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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여덟 다리의 비밀] 신비의 동물, 누가 거미인가?

‘거미’를 아는가?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거미가 네 쌍, 총 8개의 다리를 지녀, 다리 세 쌍의 곤충과는 다른 절지동물 무리라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하지만 거미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확히 어떤 동물들이 거미라고 정의되고 불리는지 잘 모를 것이다. 누가 ‘거미’인지, 함께 그들의 정체에 대해 알아가 보자.

 

▲Sebastian Echeverri
거미는 현재까지 발견된 종만 12만 종 이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거미라고 인식하는 동물은 거미강에 속하는 11개의 무리 중 단 하나다.

 

우리는 아직도 거미를 모른다

 

‘거미’라는 단어를 보면 어떤 동물이 떠오르는가? 약 5억 년 전인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바다전갈, 투구게와 같은 해양 절지동물과 갈라져 4억여 년 전 실루리아기에 육상에 올라온 거미들은, 진화와 종분화를 거듭하여 지금까지 발견된 현생 종만 12만 종에 이른다. 이때의 ‘거미’는 절지동물문 거미강(Arachnida)에 속하는 동물들을 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질적으로 거미라고 인식하는 동물은 거미강에 속하는 11개의 무리 중 단 하나다. 그중 절반이 넘는 6개 무리는 한반도에 서식조차 하지 않으니, 거미류의 다양성에 대해 웬만한 ‘거미 덕후’가 아니라면 제대로 알기 어렵다.

 

그렇다면 ‘거미의 행동’을 생각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거미줄을 만드는 모습? 많은 다리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 거미류는 종 다양성만큼이나 행동의 다양성과 그 흥미로움으로 많은 행동생태학자들의 경탄을 자아내왔다. 그 신비로움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을 뿐이다.  

 

이번 화에서는 거미강 내 11개 무리와 그 신비한 행동의 ‘극히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잘 알려진 무리부터 연구조차 많이 되지 않고 있는 무리까지. 총 11개 종류의 거미 무리 중 앞선 다섯 개 거미 무리는 한반도에 서식하나 여섯 번째 거미부터 마지막 거미 무리는 한국에서 기록된 바가 없다. 특히 아홉 번째 거미부터 열한 번째 거미는 순우리말 명칭도 없다. 설명에서 사용한 한자명은 고 김주필 동국대 교수가 쓴 ‘거미생물학’ 책에서 사용된 명칭이다.

 

앞으로 연재를 통해 그들의 의식주, 대화, 사랑, 갈등에 대한 이야기까지, 여덟 다리의 동물들이 보여주는 행동의 신비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거미]

 

▲Shutterstock

 

거미강 거미목(Araneae)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진짜’ 거미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머리가슴과 배. 이렇게 두 부분으로 명확하게 나뉜 몸과, 다양한 거미줄의 활용이 특징이다. 거미목에 속한 종만 5만 2000종이 넘는데, 이는 양서파충류, 조류, 포유류의 종수를 모두 더한 것보다 1만 종가량 더 많다. 그 생태도 거미줄을 치는 종, 직접 배회하며 사냥하는 종, 물속에 사는 종 등 다양하다. 생태에 따라 행동도 모두 다르다.
이 때문에 거미목을 대표하는 행동을 꼽기가 어렵다.

 

[얘네도 거미라고? 싶은 거미들]

 

▲Marshal Hedin

 

전갈목(Scorpiones)

 

전갈목은 사냥에 쓰이는 강력한 집게와 꼬리의 독침이 특징이다. 독침은 길쭉하게 변형된 복부의 연장선이라, 천적으로부터의 방어 수단일 뿐만 아니라 말단의 항문을 포함한 소화기관이기도 하다. 꼬리가 포식자에게 붙잡혀 위기에 처하거나 상처를 입어 감염의 우려가 생기면 스스로 잘라내는데, 절단부는 아물지만 꼬리는 재생되지 않아 황당하게도 항문이 막힌 영구적 변비 환자가 된다. 중증 변비에 걸린 전갈은 점차 활력을 잃지만, 상당 기간을 생존하며 죽기 전까지 번식도 가능하다.

 

또한 전갈목은 몸에 자외선을 쪼였을 때 선명한 형광을 낸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자외선 차단, 짝 선택, 먹이 유인 기능 등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들이 연구되고 있다.

