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주요기사][SF] 양자컴퓨터를 끄는 인력거꾼

▲라헌, midjourney

 

편집자 주
2024 SF스토리 공모전 총 36편의 수상작 중 양자컴퓨터 특별상(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상)을 수상한 소설을 지면으로 소개합니다.

 

나는 물리학 박사다. 그리고 양자컴퓨터를 끄는 인력거꾼이다. 앞으로 일주일간 안전하게 양자컴퓨터를 옮겨야 한다.

대학생 때 소달구지에 인공위성을 태운 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위성전파통신 실험에 방해되는 요소를 전부 배제해야 되다 보니 자동차 대신 소달구지에 위성을 태우고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소달구지와 인공위성. 마치 18세기와 20세기가 공존하는 듯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양자컴퓨터가 실린 수레는 가로와 세로 2미터 크기에, 자기장 차폐 금속이 1미터 높이로 양자컴퓨터를 감쌌다. 수레 몸체와 바퀴 사이는 12개의 특수한 스프링이 진동을 상쇄하고 있었다. 차폐 금속 외부엔 양자컴퓨터의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계측기와 다이얼이 달렸다. 겉보기엔 커다란 깡통에 눈금과 다이얼 몇 개가 붙은 게 전부라 아마추어 자작 앰프 같았다. 수레 한켠엔 텐트를 비롯한 캠핑 장비와 먹을 게 담긴 아이스박스가 실려 있었다.

양자컴퓨터는 수많은 냉각 장치와 진공펌프, 레이저, 함수발생기, 광학 부품으로 이뤄져 수많은 원자들과 초전도체의 결맞음을 유지시키고 있었다. 차폐 금속으로 틈새 없이 막아놓았음에도 외부 자기장에 극도로 취약해서, 일상적인 자기장의 1/1000 정도인 변화로도 원자들의 정렬이 흐트러졌다. 그래서 자동차는 물론, 전자기기는 단 하나도 주변에 두면 안 됐다. 또한 큰 진동은 레이저의 안정화 제어를 깨뜨리므로, 수레를 끌 때도 계측기의 다이얼을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

양자컴퓨터를 배달할 곳은 어느 자동차 회사다. 새로운 전기차 배터리 소재의 화학결합 시뮬레이션에 양자컴퓨터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양자컴퓨터를 직접 옮기는 이유는 많지만, 주된 이유는 보안이었다. 초기 양자컴퓨터는 원하는 단체가 모두 소유하기엔 매우 비싼 장비였다(그리고 지금은 훨씬 더 비싸다). 과거엔 거대 테크 기업이나 국가가 소유한 양자컴퓨터에 인터넷 클라우드로 접속, 사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양자컴퓨터를 돌려야 할 만큼 가치 있는 문제의 해답은, 해커가 훔치기에도 가치 있는 해답이라는 뜻이었다. 통신 채널의 보안 개선에 양자통신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양자통신은 거리에 비례해 효율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는 문제가 있었다. 거기에 더해, 양자 신호를 중계하는 양자중계기의 상용화는 관련 스타트업의 투자사기 스캔들 때문에 분야 자체가 죽어버렸다.

그리고 통신보안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더라도, 자신의 중요한 계산이 다른 조직의 컴퓨터에서 처리가 되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자신이 맡긴 계산 결과를 양자컴퓨터 회사가 훔쳐보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현재까지 흐름은 양자컴퓨터 자체를 사용자에게 배달해서 빌려주는 식으로 발전했다.

도시에서 반나절 걸어왔을 뿐인데도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야 할 길은 탁 트인 평지였지만, 오래 걸어다니기엔 꽤나 쌀쌀한 겨울 날씨였다. “힘들면 얘기해요. 교대해줄게.”

내 옆에서 발맞춰 걷는 사람은 호위 역할의 비센트다. 나이는 나와 비슷하게 30대로 보이지만, 어딘가 거칠고 행색이 안 좋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비센트는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었다. 총알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쇳덩이는 자기장을 만들기 때문에 호위는 총을 쓸 수 없었다.

