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어느 밤, 멕시코 캘리포니아반도 산페드로마티르 산에서 강한 빛줄기가 힘차게 하늘로 뻗는다. 한국의 주도로 건설된 구경 6.5m짜리 대형망원경에서 발사된 레이저다. 레이저는 고도 70㎞ 하늘에 ‘인공별’을 만든다.
한국 천문학자들은 이 인공별을 관측해 대기의 요동을 파악하고 망원경의 거울 표면을 순간순간 변형시켜 마치 대기가 없는 우주에서 천체를 관측하는 효과를 낸다. 적응광학이라고 알려진 레이저무기나 핵융합에 필수적인 최신기술이다. 한국 대형망원경이 우주의 신비를 벗기는 데뿐 아니라 첨단기술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된 셈이다.
7년 후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 얘기는 현재 가장 큰 광학 망원경이 보현산천문대의 구경 1.8m짜리 망원경인 우리나라 천문학자들의 한결 같은 소망이다. 망원경은 단순히 별만 보는 데 쓰이지 않는다. 망원경이 설치된 천문대는 첨단기술 공장이다.
천문대에 고성능 디지털 카메라 있다
보현산천문대의 천문학자들은 망원경, CCD 카메라 등 첨단장비를 다루고 고치는 ‘맥가이버’들이다. 구경 1.8m 망원경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장비이다. 프랑스 공장에서 조립해 시험 가동했을 때 아무런 이상이 없던 망원경이 보현산천문대에 설치된 후부터 문제가 생겼다. 망원경의 전자제어부가 습기에 약해 축축한 날이면 오작동을 했던 것. 제작사 엔지니어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자 우리 천문학자들이 직접 나섰다. 배선을 하나하나씩 바꿔가며 기존 전자부를 완전히 뜯어 고쳤다. 1년 반 동안의 고생 끝에 망원경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망원경의 거울은 열팽창이 작은 특수유리로 만들어진다. 빛을 모을 수 있도록 오목하게 제작되는데 그 표면이 거칠거나 정해진 곡면을 따르지 않으면 별빛이 한군데로 모이지 않는다. 지름 1.8m 거울면은 어디서나 수십 nm(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 오차 범위 내로 깎고 다듬어야 한다. 이는 서울-부산 간의 400㎞ 도로를 1㎝의 요철도 없게 만든 정도에 해당한다. 냉전시대에는 이렇게 정밀한 거울을 가공하고 측정할 수 있는 장비들은 금수품목이라 함부로 구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에서도 지름 1m 정도의 망원경 거울을 깎고 측정할 수 있다.
끝으로 유리 표면에 얇은 알루미늄 막을 입히면 망원경 거울이 된다. 거울은 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지만 봄에 황사와 꽃가루가 날리는 보현산에서는1년 만 지나면 새로 코팅을 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국내에는 구경 1.8m의 거울을 코팅할 업체가 없었다. 보현산의 맥가이버들은 관련 업체와 외국 천문대도 방문하며 연구한 끝에 독자적인 알루미늄 코팅장비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망원경에 장착되는 CCD 카메라는 고성능 디지털 카메라다. 일반적인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화소(pixel) 수가 많고 미세한 별빛을 잡기 위해 액체질소로 영하 100℃로 냉각한다는 사실이 다른 점이다. 최근 우리 천문학자들은 빛의 세기뿐 아니라 파장까지 한번에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초전도 소자를 이용한 카메라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주의 베일 95% 벗긴다
1990년대 선진국들은 앞 다퉈 구경 8m급 대형망원경을 건설했다. 지금은 남반구와 북반구에 모두 15개 정도의 대형망원경이 존재한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에서는 구경이 30m 정도나 되는 초대형망원경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세계 수준의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대형망원경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천문연구원은 거의 1년 내내 하늘이 청명한 멕시코 산페드로마티르 산 위에 6.5m 대형망원경을 설치하려고 노력 중이다. 1호기는 시야가 약 0.5° 정도로 좁지만 다양한 관측장비를 갖추게 되며, 특히 적외선으로 천체의 세밀한 부분까지 연구할 수 있다. 2호기는 지름 1.5° 시야에 들어오는 약 5000개 천체들의 스펙트럼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지구상에 건설된 어떤 망원경보다도 효율적인 장비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쌍둥이 대형망원경이 완성되면 별, 행성, 은하, 우주 탄생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 별과 그 별 둘레를 도는 행성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특별히 1호기에는 적응광학이 적용된 적외선장비가 탑재될 계획이다. 별들은 은하를 이루고, 은하도 모여 우주의 거대구조를 형성한다. 현대우주론의 최대의 수수께끼는 바로 우주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가 하는 문제다. 우리 우주를 이루고 있는 95%의 물질과 에너지는 그 정체가 베일에 가려 있다. 2호기로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은하지도보다 훨씬 큰 은하지도를 만들게 된다. 그 지도를 분석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알아낼 계획이다.