 

▲Shutterstock

 

진드기/응애아강(Acari)

 

작지만 많다. 길이 0.08~20mm로 가장 작지만, 5만 4000종 이상으로 가장 다양한 거미류다. 진드기/응애만 목이 아니라 아강인 이유는, 이들이 분류학적으로 아직도 제대로 정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종이 기생, 공생 등 다른 생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생활사를 지닌다. 척추동물의 피를 빠는 진드기류는 피로 배를 가득 채웠을 때 원래 부피의 600배까지 늘어날 수 있는 신축성 있는 외피를 가졌다. 달팽이에 기생하는 응애무리는 달팽이가 바닥에 남기는 점액질을 쫓아 숙주를 찾으며, 짝짓기 상대를 찾을 때는 동족에게 이미 감염된 달팽이의 점액과 그렇지 않은 점액을 구분해 전자를 쫓아가기도 한다. 

 

▲Gluaco Machado

 

통거미목(Opiliones)

 

머리가슴과 배의 구획이 명확하지 않아 이름처럼 몸이 통짜로 보여 통거미란 이름이 붙었다. 또 통거미목은 머리카락같이 매우 얇은 다리를 지녔다. 통거미목의 어떤 종들은 5종 이상으로 구성된 수천 마리의 군집이 서로 다리를 포갠 채 무리를 이뤄 쉬는데, 현재 이런 행동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다른 거미들은 대부분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포식자인데, 통거미는 그에 더해 과일이나 버섯 등도 먹는 잡식성이다.
또한 거미강에서 유일하게, 암컷이 아닌 수컷이 알과 새끼를 돌보는 부성 행동이 많은 종에서 나타난다.

 

▲Donald Hobern CC BY 2-0(W)

 

앉은뱅이/의갈목(Pseudoscorpiones)

 

영문명을 직역하면 가짜 전갈이다(Pseudo-는 가짜란 뜻의 접두사). 전갈과 비슷하게 집게가 있으나, 몸길이가 1~8mm로 훨씬 작고 복부 끝의 독침이 없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독과 거미줄을 모두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거미 무리로, 거미줄은 입에서, 독은 집게에서 분비된다.
어떤 종들은 히치하이킹을 하기도 하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식물에 방문한 벌이나 파리 등 날벌레의 몸을 집게로 붙잡고 그대로 올라타 이동한다. 어미가 육아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먹이가 넉넉지 못할 때는 어미가 자식들에게 자신의 몸을 뜯어먹도록 내어주는 모체 포식 현상이 관찰된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거미들]

 

▲Gustavo de Miranda

 

채찍거미목(Amblypygi)

 

납작한 몸에, 입 근처에는 사냥에 쓰이는 가시가 돋친 글러브를 지니고 있다. 유연한 채찍처럼 얇고 길게 변형된 첫 번째 다리 한 쌍이 특징적이다. 이는 물리화학신호를 모두 수용하는 아주 예민한 감각기관으로, 먹이와 짝을 찾고 다른 개체와 경쟁하는 데 쓰인다. 싸움의 양상은 독특한데, 서로를 향해서 이 다리를 연신 흔들어대지만 서로 닿지는 않는다. 다리 위의 감각모가 상대방이 얼마나 빠르고 강하게 다리를 흔들어 바람을 세게 일으키는지를 감지함으로써 우열을 가린다. 이러한 감각 신호들을 잘 처리하기 위해 거미류 중에서 가장 큰 뇌를 지녔으며, 그 능력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큰 뇌 덕에 복잡한 열대우림에서 9m의 길을 정확히 외워 집으로 복귀하는 능력이 있다.

 

▲Shutterstock

 

낙타거미목(Solifugae)

 

핑킹가위같이 생긴 무시무시한 큰 턱과 듬성듬성 난 털이 돋보인다. 낙타거미라는 이름은 그 괴악한 외모 덕에 사막에서 마주치는 낙타의 위장을 파고들어 간다는 미신의 주인공이 되며 얻은 오명이다. 교미 행동 또한 특이하기 짝이 없는데, 수컷은 교미 전후로 큰 턱을 이용해 암컷의 내부생식기를 잘근잘근 씹어버린다. 어떤 종의 암컷은 격렬히 저항하는 반면, 다른 종의 암컷은 자신의 급소를 유린하는 것을 가만히 참아낸다.

