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째 ‘행복’을 연구하고 있는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소냐 류보머스키 교수는 행복을 ‘추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창조’하거나 ‘만들어가야’하는 그 무엇이라고 주장한다.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들어주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인 ‘긍정심리학’은 의지만 확고하면 누구나 행복을 실현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어머니, 나 저 무지개 잡으러 가겠어요.”
어머니는 일감을 놓았다. 그리고 뚫어지게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
“얘야, 무지개는 못 잡는단다. 멀리 하늘 끝닿은 데 있어서 도저히 잡지 못한단다.”
“아니어요, 저 벌 건너 숲 위에 걸려 있는데….”
- 김동인, ‘무지개’중에서
▒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김동인의 단편소설 ‘무지개’. 이 소설을 읽으며 ‘그래, 행복은 우리 곁에 있는 거야!’라고 깨닫는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소설속의 소년처럼 무지개를 찾아 헤맨다. 왜 그럴까?
사람은 타고난 낙관론자
미국 뉴욕대 심리학과 엘리자베스 펠프스 교수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람은 대책 없는 낙관론자인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근거도 없이 자신은 남보다 오래 살 것 같거나 더 건강하다고 믿고 있다. 매번 실망하면서도 로또 복권 숫자를 정하느라 고민하고, 대박을 꿈꾸며 빚을 내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사람이 미래의 목표를 향해 행동할 때 긍정적인 기대가 동기부여 됨으로써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됐고 결국은 생존에 유리했다고 설명한다. 짝짓기 상대를 찾아 구애하다 보면 열에 한 번은 성공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안될 텐데…’라는 생각에 시도조차 안 한다면 이 사람의 유전자는 대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펠프스 교수팀은 긍정적인 미래를 생각할 때 편도체와 전두대상피질이 활성화된다고 과학저널 ‘네이처’2007년 11월 1일자 에 보고했다. 편도체는 감정적인 기억을 형성하고 저장하는데 관여하는 부분이고 전두대상피질은 감정적 반응을 조절하는 영역이다.
연구자들은 자원자 15명을 대상으로 미래의 긍정적인 사건과 부정적인 사건을 상상했을 때 나타나는 뇌의 변화를 관찰했다. 즉 ‘상을 받게 된다’또는 ‘연인과 헤어질 예정이다’같은 상황을 설정했다.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의 활동을 분석한 결과 긍정적인 상황을 생각했을 때 편도체와 전두대상피질에서 혈류량이 많았다. 이곳의 신경회로가 활발히 작동한다는 의미다. 우울한 상황일 때는 두 부분 모두 활동이 떨어졌다. 반면 과거를 회상하는 상황에서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두 활동적이었다.
펠프스 교수는 “우울증인 사람은 소극적이고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며 “이들은 전두대상피질과 편도체를 잇는 회로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낙관론자가 곧 행복한 사람이란 뜻은 아니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대니얼 길버트 교수는 “사람들은 미래를 상상할 때, 자신이 덤벙거리며 실패하는 것보다 성취하고 성공하는 장면을 더 많이 상상한다”며 “문제는 객관성이 결핍된 상황판단을 따른 행동이 많은 경우 기대에 못 미치고 때로는 불행한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이 중요하지 자신의 운반체, 즉 사람의 ‘행복’에는 무심한 것일까.
유전자 운반체가 아닌 ‘만물의 영장’관점에서 ‘행복의 추구’는 정말 부질없는 짓일까?
행복, 유전 영향 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얼마 전까지 많은 과학자들이 밝힌 입장이다. 이런 근거로 든 것이 개인의 행복에 미치는 요소들에 대한 분석 결과다. 많은 연구를 종합해보면 유전적 영향이 대략 50%를 차지한다. 똑같은 상황에서 늘 싱글벙글인 사람이 있는 반면 뚱해서 주위 사람까지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다.
미국 위스콘신대 심리학과 리처드 데이빗슨 교수팀은 사람이 행복을 느낄 때 뇌의 대뇌피질 중 좌측 앞부분, 즉 왼쪽 전두엽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 부분의 활성화는 개인 기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평소 많이 우는 아이는 이 부분의 활동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4개월 된 아기들의 외향성을 조사한 뒤 11살이 됐을 때 다시 조사한 결과 그 경향이 유지됐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편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에 대한 연구도 개인의 행복감에 기질, 즉 유전의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지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환경적 요인이 10% 정도를 차지한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 상태, 건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다수가 행복과 동일시하며 ‘현재를 희생하면서까지’추구하는 가치들이다. 90%라면 몰라도 10%는 터무니없이 과소평가된 수치가 아닐까.
커피 하우스와 재래식 화장실을 떠올려보자. 코의 입장에서 커피향이 흐르는 공간과 구린내가 진동하는 변소는 극과 극이다. 그러나 한 5분 앉아있다 보면 커피향도 구린내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같은 자극이 지속되면서 코가 적응해버린 것이다. 이런 현상은 행복을 느끼는데도 적용되는데 ‘쾌락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고 부른다.