“일단 번갈아가며 끌기로 했으니까 정해진 거리만큼 가서 교대할게요.” “박사님 힘쓰는 일하다가 허리 나갈라. 왜 박사가 이런 걸 끄는 일을 해요?” 비센트가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깊게 엮이고 싶지 않은 유형의 사람이어서 그러려니 내버려뒀다.

“수레를 끌 때 막 끌면 안되고, 여러 수치가 흔들리지는 않는지 체크해줘야 돼요. 그리고 양자컴퓨터의 상태에 따라 여러 값들을 보정하는 작업도 주기적으로 해줘야 되고요. 전자기기 없이 방향을 찾으려면 여기 안에 내장된 원자간섭계가 틀어지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이게 그렇게 대단한 기계에요? 깡통같이 생겼구만. 늘 궁금했는데, 양자컴퓨터가 대체 뭐요?”

이 업계에서 마주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양자컴퓨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대학원생일때는 내 박사학위 연구 주제에 대해서 연구실 밖의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이런 질문의 어려운 점은 상대가 얼마나 아는지를 내가 모른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아는지 잘 모른다.

“비유를 들면 양자컴퓨터는 수많은 원자들을 그네에 태우는 기계에요. 수많은 원자들의 그네가 결을 맞춰 움직이다 보면, 정답에 해당하는 진폭은 커지고 오답에 해당하는 진폭은 작아지죠. 우리가 그네를 탈 때도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힘을 주면 그네의 진폭이 점점 커지고, 잘못된 타이밍에 힘을 주면 그네의 진폭이 점점 작아지잖아요? 양자컴퓨터는 우리가 풀고 싶은 문제를 그네의 진폭에 대응시키고, 그네의 진폭이 가장 커지는 경우를 포착하는 기계죠. 수백만 개가 넘는 원자들과 초전도체가 동시에 결을 맞춰 움직이다 보면, 오직 정답에 해당하는 진폭만 살아남아요. 이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운 물리법칙의 결과여서, 엄청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죠.

하지만 원자나 초전도체 같은 양자역학적인 존재들은 외부의 노이즈에 엄청 취약해요. 일상에선 양자역학에서 이야기하는, 물체가 벽을 통과하거나 전기가 저항 없이 흐르는 현상을 볼 수 없잖아요? 원자처럼 작은 존재는 외부 환경에 노출되면 교란돼서 결을 잃어버려요. 그걸 막기 위해 정교한 전자기장 제어와 레이저 제어가 필요하죠. 그런 제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주변에 전자기기를 두지 않고 사람이 직접 끌어서 옮기는 거구요.”

“근데 원자란 게 뭐지?” 세상에. 그것부터 시작했어야 됐다니. 원자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하려면 하루 종일 가만히 서서 떠들어도 부족할 것이다. “어쨌든 엄청 예민하다는 뜻이니까 수레에 달린 것들 절대 만지지 마세요.”

그 뒤로 나와 비센트는 해가 질 때까지 묵묵히 수레를 끌었다. 비센트도 스몰토크를 즐기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양자컴퓨터의 상태를 체크하고 텐트를 설치했다. 수건에 물을 적셔 얼굴과 몸을 닦아내고 침낭 위에 잠깐 누웠다. 회사에서 양자컴퓨터 이송이라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긴다고 했을 때 기뻤다. 심지어 보너스도 많이 준다는데. 편히 앉아 바람 쐬며 계측기 다이얼이나 몇 번 만져주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텐트 밖에선 비센트가 모닥불을 만들고 불을 피워 물을 끓이고 있었다 “카레 만들 거요.” “요리 종종 하시나봐요?” “칼 쓰는 건 박사거든 내가.” 회사 동료에게 전해 듣기로는 비센트가 칼 솜씨로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비센트 씨는 양자컴퓨터 호위 업무를 쭉 해오신 거죠?” “좀 됐죠. 칼 좀 잘 쓴다고 이렇게 써주는 곳이 별로 없거든. 박사님은 어쩌다 이런 험한 일 하시나?” “보너스 왕창 준다니까 한 거죠. 회사에 이런 일 할 사람도 딱히 없구요.” “나름 대기업인데 이런 일할 사람이 그렇게 없어요?” “중간중간 양자컴퓨터 모니터링도 해야 되는데, 이런 거 할 줄 아는 사람 중에 싱글인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 물이 끓자 비센트는 고형 카레를 넣고 반듯하게 썬 감자와 당근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비센트는 카레에 무가당 요거트를 넣으면 의외로 맛있다며 한 숟갈 집어넣었다. 정말로 생각보다 맛있었다.

