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콘 섬에 있는 맹그로브 숲의 모습. 이 섬에는 약 450ha의 맹그로브 숲이 있다.]



필리핀 보홀섬에서 북쪽으로 약 3~4km 떨어진 작은 섬마을 바나콘(Banacon). 올해 1월 28일, 서울대 산림과학부와 글로벌환경경영학전공 학생 15명과 함께 열대림 보전 연구를 위해 배를 타고 섬에 도착했을 때 고사리 같은 아이들이 밝게 웃으며 뛰어나와 우리를 반겼다. 마을 주민들은 피부색과 생김새가 전혀 다른 우리를 가까운 이웃처럼 대했다. 저녁이 되자 게와 새우로 만든 요리를 만들어줬다. 가난한 마을이지만 끈끈한 사람 냄새에 풍요로움이 느껴졌다.

인구 2000명, 면적 11ha(1ha=10000m2)에 해당하는 작은 섬마을 사람들의 주된 생업은 수산업. 어패류를 잡아먹고 해초를 양식해 가공업자에게 팔기도 한다. 섬에는 식수가 없어 외지에서 사와야 한다. 하루하루가 어렵고 힘들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도 희망은 있다. 바로 섬을 둘러싸고 있는 ‘맹그로브 숲’이다.
 

열대의 늪이나 해안가에는 물속에서 자라는 나무가 있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길쭉하게 생긴 ‘맹그로브’다. 맹그로브가 물속에서 숲을 이루면 바다 속에 그늘이 생겨 어패류의 휴식처가 생긴다. 알을 낳을 수 있는 산란지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무에서 떨어진 잎이 썩으면 영양물질이 풍부해져 플랑크톤과 새우 등 어패류의 먹이가 되는 작은 생물도 풍성해진다. 그러다 보니 맹그로브는 어부를 부양하는 ‘어부림(魚付林)’으로 불리기도 한다.



[바나콘 섬에 살고 있는 아이들.]



[바나콘 섬 주민들과 전통춤을 추고 있는 서울대 학생들.]



섬사람들은 맹그로브를 목재나 땔감으로도 쓴다. 맹그로브 숲 하나로 삶의 많은 부분을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무분별한 개발로 맹그로브 숲이 하나 둘씩 파괴되고 있다. 필리핀도 마찬가지다. 약 50만ha에 달했던 필리핀의 맹그로브 숲은 이제는 15만ha만 남았다.


맹그로브 숲의 파괴는 어민들의 생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필리핀 정부는 맹그로브 숲의 벌채를 일절 금지하는 ‘금벌령’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맹그로브 숲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학생들과 필리핀 현지를 방문해 알아낸 것은 맹그로브 숲의 유무에 따라 섬마을 사람들의 어획고에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바나콘 섬의 맹그로브 숲 면적은 약 450ha으로 넓은 대륙붕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윤여창다. 이 곳 주민들의 어획량은 맹그로브 숲이 없는 보홀섬의 다른 마을보다 최고 7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막연히 ‘맹그로브 숲이 어획량을 늘린다’고만 여겼던 사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이다.

바나콘 섬 아이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지 함께 간 학생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하나였다. 간조로 바닷물이 빠졌을 때 나타나는 갯벌 1775ha에 더 많은 맹그로브 숲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마을 대표에게 섬 주변 해안습지에 맹그로브 숲을 조성 해 보자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500ha의 면적에 맹그로브 숲 조성이 가능하며 마을 주민들도 힘껏 돕겠다고 말했다.

맹그로브는 단순히 섬마을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땔감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지난 2009년부터 2년 동안 한국과학기술단체연합회, 산림청의 도움으로 필리핀국립대 레니 카마초(Leni Camacho) 교수와 함께 맹그로브 숲의 탄소 흡수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맹그로브 숲이 갖고 있는 또 다른 장점을 찾기 위한 연구였다. 심은 지 15년, 20년, 40년 된 맹그로브의 크기와 무게를 재고 함유하고 있는 탄소의 양을 측정했다. 연구결과는 놀라웠다. 1ha의 맹그로브 숲이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연간 35t이나 흡수하여 저장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부지역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연간 흡수, 저장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1ha당 약 7t. 맹그로브가 소나무보다 5배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지구 온난화를 막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바나콘 섬을 떠나면서 작은 섬마을 사람들을 위해 맹그로브 숲을 심고 가꾸는 일을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 지속가능한 그린캠퍼스 추진 방안으로 맹그로브 숲 조성 사업을 제안했다. 500ha의 맹그로브 숲을 조성한다는 사업계획서를 냈으며 3월 14일에는 학생들과 함께 ‘녹색지구봉사대’를 발족시켰다.

내년부터 바나콘 섬에 100ha씩 5년간, 또는 50ha씩 10년간 총 500ha의 맹그로브 숲을 조성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시행한 해외 맹그로브 숲 조성사업 중 최대 규모다. 매년 최소 1만5000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에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득도 매년 6만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해외에 숲 조성사업을 하면 그 숲이 흡수한 온실가스만큼 탄소배출권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맹그로브는 단순히 어획량을 늘리고 마을 주민이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재료’가 아니다. 우리가 심을 맹그로브가 맑게 웃으며 우리를 반겼던 한없이 착한 아이들의 꿈을 실현시켜 주고 더 나은 지구를 물려줄 수 있는 ‘희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원호섭 | 글 윤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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