로또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나 사고로 몸이 마비가 된 사람들은 처음에는 극단적으로 행복해하거나 불행해하지만 1년 후에 조사해보면 사건 전에 그 사람이 느꼈던 행복도로 다시 돌아와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행복의 ‘요요현상’인 셈이다.
나머지 40% 정도는 ‘설명이 어려운 부분’으로 데이터를 얻을 때 발생하는 일종의 오류, 즉 ‘노이즈’(noise)로 생각됐다. 이런 분석을 종합해보면 결국 자신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최근 심리학자들은 노이즈로 취급했던 영역에 주목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할지 몰라서 그런 결론을 내렸다는 것. 그런데 알고 보니 개인의 ‘의도적인 활동’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즉 행복의 40%는 우리가 마음먹기 따라 더 나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돈 많고 쾌활한 성격인 사람이라도 언 땅에 삽질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을 하며 보낸다면 미술전 대상을 꿈꾸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가난하고 소심한 화가보다 불행할 수 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행복을 증대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의도적인 활동’을 찾고 있다.
싫증 없는 삶을 위해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라도, 매일같이 쳐다보면 지겹고 싫증나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여자도 불안할 것이다. 따로 살면서 가끔씩 만나 같이 지내 면, 세월이 흘러도 관계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화려한 궁궐생활을 버리고 출가한 와카(和歌)의 대가 요시다 켄코가 남긴 수필집 ‘도연초’(徒然草)의 한 구절이다. 최근 행복에 대한 연구는 700년 전 인물인 켄코가 행복을 유지하는 비밀 가운데 하나를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건이 ‘쾌락적응’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반복하라는 것이다.
하버드대 길버트 교수는 “싫증이 나지 않으려면 다양성과 시간을 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연극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한두 달에 한 번 공연을 볼 수 있다면 매번 연극을 보는 게 낫지만 매주 볼 수 있다면 중간에 콘서트나 뮤지컬을 섞어 보는 게 행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행복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모처럼 맘먹고 책을 들었는데 부엌에서 엄마가 “게임 좀 그만하고 공부 좀 해라!”고 얘기하면 보던 책도 덮고 컴퓨터 전원 스위치를 켜는 것은 반항심 때문만은 아니다.
요양원에서 행해진 실험결과는 의지, 즉 통제력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화초를 주면서 한 집단에는 노인 스스로 돌보게 했고 다른 집단에는 직원이 돌볼 거라고 알려줬다. 6개월 뒤 조사한 결과권한을 부여받은 집단의 사망률은 15%인 반면 방관자 집단은 30%나 됐다. “어르신들은 그냥 계세요. 저희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요.”웃사람을 공경하는 우리사회의 관습이 오히려 노인들을 불행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젊은이들과 정기적인 대화의 시간을 갖게 할 때도 약속시간을 노인 스스로 결정하게 한 집단은 주어진 시간에 만나는 집단보다 행복도가 높았다. 그러나 이 실험이 끝나고 수개월 뒤 행한 조사에서는 오히려 앞쪽 집단의 사망률이 더 높았다. 통제력을 빼앗긴 상실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줬다 뺐을 거면’안주느니만 못한 셈이다.
몸이 따르지 않으면 행복도 없다
“당신이 미소 지으면 세상도 당신에게 미소를 보내요.”
주위를 보면 유난히 웃음을 잘 짓는 사람이 있다. 이런 친구와는 인사만 나누고 지나쳐도 한결 기분이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웃는 얼굴을 대하고 자신도 미소 지었음은 물론이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감정과 정서가 표정이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한 그룹은 볼펜을 이로 물고 있는 상태에서, 나머지 한 그룹은 볼펜을 입술로 잡고 있는 상태에서 행복도를 조사해봤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볼펜을 어디에 두든가 행복과는 무관해 보인다. 그러나 결과는 볼펜을 이로 물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더 행복하다 평가했다. 왜 그럴까. 볼펜을 한 번 물어봐라. 얼굴 표정이 웃을 때와 비슷해진다. 그러나 입술로 잡고 있으면 삐친 것처럼 퉁명스런 표정이 된다.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뒤 행복한 상황을 상상해봐라. 잘 안될 것이다.
표정은 정보에 대한 반응속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어진 문장이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부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판단하는 실험에서 볼펜을 이로 문 사람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더 빨리 이해했고 입술로 잡고 있는 사람은 부정적인 메시지를 금방 알아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얼굴 표정 뿐 아니라 몸동작도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 좋아하는 대상을 팔로 끌어안아 당기고 싫어하는 대상은 밀어내는 게 인지상정이다. 참가자들은 모니터에서 이미지가 나타나면 레버를 움직여야 한다. 한 그룹은 당기는 레버이고 다른 그룹은 미는 레버다. 그런데 당기는 레버 그룹은 긍정적인 이미지에 빨리 반응한 반면 미는 레버 그룹은 부정적인 이미지에 빨리 반응했다.