 

한밤중에 누가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며 잠에서 깨웠다.

“무슨 일이에요” “조용히 해요. 주변에 기척이 있으니까.” 아직 잠에서 덜 깨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발소리를 들어보면 한 명 같은데. 내 시야 밖에 있으면 지켜줄 수 없으니 같이 나오쇼.” 비몽사몽한 상태였지만 일단 비센트를 따라 텐트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모닥불 너머로 자객이라고 할 만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자객은 온통 새까만 옷에 얼굴까지 검은 복면으로 가리고 있었다. 

“대화가 통할 사람이라면 몰래 슬금슬금 오지 않았겠지.” 비센트가 칼을 빼들며 말했다. 자객도 묵묵히 칼을 뽑았다. 눈으로 따라가기 힘든 속도로 비센트가 달려나갔다. 모닥불빛 너머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몇 번의 움직임이 있었고, 이윽고 비명소리를 내며 누군가 쓰러졌다. 온몸이 얼어붙어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다행히도 모닥불 근처로 돌아온 사람은 비센트였다. 

“세상에 그 뭐에요? 양자컴퓨터를 노리고 오는 거에요?” “아마 그렇겠지. 그냥 평범한 강도였으면 우리한테 총 겨누고 다 내놓으라 했겠지. 저쪽도 칼 들고 있었던 걸 보면 여기 있는 깡통이 양자컴퓨터라는 걸 아나 본데 박사님한테 못 볼 거 보여줬네. 잠은 안 오겠지만 이제 근처에 뭐 없으니 주무쇼. 뒷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갑자기 극심한 피로와 두통이 몰려와서 기절하듯 잠들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엔 간밤의 흔적이 아무데도 없었다. 내가 꿈을 꿨나 싶었다. 비센트는 어제 만든 카레를 먹고 있었다. “카레는 하룻밤이 지나야 더 맛있어요. 숙성이 돼서.” 암살자가 목숨을 노릴 수도 있다는 얘기는 회사에서 못 들었다.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태연하지? 

“비센트 씨, 늘 암살자가 나타났어요?” “내가 이런 일을 대비해서 고용되긴 했는데, 양자컴퓨터 훔치러 온 사람을 마주친 건 이번이 처음이네.” “그럼 우리가 태연히 수레나 끌 때입니까? 당장 돌아가요!” “돌아가? 그럼 이건 버리고 가요?” “놓고 가야죠!”

“난 안 돌아갑니다. 암살자가 와도 칼 든 상대면 안 져요. 호위 업무 위약금 낼 생각도 없고.” “아니, 가정도 있는 사람이 목숨을 소중히 해야죠!” “가정이 있으니까 직장과 돈을 소중히 하는 거에요. 그리고 안 진다니까 그러네.”

자기도 실제로 암살자를 마주친 경우는 처음이라면서 무슨 자신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바보인가? 바보를 설득하려고 하는 내가 바보인가? 난 말없이 아이스박스에서 먹을 것과 물, 그리고 고체 연료를 좀 챙겼다. 지금 보니 아이스박스에 있는 식재료는 거의 다 카레 재료인 것 같다.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뗀 지 5분쯤 지났을까, 코앞에서 바람을 찢는 굉음이 지나가며 주변 모래흙이 솟구쳤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저 멀리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비탈길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총소리. 총은 군대에 있을 때 쏴보기만 했지, 맞는 쪽은 처음이다. 총소리는 진짜로 바람소리가 파열음보다 먼저 들리는구나. 21세기라면 사람을 죽이는 데 총을 쏘는 게 정상이었다. 총알이 만드는 자기장은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해 줄어들 것이므로, 양자컴퓨터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총알이 양자컴퓨터에 주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양자컴퓨터 바로 근처에 있을 때라 총을 안 쐈을 뿐. 아이러니하게도 암살자를 끌어들이는 양자컴퓨터가 내게는 안전가옥이었다.

