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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국내 첫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에 가다

2008년 2월, 숭례문 화재는 설 연휴 마지막 날 저녁에 발생했다. 한 노인의 어처구니없는 방화로 2층 상부의 90%가 불 타 버렸다. 국보 1호가 거대한 화마에 휩싸인 장면은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지만, 다행히 숭례문은 5년 만에 예전 모습을 거의 되찾았다. 큰 규격의 부재가 상당 부분 재활용 가능한 상태로 남았던 덕분이었다. 그리고 화재 10년 만에 이런 부재들을 차곡차곡 모을 수 있는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가 문을 열었다.

 

 

2017년 12월 1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있는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12월 19일 준공식을 2주 가량 남겨놓고 있어서인지 입구는 한적했다. 알려준 비포장도로를 따라 1km 정도 차를 몰고 들어갔다. 직사각형 모양의 현대적인 건물이 보였다.

 

“추운데 잘 찾아 오셨네요?”

 

강선혜 문화재청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기준관리팀장이 밝은 목소리로 맞았다. 전통적인 건축 부재를 보존하는 곳이라고 해서 한옥 건물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을 예상했는데 의외였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연구원들은 간편한 청바지에 잠바를 걸친 차림이었다. 각각 목조건축, 탑건축, 목부재, 보존과학, 세계유산 등 전공 분야가 다르다고 했다.

 

 

영하 7도 수장고의 문을 열다


“10년 만이라, 저희도 감회가 새로워요.”

 

강 팀장은 ‘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수장고의 문을 열며 말했다. 차가운 공기가 훅 쏟아졌다. 입김이 나는 걸 보니 영하 7도인 바깥과 기온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듯 했다. 그러나 추위에 놀라는 것도 잠시, 곧 수장고의 규모에 압도당했다. 길이가 50m, 폭이 20m쯤 되는 거대한 수장고가 복층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각 층에는 대형 부재를 가로 또는 세로로 수납한 대형 ‘랙(rack)’이 줄을 이었다. 일반적인 박물관 수장고를 10배 쯤 확대한 규모였다.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에는 이런 수장고가 두 개나 있다.

 

“여기 있는 것들은 숭례문 복원 때 사용되고 남은 부재들입니다. 경복궁 임시 부재 보관소에 있던 것들이죠.”

 

 

강 팀장은 10월 중순부터 이송을 시작했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불에 탄 부분이 떨어지지 않도록 특수 무진동 차량으로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수습한 부재는 목재가 1888점으로 가장 많았고, 기와류가 약 1000점, 못과 같은 철물류가 약 600점 등 총 3800여 점이다.

 

부재는 각각의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한 예로 수장고 한 쪽에는 미처 랙에 올리지 못한 ‘공포( 包)’가 있었는데 연결된 전체가 가로로 3m는 족히 돼보였다. 공포는 전통 목조건축물에서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지붕 위에서부터 대들보 아래까지 짧은 부재를 중첩해 놓은 구조물을 말한다. 화재 당시 지붕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것이 통째로 수습됐다. 가까이서 보니 바깥쪽보다 안쪽이 특히 검게 타 있었다. 불이 안쪽에서 붙기 시작했다는 가슴 아픈 흔적이다. 강 팀장은 “이렇게 지붕의 뒤쪽 구조나 치목(治木), 결구 기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고 담담하게 설명했다.

 

 

보존 과학, 습도 조절이 관건


“그런데 여긴 원래 이렇게 추운가요?”


화재 현장에서 수습한 기둥과 적심(지붕 속에 넣는 잔여 목부재), 도리, 서까래 등에 대한 설명을 15분쯤 들었을까. 펜을 쥔 손에 감각이 사라졌다. 손창일 부재조사연구팀 선임연구원은 “수장고의 1층과 2층이 이어져 있어 공기가 정체되지 않고 흐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는 팔만대장경을 보관 중인 해인사 장경판전 건물의 자연 환기 시스템을 본 땄다. 1층 바닥과 2층 천장에 개폐구를 둬 공기가 뜨거워지면 자동으로 천장으로 빠져나가게끔 수장고를 설계했다.

 

환기는 부재를 보관할 때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수분이 목재에 점착되고 마르는 과정에서 목재가 뒤틀리고, 균이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분은 철재의 부식을 빠르게 하기도 한다. 또 습한 환경에서는 보존처리가 완료된 부재의 접착제가 다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바람이 계속해서 불면 습도가 높아도 이슬점이 낮아지면서 수분이 잘 생기지 않는다.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에는 별도의 항온항습수장고도 있다. 이곳에는 기계식 환기 장치를 이용해 온도를 20도, 습도를 60%로 일정하게 유지한다. 손 선임연구원은 “종이로 된 도면이나 섬세한 조각, 동파나 도난 위험이 높은 부재는 항온항습실에 따로 보관한다”고 설명했다.