한국인이 행복도 낮은 이유
최근 ‘미녀들의 수다’라는 토크쇼가 인기다. 국내 대학이나 기업에 다니는 외국인들이 나와 우리말로 이야기를 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초보에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능청맞게 구사하는 반(半)한국인도 있다. 이 프로가 시청률이 높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지나치는 한국의 문화를 날카롭게 관찰하고 평가하는 외국인의 시각이 신선하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들은 정이 많고 다 좋은데 결혼은 망설여져요. 회사 다니면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니 얼굴보기도 힘들잖아요.”
“혼자 밥 먹고 있는데 친구들이 와서 ‘왜 혼자 먹고 있냐?’며 안됐다는 표정이에요. 그런 일이 몇 번 있고 나니까 저도 혼자 밥 먹기가 싫어지던데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기에는 뭔가 공통점이 있다. 주로 서구권에서 온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자신보다는 남을 의식하는 삶을 사는 경향이 크다’는 사실이다.
심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행복도를 조사하면 늘 서구사회보다 동아시아쪽이 낮은 점수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원인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이 시작된 건 불과 10년 전부터다. 이런 차이의 원인을 한마디로 말하면 동아시아의 집단주의와 서구의 개인주의라는 문화의 차이 때문이다.
먼저 행복 자체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서구인들은 자신감, 자존감 등 개인의 상태에 큰 비중을 두는 반면 동아시아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일을 즐기는 정도 차이가 크다. 또 서구인은 자신을 만족시키는 걸 높이 평가하는 반면 동아시아인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는 것에 비중을 둔다.
이렇게 행복에 대한 관점이 약간 다름에도 결국에는 개인주의 사회가 행복도가 높았다. 집단주의는 구조적으로 개인의 행복을 억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집단주의의 궁극적 이상은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것. 개인은 자신을 희생하는 대가로 사회로부터 보상을 받는다. 이런 희생을 거부하면 결국 사회에서 도태되기도 한다.
“놀라운 사실은 집단주의 사회에서도 상대적으로 행복도가 높은 사람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문화의 틀에 잘 적응한 사람이 행복할 거라는 기존의 생각이 틀린 거지요.”
개인의 행복과 문화의 관계를 밝히는 연구를 주도해오고 있는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의 설명이다. 결국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개인주의 성향과 사회적 요구 사이에 줄타기를 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쩌다 한두 번은 눈을 질끈 감고 칼퇴근을 할 수 있지만 남들 다 야근하는데 매일 그랬다가는 직장내 ‘왕따’가 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게 정확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결국 행복에 이르는 모든 결정과 판단에 영향을 미칩니다.”
행복한 미래와 동의어인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을 전전하고 어른 앞에서는 웃음을 참아야 예의바르다고 칭찬을 듣는 사회.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의 상당 부분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환상’이 아닐까.
비교는 불행을 낳는다
자기가 얻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남을 부러워하지도 말라
남을 부러워하는 수행자는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다
불교 초기 경전인 ‘법구경’의 한 구절이다. 수행자조차 동요시킬 정도로 비교는 사람의 행복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일까.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엄친아’, 즉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최근 독일의 경제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은 비교가 뇌의 ‘보상센터’의 활성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을 밝혀 지난해 ‘사이언스’11월 23일자에 발표했다. 뇌의 측면과 중앙에 분포하는 보상센터는 좋은 경험을 계속 갈망하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영역. 기분을 좋게 하는 화학물질인 도파민도 분비된다.
연구자들은 실험참가자들에게 퀴즈를 내 맞추면 상금을 줬다. 이때 다른 참가자에 대한 보상 상황을 알 수 있게 했다. 둘 다 못 맞춘 경우, 나만 맞춘 경우, 둘 다 맞춘 경우, 나만 틀린 경우 등 네 가지 상황이 있다. 한편 상금에 차이를 둬 30유로, 60유로, 120유로를 지급했다.
테스트 결과 보상회로가 가장 활발한 경우는 본인만 맞춘 경우. 보상액이 큰 경우가 약간 더 활발했다. 둘 다 맞춘 경우는 상대적인 액수에 따라 보상센터의 활동도가 차이를 보였다. 즉 내가 60유로를 받을 때 상대방이 30유로일 경우 활발하고 같은 60유로일 때는 약간 떨어졌다. 상대가 120유로일 때는 오히려 보상센터의 활동이 떨어졌다.
한편 나만 30유로를 받을 때 활동도는, 둘 다 받지만 절대 금액의 차이가 같은 경우(나 60, 상대방 30)보다 훨씬 높았다. 놀라운 사실은 이 때 활동도가 둘 다 받지만 절대 금액의 차이는 더 클 때(나 120, 상대방 60) 보다도 높았다는 것. 연구를 이끈 독일 본 대학 경제학과 아르민 폴크 교수는 “사회적 비교가 개인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지 여부는 경제이론을 예측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절대적인 소득액이 개인의 행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전제하는 전통적인 경제이론은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버드대 대니얼 길버트 교수는 “사람들의 행복이 남과 비교하는데서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오늘날 대중매체는 예외적으로 부유하거나 성공한, 또는 아름답거나 권력을 지닌 사람들을 집중조명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흔한 것으로 착각해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해결책은 가족,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TV시청을 줄이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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