이젠 상황이 반대가 됐다. 빨리 양자컴퓨터가 있는 수레로 돌아가야 된다. 수레에서 몇 분은 걸어왔으므로, 수백 미터는 떨어졌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오래 머무르면 칼 든 자객이 찾아올 것 같았다. 비센트가 구하러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아마 아닐 것이다. 비센트가 양자컴퓨터를 내팽개치고 나를 구하러 온다면, 암살자를 보낸 사람들이 양자컴퓨터를 가져가겠지. 비센트도 그걸 알 테니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나 스스로 뭐라도 해야 한다. 가방을 열어 아까 챙긴 물건들을 하나하나 체크했다. 카레가루, 감자, 양파, 토마토, 물, 돼지고기, 냄비, 고체 연료. 최후의 만찬이라도 해 먹어야 하나?

이어서 주변을 체크했다. 듬성듬성 자란 사람 키 정도 높이의 앙상한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기어가서 나뭇가지를 잘라냈다. 나뭇가지에 양파와 토마토, 감자 등 야채를 되는 대로 꽂았다. 옷을 벗어서 옷 안에 야채를 꽂은 나뭇가지를 집어넣어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부디 적당히 두툼해 보여서, 멀리서는 사람처럼 보이길 바랐다. 긴장감과 겨울의 추위가 겹쳐 온몸이 벌벌 떨렸다.

시선을 분산시킬 만한 것은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았다. 나무에 돼지비계를 비빈 뒤, 고체 연료로 불을 붙였다.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할 때 허수아비를 비탈 위로 던졌다. 총성이 울렸다. 그때를 틈타 온 힘을 다해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저 멀리 수레가 눈에 들어왔다. 물리적으로는 몇 분 안 지났지만, 내 생에 가장 긴 순간이었다. 비센트는 수레를 끌고 있었다.

“범생이인 줄 알았는데 다시 돌아왔네? 옷은 어디 갔어요?” 분명 이 사람도 총성을 들었을 텐데 별거 아니라는 듯이 구는 태도에 완전 질려버렸다. 나는 비센트의 말에 대답 없이 계측기 눈금을 봤다. 다행히 양자컴퓨터의 상태와 레이저 제어는 안정적이었다. 겨울 날씨에 알몸이었는데도 온몸이 땀에 젖었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수레에서 옷가지를 챙겨 입었다. 

저녁이 될 때까지 비센트와 나는 말없이 계속 수레를 끌었다. 중간중간 비센트를 멈춰 세우고 계측기의 값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날 저녁에도 비센트는 물을 끓이고 카레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마살라를 조금 넣은 인도식 카레라고 한다. 배고팠지만 물만 먹고 일찍 자러 들어갔다. 새벽에 또 일어나야 할 듯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새벽에 비센트가 날 깨웠다. 난 아무 말 없이 비센트가 손짓하는 대로 따라 나갔다. 예상대로 자객이 나타났고, 이번에도 비센트가 단칼에 상대를 베어버렸다. 자신만만해 할 만한 몸놀림이었다. 

다음 날 아침 비센트가 말하길 인도식 카레는 하룻밤 더 숙성돼도 딱히 더 맛있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오늘은 내가 먼저 수레를 끄는 날이었다. “그나저나, 이 양자컴퓨터란 건 어디로 가는 거지? 뭘 위해 배달 가는 거요?” 비센트가 물었다. “자동차 회사인데, 새로운 형태의 배터리를 설계하려고 대여하는 거예요. 새로운 소재의 배터리를 위한 화학계산 시뮬레이션을 한다고 학회에서 몇 번 얘기를 들었어요.” “자동차 회사가 그런 일에 컴퓨터도 써요? 신기하네. 박사님은 아는 것도 많으셔.” 