천문학 동원해 망막 정밀 촬영
지름 6m짜리 대형거울은 두께가 1m는 돼야 중력 때문에 휘고 뒤틀리는 것을 견딜 수 있다. 문제는 이 거울의 무게가 약 140t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무거운 거울을 지탱하는 것은 기본이고 순간순간 빠르게 움직여 천체를 추적해야 하니 큰 문제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벌집 구조다. 거울의 뒷면을 마치 벌집처럼 파내 전체 무게는 가볍게 하고 구조의 견고성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벌집구조를 사용하더라도 거울이 위치에 따라 중력에 의해 조금씩 뒤틀리고 그에 따라 천체의 영상도 찌그러진다. 현재 대형망원경의 거울 뒤에 추동기(actuator)라는 작은 장치들이 달린 이유다. 이들 장치를 이용해 비틀어진 만큼 거울을 밀어주는 기술을 '능동광학'이라고 한다. 또 거울이 열을 받으면 팽창하고 식으면 수축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 벌집 구조 속에는 온도가 일정한 공기를 드나들게 한다.
최근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대기를 통해 들어온 별빛이 반짝이는 현상(따뜻한 봄날 아지랑이와 같은 현상)을 순간순간 보정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적응광학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원래 적의 항공기나 첩보 위성을 탐지하기 위해 개발된 군사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일반에 공개됐는데 천문학에서 적극적으로 적용된 것이다.
천문학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적응광학 기술은 밤하늘에서 관측대상 옆에 있는 비교적 밝은 별을 동시에 관측하는 방식이었다. 그 별이 대기 때문에 미세하게 움직이는 정도를 탐지해 보정함으로써 관측대상의 영상을 선명하게 얻는 것이다.
이보다 더 진보한 기술은 레이저를 쏴서 관측대상 옆에 ‘인공별’을 만든 다음 적응광학 기법을 쓰는 방법이다. 고도 70㎞ 상공에는 별똥별이 흘린 나트륨 원자가 떠있다. 망원경에서 이 고도를 향해 특별한 파장의 레이저를 쏴주면, 그 레이저가 70㎞ 상공의 나트륨 원자와 반응해 마치 별처럼 보인다. 이 인공별의 움직임을 순간순간 탐지해 대기의 일렁거림을 보정함으로써 선명한 천체의 영상을 얻는 것이다.
대기의 요동에 따라 별빛의 경로를 추적해 대기 효과를 보정할 수 있다면 마치 허블우주망원경이 우주 공간에서 천체를 관측하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그것도 허블우주망원경보다 10배나 싼 가격으로 말이다. 더군다나 적응광학 기술은 최첨단 레이저 무기, 차세대 에너지원인 수소 핵융합 등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수소기체를 아주 작은 공간에 모은 뒤 사방에서 강력한 레이저로 쏘면 수소가 순간적으로 고온 고압 상태가 돼 핵융합이 일어날 수 있다. 아지랑이 속에서 레이저를 정확히 쏘려면 적응광학 기술이 동원돼야 한다.
또 적응광학 기술은 빛을 모아 무선광통신을 하거나 유체 속에서 세밀하게 초점을 맞춰야 하는 수중 촬영이나 안과 수술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실제 몇몇 실험실에서는 사람의 망막을 정밀 촬영하기 위해 이 기술을 동원하고 있다.대형 망원경을 개발하면서 미래 산업의 동력이 되는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망원경 거울을 제작하기 위해 먼저 특수한 유리 덩어리를 벌집구조 거푸집에 놓고 마치 도자기를 굽듯이 1160℃로 구워낸 다음 서서히 식히고 거푸집을 깨끗하게 제거한다. 몇 달에 걸쳐 깎고 다듬기를 100번 가량 반복하면서 울퉁불퉁한 정도가 20nm이하가 되도록 표면을 매끄럽게 만든다. 거울 뒷면에는 추동기, 송풍 장치 등을 장착한다. 이 모든 과정에 약 1년 반이 걸린다.
한국 대형망원경 계획의 미국 쪽 참가자인 애리조나대 연구진은 대형거울과 적응광학 장치를 개발하는 데 세계적 기술을 갖고 있다. 대형망원경을 개발하면서 이들과 협력해 고급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거대쇳덩이를 0.1μm로 움직여야
한국 대형망원경의 몸체에도 매우 정밀한 대형기계산업의 진수가 모여 있다. 대형망원경을 움직여 원하는 천체를 정확히 바라보게 만들기 위해서는 반지름 4m의 쇳덩이로된몸통을 90°회전하는데 2분간 10μm(마이크로미터, 1μm=100만분의1m)이내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또 천체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망원경 몸통을 0.1μm의 정밀도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이같은 대형기계의 초정밀 구동기술은 산업기술로 파급되는 효과도 매우 클 것이다. 예를 들어 정밀작업을 해야 하는 로봇 중장비에 활용할 수 있다.
일본이 미국 하와이 마우나케아에 건설한 스바루 천문대는 그들의 힘을 보여준다. 구경 8.2m의 대형망원경이 설치된 이 천문대에는 거의 날마다 낮에 일본인들이 방문한다. 천문대의 관측실 천장에는 일본 각지의 어린이들이 날씨가 맑기를 바라는 뜻으로 보낸 하얀 인형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일본 국민은 스바루 망원경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듯하다.
우리의 어린 세대들에게도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한국 대형망원경이 필요하다. 이 망원경은 차세대를 위한 망원경이다. 후학들이 창의력을 발휘해 이 망원경 1호기에 다양한 관측장비를 장착할 수 있다. 또 5000개의 천체를 한꺼번에 관측할 수 있는 2호기는 효율이 뛰어나므로 인류의 우주관을 변화시킬 훌륭한 발견을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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