발표한 연구 결과를 들어 지적했다.

한반도 에너지고속도로 그 너머를 보며
북유럽의 에너지 전략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핀란드인들이 위로는 러시아, 아래로는 바다로 둘러싸인 자신들의 상황을 ‘섬’이라고 표현하지만, 진짜 섬은 한반도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경우 유럽의 전력망을 활용할 수 있다는 무시 못 할 이점을 품고 있다. 전력이 남아돌면, 유럽의 다른 국가로 보내면 된다. 전력이 부족하면 유럽의 다른 국가에서 끌어 쓰면 된다. 한국의 경우 몽골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 함께 ‘동북아 슈퍼그리드’를 구축하겠다는 이야기가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더 불안해지는 국제 정세를 보면 이를 이른 시일 내에 추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원자력을 확대하기엔 고민이 많고, 해외와 전력망을 연결하기엔 불안하다. 이런 맥락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내놓은 ‘에너지고속도로’ 정책은 한반도 내 에너지 흐름을 뚫어 생산되는 에너지를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전략으로 기대를 모은다. 다만 기술개발을 통해 돌파해야 할 몇 가지 과제가 있다.
에너지고속도로의 1단계 계획은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생산한 재생 에너지를 수도권으로 수송하는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를 2030년까지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필수적인 초고압 직류 송전(HVDC) 기술은 독일의 지멘스, 미국 GE, 스웨덴 히타치 에너지가 세계 시장의 95%를 점유한다. 히타치 에너지는 이 중에서도 HVDC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업화한 강자다. 김선빈 히타치 에너지 코리아 전력솔루션 사업부 부장은 “2015년부터 세계 HVDC 수요가 늘어난 상황이라,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하지 않으면 2030년까지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에 HVDC를 납품하는 일정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효성중공업이 수 GW급 HVDC 기술을 개발해 국내외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에너지고속도로에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는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빼서 쓰는 에너지 저장장치(ESS)로 풀 계획이다. 비용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한국 원자력 학계는 5월 ‘국가 원자력 정책 제안서’를 통해 2050년 태양광 발전의 비중이 전체 전력 생산의 약 50%라고 가정하고 ESS 비용을 계산한 결과를 공개했다. 계산 결과, 태양광 잉여 전력을 ESS로 저장하려면 하루 1160GWh(기가와트시·1GWh는 10억 Wh) 용량을 확보해야 한다. 1GWh 용량의 ESS를 설치하는 데 비용이 4000억 원일 경우 464조 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기차의 배터리를 ESS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핀란드에서는 배터리의 생산부터 재활용까지 전 주기를 아우르는 배터리 가치사슬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전기차의 사용후배터리를 ESS로 재활용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한편, V2G 기술도 2017년부터 실증 중이다. 주행하지 않는 전기차를 전력망에 연결해 두고, 재생에너지 생산량이 많을 때는 잉여전력으로 전기차를 충전하고 모자랄 때는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끌어 쓰는 기술이다. 한국에서는 2022년부터 제주에서 V2G 실증 사업이 진행 중이다. 북유럽의 전략을 모두 따라 할 필요는 없다. 먼저 이뤄진 시도 중 한국의 환경 조건에 적합한 방식을 찾아 도전해 보는 기민함이 필요한 때다.
에너지고속도로 핵심 요소 5

현재 한국의 대규모 해상 풍력 발전소는 대부분 인천, 충남 태안, 전남 영광 등 서해안에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전력을 고전압 직류 송전 케이블(HVDC)을 이용해 연결하는 것이 서해안 해상 송전망이다. 해저에 전기 케이블을 설치한다.
에너지 휴게소
전력 공급망이 원활히 작동하려면 전력 ‘공급’과 전력 ‘수요’가 일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남는 전력을 저장해 뒀다가 전력이 급하게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전력 공급망 곳곳에 설치한다.
근거리 송전망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기존 석탄, 가스, 원자력 발전에 비해 발전 지역이 분산돼 있다. 태양과 바람은 전국 곳곳에 있으니 설비 규모를 작게 해 적재적소에 설치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 점을 살려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바로 사용하는 근거리 송전망(마이크로그리드)을 구축한다.
장거리 송전선로
수도권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양은 전체의 약 44%다. 그러나 수도권에 있는 발전 설비는 전체의 23%에 불과하다. 전력이 생산되는 곳과 사용되는 곳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 이를 연결하는 장거리 송전선로를 확충해 수도권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한다.
계통안정화 설비
환경 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요동치는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에너지 공급망(계통)을 안정화하는 설비는 필수다. 계통안정화 설비에는 ESS, 동기조상기, 전력계통 보호장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