해가 질 무렵이 되어 수레를 멈추고, 양자컴퓨터의 상태를 체크했다. “오늘은 무수분 카레를 할 거요. 물을 안 넣고 야채에서 나온 수분만으로 만드는 카레인데, 야채 감칠맛이 아주 좋아요.” 며칠째 카레인데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나도 메뉴를 고민하기 귀찮아서 일주일 내내 같은 음식을 먹을 때도 있어서, 이 사람과 공통점이 있다는 점이 싫었다.

“아내가 입원하기 전에는 같이 캠핑 다니면서 해 먹었는데. 병실에는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 들고 오면 안 된다 하더라고.” “아내가 입원 중이신가요?” “큰 병은 아니고. 약 먹고 좋은 공기 쐬고 하면 악화되진 않는다 하네. 미안해요. 안 구하러 가서.” 아내가 입원 중이라는 말을 하면서 사과를 하다니,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과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난 가볍게 고개만 까딱였다.

난 맞은 편에 앉아 과도로 감자 깎는 일을 돕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 기척을 느끼는 거,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건가요?” “배워서 되는 건 아니고. 타고난 거죠. 박사님은 총 쏘는데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거예요?” 나는 나뭇가지를 꺾어 양파와 토마토로 허수아비를 만든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비센트는 숨넘어갈 듯 웃기 시작했다. “그런 게 통할 거라 생각했다고? 저격수가 실력이 형편없어서 산 거네. 그래도 깡이 아주 대단해!” 비센트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정말이지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손질한 양파와 토마토, 감자를 넣고 약불에 끓이니 물을 안 넣어도 될 정도로 채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 밤에도 암살자가 저희를 깨우겠죠?” “근데 며칠 못 갈거야. 요즘 같은 시대에 칼 쓰는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거든.” “근데 왜 암살자들은 한 명씩 오는 거예요? 한꺼번에 오는 게 확실할 텐데.” “떳떳하지 못한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자기 신원이 노출되면 안 되니 혼자 일하는 게 보통이야. 그리고 동업자랑 일하다가 혼자 독식하려고 서로 죽이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고.”

비센트가 “떳떳하지 못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걸 들으니 느낌이 묘했다. 나는 은연 중에 비센트도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부류의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비록 정당방위라 할지라도 사람을 죽였으니까. 하지만 양자컴퓨터에서 반경 몇 미터의 공간은 21세기가 아니었다. 물리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그보다 몇 세기 전의 환경으로 생각해야 했다.

그때, 내 옆으로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나며 화살이 바닥에 박혔다. 비센트는 화살이 꽂힌 방향을 보자마자 날 잡아당겨 수레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총 대신 활을 쏠 줄은 예상 못했군.” 양자컴퓨터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총 대신 활을 쓴 것 같지만, 화살촉을 보니 금속 재질인 것 같았다. 화살의 속도나 질량 같은 건 잘 모르지만, 화살촉이 만들어내는 자기장이 양자컴퓨터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양자컴퓨터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계측기 눈금은 지금 나와 비센트가 숨은 쪽이 아닌 왼쪽 면에 달려 있었다. 계측기 눈금을 보려면 화살 쏘는 사람의 시야로 나가야 했다.

“계측기 눈금을 봐야 돼요. 저 화살도 양자컴퓨터에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지금 무슨 소리야? 일단 몸을 숨기라고.” 그때 다시 한 발의 화살이 근처에 와서 꽂혔다. “석궁 같은 걸로 화살 쏠 때 연사는 못하죠?” “보통은 그래. 설마 그 몇 초 사이에 눈금을 보고 온다는 건 아니지?”