 

전통건축부재 보존센터에서 만난 연구원들. 보존 과학, 건축 수리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였다.

 

 

이날 기자가 본 부재들은 대부분 보강 처리와 훈증까지 마친 상태였다. 수장고로 이송된 부재는 가장 먼저 건식 세척 단계를 거친다. 가는 붓과 흡입기로 오래 된 부재의 먼지를 털어내는 작업이다. 부재의 보존을 집중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차현석 부재조사연구팀 연구원은 “숭례문 부재가 있었던 경복궁 일대가 송진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세척 작업이 중요하다”며 “송진은 나무를 썩게 만드는 세균의 먹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 필요한 경우 2차 처리를 한다. 철심을 박아 부러진 부재를 보강하거나, 목재의 탄 부분이 가루처럼 떨어지지 않도록 강화제를 뿌린다. 부식이 심한 철제 부재는 녹을 제거한다.

 

그리고는 훈증에 들어간다. 훈증은 벌레나 균이 부재를 상하게 하지 않도록, 또 다른 부재까지 오염시키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소독 과정이다.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는 벌레가 잘 살지 않지만 이것들이 낳은 알이 봄이 되면 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훈증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부재를 두꺼운 비닐로 밀봉하고 그 안에 소독 가스를 일정 농도로 유지하며 72시간 동안 둔다. 차 연구원은 “이때 공시충(시험용 곤충)으로 바구미를, 공시균(시험용 세균)으로 검은 곰팡이를 함께 넣는다”며 “여러 위치의 공시충과 공시균이 활성을 띠지 않아야 훈증이 제대로 된 것”이라고 말했다.

 

훈증을 마친 부재들은 최종적으로 조사 단계를 밟는다. 수종이 무엇인지, 연대가 언제인지, 단청이 있는지 없는지, 어떤 도구를 사용해서 제작한 부재인지, 손상 여부까지도 꼼꼼하게 살핀다. 정현민 부재조사연구팀 선임연구원은 세포벽을 빨갛게 염색한 목부재 조각을 현미경으로 보여주며 “해부학적 형태를 보면 수종을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다”며 “조선이 문호를 개방한 이후에 수입된 일본 목재를 가려내는 데도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조사를 마친 뒤에는 부재에 전자태그(RFID)를 달고 수장고에 배치한다. 부재 종류, 현황, 위치 등의 정보로 부재를 검색할 수 있는 셈이다. 문득 이곳이 거대한 도서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첫 부재 수장고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전통 건축 부재를 보존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 그나마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2012년 처음으로 계획된 것이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다 쓴 부재보다는 복원된 문화재에 더 큰 관심을 쏟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 팀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재료를 마감하는 법이나 건축 역사를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서는 분해된 부재를 두고두고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내용은 문화재를 겉으로만 봐서는 잘 알 수 없다. 문헌에도 수리했다는 기록만 있지, 얼마나 많은 부분이 교체됐고 어떻게 수리했는지는 상세하게 나와 있지 않다.

 

그는 “부재를 다루기 위한 전통 연장 기술도 사실상 맥이 끊겼다”며 “부재 연구를 통해 전통적인 도구들을 복원하고 사용법 시연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2018년에는 수장고를 직접 방문할 수 있는 체험 기회도 제공할 예정이다.

 

이날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보존된 부재는 건축물을 보수하는 과정에 실제로 재사용되기도 한다. 목조건축물은 보통 30~50년 주기로 수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만 보물급 이상 건축물의 해체수리 작업이 20건 가량 진행됐다. 숭례문을 복원할 때 사용한 새로운 부재들도 수십 년 뒤 보수가 필요한 시점이 올 것이다. 이때 보존처리를 한 옛부재가 다시 쓰일 수 있다. 부재의 이력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연구팀은 숭례문의 다음 순서로 최근 나주 불회사 대웅전(보물 제1310호)의 부재 보존 작업에 들어갔다. 2017년 11월 부재 운영위원회를 열고 수집할 부재를 선정했고, 12월 이곳 부재보존센터로 이관했다. 부재보존센터가 없었다면 방치됐거나 폐기됐을 부재들이다. 확실히 숭례문보다는 대중들의 관심이 적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확고했다. “서 있는 것이 국보면, 거기서 나온 부재도 국보 아니겠습니까. 저희는 국보를 보존합니다.”

2018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파주=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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