 

▲Gustavo de Miranda

 

식초전갈목(Uropygi/Thelyphonida)

 

배 끝의 기다란 편모 기부의 분비샘에서 식초 스프레이를 뿌려 포식자를 쫓아낸다. 이들이 뿌리는 식초는 우리가 물냉면에 넣어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식용 식초가 5~10%의 초산을 함유한 데 비해, 식초전갈의 것은 85%에 육박하는 초산을 함유하고 있다. 포식자를 기겁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한국에 없을 뿐더러 순우리말도 없는 거미]

 

▲Marshal Hedin

 

단미목(Schizomida)

 

식초전갈과 외모가 사뭇 유사하나, 크기가 작고 편모가 매우 짧다. 하지만 그 짧은 편모가 중요한 기능을 한다. 암컷이 수컷의 구애를 수용하면, 수컷은 몸을 돌려 암컷의 얼굴에 편모를 들이밀어 암컷이 입으로 편모를 물게 한다. 수컷은 편모에 매달린 암컷을 마치 리어카를 끌고 가듯 정자를 미리 저장해놓은 곳으로 인도해, 암컷이 수정에 쓸 수 있도록 한다.

 

▲Jillian Cowles

 

수각목(Palpigradi)

 

식초전갈과 외형이 꽤 유사하나 크기가 1~1.5mm에 불과하고, 긴 편모에 수평으로 용도가 불분명한 털들이 나 있다. 대부분이 동굴에 서식하며 그에 적응해 눈이 없다. 그 탓인지 첫 번째 다리 한 쌍을 걷는 데 쓰지 않고, 항상 공중을 휘적거리며 더듬이 대용으로 쓴다.

 

▲Lenardo Sousa Carvalho

 

절복목(Ricinulei)

 

가장 불가사의한 무리다. 행동에 대한 연구가 매우 적다. 아프리카와 미대륙 일부의 습한 곳에서만 드물게 발견되며, 살아있는 표본보다 화석이 먼저 발견됐을 정도다. 가장 두꺼운 갑옷으로 무장한 거미류로, 몸길이 4.7mm 개체의 외골격 두께가 0.21mm였다고 하니, 키 170cm의 인간이 전신에 7cm 두께의 피부를 두른 셈이다.
통짜 갑옷을 두른 탓에 관절의 가동 범위가 작아서, 그 움직임도 매우 둔하고 엉성하다.

 

 

“거미 연구자들이 거미와 사랑에 빠진 순간”

 

이항: 어떻게 처음 거미를 좋아하게 됐어?

정화: 어릴 땐 거미를 무서워했어. 어쩌다가 학부 때 곤충 박물관에서 거미를 관리하는 일을 맡아서 관심이 생겼지. 그러다가 2018년에 마다가스카르에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Darwin’s bark spider(다윈의 나무껍질거미)’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거미줄을 만드는 거미를 보게 됐어. 거미줄이 얼마나 멋지던지!

이항: 너도 취향이 참

정화: 그다음 해에 새들이 사라진 괌에서 거미 군집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대한 주제로 처음 거미 연구를 시작했지. 너는?

이항: 나는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어릴 때부터 거미를 그냥 좋아했어. 기억에 남는 사건 하나가 있긴 한데, 6살쯤인가 잡으려고 쫓아가던 메뚜기가 웬 흰색 그물에 앉았는데, 그물 안쪽에서 튀어나온 새카만 무언가가 메뚜기를 낚아채 사라지더라고.

정화: 쫓던 벌레를 거미한테 뺏겼다는 거야? 불쌍해!

이항: 응. 나중에야 그게 한국깔때기거미라는 종인 걸 알았지.

 

 

저자 설명
박이항 : 미국 네브라스카대 거미행동생태연구실 연구원. 한국에서 노린재류의 진화생태로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깡충거미류의 의사결정을 주제로 박사학위 연구 중에 있다. ypark15@huskers.unl.edu

 

서정화(Jillian Kurovski) : 미국 네브라스카대 거미행동생태연구실 연구원. 미국에서 거미류의 계통분류와 군집생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닷거미류의 암컷 주도 짝선택을 주제로 박사학위 연구 중에 있다. 한국 태생으로, 생후 8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됐다. jkurovski2@huskers.unl.edu

2025년 1월 과학동아 정보

  • 박이항·서정화 미국 네브라스카대 거미행동생태연구실 연구원
  • 에디터

    김태희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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