“맨 처음 화살이 날아올 때 여러 발이 아니라 한 발만 날아왔다는 건, 화살 쏘는 사람이 한 명이란 뜻이잖아요. 화살이 오면 다음 화살까지 몇 초는 벌 수 있어요.” “젠장, 한 번 운 좋게 살아 돌아온 거 가지고 무슨 자신감이야?” “제가 한 말 자체는 맞죠?” “”

그때 또다시 화살 한 발이 먼 발치에 꽂혔다. 그러자마자 나는 수레 왼쪽으로 돌아서 레이저 피드백 제어의 에러 시그널을 확인했다. 레이저 파장이 이상한 위치에 가 있었다. 짧은 시간에 큰 노이즈가 생기면 종종 있는 일이었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레이저 제어를 바로잡으려면 전류 피드백과 공진기 피드백을 끄고, 레이저의 파장을 바로잡고 다시 공진기와 전류 피드백을 켜야 한다. 화살 때문이 아니라 원자 결맞음의 유지 시간 때문에 이 모든 과정을 5초 안에 해내야 한다. 공진기와 전류 피드백을 끄는 건 토글만 딸깍하면 되고, 레이저 파장을 바로잡는 것도 손을 빠르게 놀리면 5초 안에 가능할 것 같다.

“비센트 씨, 딱 5초만 벌어주세요. 그럼 제가 레이저 제어를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어요.” 비센트는 뭔가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버는 걸로는 부족해. 지금 활 쏘는 놈을 처리 못하면 골치 아파지니. 아마 활 쏘는 놈은 저기 언덕에서 쏘고 있을 거야. 화살 꽂히는 각도랑 속도를 보면 저쯤일 테니.”

비센트는 카레가 있던 곳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알루미늄으로 된 간이 식탁을 방패처럼 치켜들었다. 다행히 화살은 알루미늄으로 된 간이 식탁을 뚫지 못했다. 난 그 사이 레이저 피드백을 풀고, 파장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고, 다시 피드백을 켰다. 레이저 제어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비센트와 나는 다시 수레 뒤로 몸을 숨겼다. “레이저인지 뭔지는 어때?” “생각해보니 한 번 더 조정해야 돼요. 지금 상태에선 화살을 쏘면 다시 틀어질 테니까, 피드백의 값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심지어 이번엔 어떤 값이 최적인지 몰라서 더 시간이 필요한데” “그럼 아예 화살 쏘는 놈을 처리하고 오지. 끽해야 100미터 정도 떨어진 거 같은데. 10분 뒤에 돌아오지.” 비센트가 식탁을 방패처럼 들고 달려나가서 눈깜짝할 사이에 멀어졌다. 저 인간도 정상은 아니다.

정말 10분 뒤에 비센트가 돌아왔다. “겨울이라 참 다행이군. 시야가 탁 트여서 금방 잡았어. 양자컴퓨터는 멀쩡하지?” “멀쩡해요. 카레는 아니지만.” 아까 식탁을 들어올리면서 카레가 엎어진 모양이다. 그날 저녁은 빠르게 만들 수 있는 평범한 카레를 먹고 잠을 자러 들어갔다.

 

다음 날은 비센트가 먼저 수레를 끌었다. 비센트와 아내는 스무 살 때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났는데, 큰 애가 벌써 열네 살이라고 한다. 내 또래지만 어른 행세하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엔 카레에 땅콩버터를 넣어봤다. 나쁘진 않지만 미묘했다. 또 밤에 칼을 쓰는 암살자가 찾아왔다. 이제 비센트는 날 깨우지도 않고 혼자 나갔다.

그 다음 날에는 카레에 들어가는 야채를 깍둑썰기가 아니라 채썰기로 넣어봤다. 야채가 너무 뭉근해져서 별로였다. 다음 날 저녁에는 버몬트 카레가 생각나서 카레에 사과를 넣고, 꿀이 없어서 설탕을 넣었다. 비센트는 맛있다고 했지만 난 단맛이 싫어서 별로였다. 

슬슬 카레 아이디어가 떨어지자 도착할 무렵이 됐다. 지금 같은 속도면 내일 오전 중에 접선 장소에 도착할 것 같았다. “접선 장소에 자동차 회사 엔지니어들이 마중 나와 있을 거에요. 우리는 양자컴퓨터를 인계했다는 서명을 받으면 임무 완료입니다.” “배달 완료하면 뭐할 거요? 퇴사?” “이렇게 개고생했는데 퇴사라뇨. 이 악물고 다녀서 승진할 겁니다. 화살 피하며 양자컴퓨터 만져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회사 사람들이래 봤자 다 범생이지.”

