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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이웃집 기후활동가] 망가진 물건, 다시 쓸 권리 외치는 활동가 유혜민 대표

 

10월의 마지막 날,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한편에 있는 ‘수리상점 곰손’을 찾았다. 이날은 우산 수리 모임이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책상 위에 우산을 뒤집어 올려놓고, 부러지거나 빠진 우산 살을 고치고 있었다. 수리상점 곰손은 고장 난 물건을 수리하고, 수리 방법을 많은 사람에게 전파하는 공간이다. 수리 품목은 아이폰, 깨진 그릇, 자전거 등 다양하다. 이 공간은 본업이 따로 있는 6명의 공동대표가 2024년 2월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그중 환경 다큐멘터리 감독인 유혜민 대표를 만났다.

 

편집자 주
‘이웃집 기후활동가’는 지난 6개월 동안 지구를 지키기 위해 작은 한 발짝을 보태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왔습니다. 이들의 삶은 우리도 함께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를 불어넣어 줬습니다. 짧은 연재를 마치지만, 이웃집 기후활동가는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지금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리상점 곰손의 한쪽 벽면에서는 자투리 실로 만든 핸드메이드 악세사리, 병뚜껑 재활용 키링들, 청바지를 활용한 가방 등을 판매하고 있다.

 

Q. 수리상점 곰손은 어떻게 열게 됐나요?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 이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지만, 어떤 주제가 저에게 맞을지 고민이 됐어요. 제로웨이스트샵을 열어볼까 생각했지만 가게 운영에는 자신이 없었고, 생태계 보호 캠페인은 도시에 사는 저에게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죠. 그러던 중 제가 평소에 자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떠올려 보니, 바로 고장 난 물건을 고치는 일이더라고요.

저는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어 전자제품을 많이 사용해요. 자연스럽게 고장 난 전자제품을 고쳐서 사용하곤 했죠. 그러다 아이폰 수리에 관심이 생겼어요. 아이폰은 구형 모델의 수리를 잘 지원하지 않고, 수리비도 비싸요. 사람들에게 아이폰을 직접 수리하는 방법을 공유하고, 수리 제도를 개선할 방법을 함께 모색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23년 봄에 망원동에 있는 제로웨이스트숍 ‘알맹상점’에서 수리권(구입한 물건을 직접 수리할 수 있는 권리)을 알리는 캠페인 겸 아이폰 수리 워크숍을 처음 열었어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핸드폰을 가져와 해체하고 배터리를 교체했죠. 비정기적으로 워크숍을 열었지만, 매번 많은 사람이 모였어요.

이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이러한 활동을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부품과 부자재를 준비해두고,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그러자 뜻이 맞던 사람들이 바느질과 같이 각자가 수리할 수 있는 품목을 말했고, 그렇게 수리 품목을 하나씩 늘려 조성한 공간이 ‘수리상점 곰손’이에요.

 

 
1 수리상점 곰손에는 저렴한 가격에 고장 난 우산 수리를 맡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2024년 초부터 현재까지 접수된 우산들은 수백 개에 이른다.

 

 
2 우산수리 전문가인 곽성규 강사가 수리상점 곰손에서 빠진 우산 살을 수리하고 있다.

 

Q. 환경 다큐멘터리 제작부터 수리상점 운영까지 하다니 대단하세요. 환경에 관심을 가진 건 언제부터였나요?

어렸을 때는 단순히 영화가 좋아서 영화 제작자를 꿈꿨어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영화를 만들던 중 우연히 알맹상점을 운영하는 금자(고금숙 공동대표의 닉네임) 님을 알게 됐어요. 금자 님은 당시 여성환경연대에서 활발히 활동했지만, 저는 환경에 큰 관심이 없었죠. 그런데 2018년 금자 님이 인도와 케냐에 간다며, 저에게 함께 가서 영상을 찍어달라고 부탁했어요.

인도와 케냐는 비닐봉지 사용 금지가 법제화된 나라였어요. 전 세계가 쓰레기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데, 아예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발상 자체가 혁신적이었죠. 그래서 현지에 가서 실상을 직접 보기로 했어요. 그곳에서 여러 쓰레기장을 방문해 쓰레기가 처리되는 과정을 보고, 기후 활동가들을 만났어요.

현장에서 보니 모든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연결돼 있었고, 결국 폐기물을 처리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유해 물질에 노출되는 것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후부터 제가 제 시선 바깥에 있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환경 운동이 결국 사람을 위한 운동이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죠. 자연스레 제가 만드는 영화 주제도 점차 환경, 특히 수리권으로 좁혀졌어요.

 

Q. 그렇다면 그 이후로 인생이 180도 바뀌었나요?

아니요(웃음). 저도 한번에 플라스틱 사용을 멈추지는 못했어요. 저의 환경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데 6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죠. 20년 넘게 이어온 생활 패턴을 바꾸는 것은 어려웠고,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갑자기 환경을 위해 이것도, 저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주변에 환경 관련해서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요. 저 역시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완벽히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개인을 설득해 한 명의 소비를 줄이더라도, 결국 생산되는 물건의 양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로는 개인을 둘러싼 사회가 변화해야 하죠. 이 때문에 제도적인 운동을 다루는 캠페인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Q. 수리상점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가요?

처음에 우산 수리 수업을 열 때는 반신반의했어요. 우산은 3000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그보다 비싼 돈을 주고 고치려고 할까? 그런데 실제로 수리상점에 오는 사람 중 우산 수리를 원하는 분들이 가장 많아요. 첫 월급을 타서 구입한 우산, 자녀에게 선물 받은 우산 등 우산마다 절대 버릴 수 없는 사연이 있더라고요. 이처럼 한 물건의 세계 안에 저마다 정말 많은 추억이 얽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공식 수리점에 아이폰 배터리 교체를 맡기면 10만 원이 넘게 드는데, 수리상점 곰손에서는 절반 가격으로 고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요?

자신이 직접 수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식 수리점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큰 수익은 나지 않지만, ‘수리상점 곰손’이라는 공간을 운영할 정도의 비용은 충당할 수 있죠. 어쨌든 경제 활동이 필요하니, 6명의 공동대표 모두 곰손 운영은 부업이고 본업이 따로 있어요. 다들 일주일 중 하루 이틀을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이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그런 부담은 감수하고 있죠.

 

Q. 수리상점 곰손은 수리와 관련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내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수리권 보장은 2020년대부터 미국이나 유럽연합(EU)에서 관련 법이 생기면서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됐어요. 한국에도 2024년 1월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폐기물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며 폐기물의 순환이용을 촉진하는 ‘순환경제사회전환촉진법’이 만들어졌죠. 하지만 법안이 아직 완벽히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예요. 수리권 보장을 어떤 방법으로 강제해서 기업들이 수리할 수 있는 물건을 얼마나 만들 것인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죠.

수리권 관련 법이 생기고 나서 미국은 애플에서 아이폰 배터리와 수리 공구를 별도로 판매하게 됐어요. 프랑스에선 물건이 얼마나 수리에 용이한지를 알려주는 수리 가능 지수를 표기하죠. 수리권 보장이 안 되면 물건을 제대로 수리받지 못하고 계속 새로 사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요. 물건이 생산되고 폐기될 때까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다같이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Q.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할 계획하고 있나요?

수리가 불가능한 저렴한 물건의 생산과 소비를 지양하도록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사람들이 비싼 물건은 어떻게든 고쳐 쓰지만, 저렴한 물건은 고치기보다는 바로 버리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물건을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202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김진화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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