지난 일주일을 생각하니, 양자컴퓨터를 배송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고만 올리는 건 너무 얌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센트 씨, 도착할 때쯤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비센트는 내 계획을 듣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안 된다고는 하지 않았다. 마지막 저녁은 남은 재료를 전부 넣은 묻지마 카레였다. 생각보다 맛이 좋아서 즐거운 저녁이었다.

다음 날 오전, 저 너머에 양자컴퓨터를 인수하기 위해 나온 직원들이 보였다. 그들은 피칠갑이 된 내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오늘 새벽 비센트한테 부탁해 팔뚝에 상처를 내고 그 피를 일부러 옷 이곳저곳에 묻혀뒀다.

“양자컴퓨터 배달 맞죠? 괜찮으신 건가요?” “괜찮습니다. 별일 없어요. 여기 서류에 서명하시면 돼요. 저는 출장 신청한 게 어제까지여서, 오늘은 출근하러 빨리 가볼게요.”

자동차 회사 엔지니어들은 얼떨떨한 채로 양자컴퓨터의 상태도 확인 안 하고 내가 건넨 서류에 서명을 했다. 모든 임무가 끝났다. 나와 비센트는 회사가 잡아둔 호텔로 갔다. 호텔 로비에서 회사가 준비해둔 휴대폰과 지갑을 받아 챙겼다. 일주일 만에 만져본 문명 사회의 산물이지만, 막상 손에 쥐니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비센트는 가족과 한참 통화를 했다.

“비센트 씨, 나중에 술 한잔 합시다.” 비센트와 호텔 앞에서 헤어진 난 씻지도 않고 바로 회사로 향했다. 출입 게이트에서 보안요원들이 가로막았지만 사원증을 보여주며 갈아입을 옷이 사무실에 있다는 말로 통과했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사람들은 날 중심으로 토성의 고리처럼 멀찍이 떨어졌다. 엘리베이터에 타려다 나랑 눈이 마주치고 타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딱 내가 원한 반응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팀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날 쳐다봤다. “무슨 일이야? 피야?” 선배 한 명이 물었다. “양자컴퓨터 옮기는 길에 칼 든 암살자가 절 노리던데요.” “칼 든 암살자라고?” 나는 비센트와 함께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양자컴퓨터 배달을 해봤던 선배는 자기 때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면서 믿지 못했지만, 반박하기엔 지금 내 모습이 꽤 파격적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거칠고 행실이 나쁜 사람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피칠갑한 내 모습이 인상 깊었는지, 이제는 양자컴퓨터를 옮길 때 호위를 강화해서 수십 미터 반경으로 경호 라인이 함께 움직인다고 한다. 나는 보너스를 받아 캠핑 장비를 샀다. 비센트는 다시 만나지 않았다. 훈련소에서 친해진 사람들끼리 헤어질 때 꼭 다시 한 번 보자고 말해놓고 결코 다시 만나지 않는 것처럼.

그 뒤로 난 꽤 승진했다. 잠깐이나마 임원이라는 직책을 달기도 했다. 피칠갑으로 나타난 게 도움이 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인사과에 있는 친구 말로는 내 평판이 그 일로 많이 안 좋아졌다고 한다. 나는 그저 평소에도 화살 앞에서 레이저 제어를 살핀 때처럼 일했고, 토마토와 양파로 총알을 피했던 만큼의 운이 몇 번 따랐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은 카레에 넣고 싶은 재료는 다 넣어볼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었다.

이제는 양자컴퓨터를 사람 손으로 끌고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공정 기술이 원자 한두 개 수준의 정밀도로 발달해서 양자중계기가 상용화됐다고 한다. 덕분에 이쪽 업계 사람들이, 양자컴퓨터를 인력거로 옮긴다는 아이디어가 정말 멍청하다는 걸 깨달아서 참 다행이다. 

 

 

저자 소개
조완 : 가끔 글을 쓰는 대학원생. 서울대에서 양자기체와 초유체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2025년 1월 과학동아 정보

  • 조완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