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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 기동대 vs 매트릭스

생명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표

최근 탄탄한 SF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일본의 애니메이션‘공각 기동대’가 국내에 개봉됐다. 공각기동대는 이후 등장한 수많은 사이버펑크 영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 중 한 작품인 영화‘매트릭스’와 공각기동대의 면면을 살펴보자.

 

공각기동대 vs 매트릭스


얼마 전 일본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가 국내에 개봉됐다. 공각기동대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가 아니지만, 웬만한 SF 모임에서 공각기동대를 모른다고 하면 한순간에 ‘왕따’를 당할 수 있다. 1995년 일본에서 개봉된 공각기동대는 SF 팬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았고 수많은 마니아를 생산해냈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공각기동대가 누리는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 정도의 신도들을 거느리고 있는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나 ‘X-파일’ 정도라고나 할까. 또한 공각기동대는 ‘제 5원소’나 ‘매트릭스’ 등의 사이버펑크(컴퓨터 등 정보사회가 지배하는 환경(사이버)을 배경으로 현세적이고 반문화적인 내용(펑크)을 담은 이야기) 영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러나 매스컴의 관심에 비해 공각기동대의 흥행 성적은 시원찮았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애니메이션을 애들 만화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일까.

하지만 몇해 전 흥행했던 영화 ‘매트릭스’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트릭스를 얘기할 때마다 “정말 끝내준다!”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몇몇 SF 전문가들은 매트릭스를 ‘여기저기서 베껴 짜깁기한 3류 영화’라고 평한다. 그렇다면 그런 영화가 걸작 SF 영화로 등극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주윤발을 카피했다는 키아누 리부스의 쌍권총과 바바리 코트가 홍콩 느와르 장르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일까. 아니면 기관총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엑스트라들과 헬기와 충돌해 부서지는 건물의 파편이 미국식 액션 스팩타클을 지향하는 우리 관객들의 입맛에 맞았던 것일까. 모르겠다. 나는 영화 평론가가 아니니까.


더 젊고 강해지고픈 인간의 욕망

필자의 직업 탓인지 매트릭스를 돌려보는 내내 온라인 게임을 떠올렸다. 거대한 서버에 접속해 있는 수천명의 플레이어들. 5년 전 첫선을 보인 ‘바람의 나라’의 플레이어는 2D 환경에서 간단한 이동과 공격 등의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개발되고 있는 온라인 게임의 세계에서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중력의 법칙과 가속도, 관성 등 물리학의 법칙들이 적용되고 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 속의 세계가 현실과 비슷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의 플레이어들은 온라인 게임 속의 캐릭터를 자신과 일체화시키는데 익숙하다. 그들은 자신의 캐릭터에게 옷을 사 입히고 무기를 들려주는데 수백만원 이상을 소비하기도 한다.

공각기동대에 등장하는 쿠사나기 소령과 같은 사이보그의 탄생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신문을 뒤적거리면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전자눈이나 사고로 다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한 인공다리에 관한 기사를 며칠에 한번씩 접할 수 있다. 이런 인공장기의 개발이 장애인만의 희소식이 될 수 있을까. 화상 환자를 위해 개발된 피부조직 이식은 성형수술에 더욱 많이 사용되고 있고, 눈 근육 경련 치료제로 사용되던 보톡스는 주름살 제거제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공장기 역시 젊어지고 강해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공각기동대와 매트릭스의 스토리 전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주인공의 ‘자기 정체성 찾기’다. 매트릭스부터 뒤집어보자. 네오는 낮에는 대기업의 프로그래머인 토머스, 밤에는 뒷골목의 헤커인 네오라는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정체성 찾기 게임의 주인공으로 제격인 캐릭터다.

어느날 네오를 찾아온 모피스는 ‘네가 우리의 구원자’라는 황당한 말을 꺼내며 매트릭스의 실체를 보여준다. 이때부터 네오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등을 떠밀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선다. 예수가 자신의 정체가 신의 아들인 동시에 신이라는 확신을 갖고 자신의 추종자들을 이끈데 반해 네오는 구원자를 만들려는 추종자들의 압력에 의해 자신의 정체를 증명해야 하는 궁지에 몰린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구원자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성경의 가장 큰 사건은 예수의 부활이다. 종교는 살아서는 실체를 느낄 수 없는 사후의 세계를 다룬다. 그래서 믿음을 최고의 미덕으로 꼽는다. 그러나 아무리 열렬한 신도라도 가끔씩은 ‘죽은 다음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갖게 된다. 예수는 부활을 통해 보여주지 않는다는 종교의 대전제를 깨뜨리고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천국의 실체를 ‘확신’할 수 있게 해줬다. 그래서 예수는 ‘메시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네오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잘 싸우고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아다녀도 컴퓨터 요원의 총에 뒤통수를 맞아 죽을 가능성이 있다면 네오는 추종자들이 지켜야 할 짐밖에 될 수 없다. 그가 증명해야 할 것은 죽음 또는 매트릭스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 즉 부활이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 네오는 구원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매트릭스가 예수의 부활을 사이버펑크적인 시점으로 다뤘다면 공각기동대는 개인이 느끼는 존재에 대한 혼란을 철저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다룬다. 공각기동대의 쿠나사기 소령은 집요하리만치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반면 인터넷을 떠도는 프로그램인 인형사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무대포적인 논리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설명한다. 인형사에게서 쿠사나기 소령이 가졌던 혼란은 찾아볼 수 없다. 쿠사나기 소령에게 필요했던 것은 인형사가 갖고 있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인형사를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많은 SF 평론가들이 매트릭스를 공각기동대와 홍콩 영화 등을 이리저리 섞어 만든 3류 영화라 평하지만, SF에 별 관심이 없는 한 친구는 매트릭스를 통해 인간의 뇌가 컴퓨터와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기독교 신자인 친구는 매트릭스를 보고 나서야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고 했다. 매트릭스는 SF 평론가들의 말대로 사기에 불과한 것일까. 사실 매트릭스 만큼 영화가 갖고 있는 장르의 특성을 살려 ‘기존의 흔한 개념’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없었다.

공각기동대를 본 대부분의 관객들은 현기증을 느끼는 표정으로 한마디씩 한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제대로 이해는 못했지만 대단한 영화 같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런데 감독이 아무리 고차원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영화 속에 집어넣었다 해도 관객을 이해시키지 못했다면 실패한 영화가 아닐까.

게임을 제작할 때 지켜야 하는 가장 큰 원칙은 단지 플레이어들을 괴롭히기 위한 이유로 미로를 설치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게임은 즐기는 것이지, 플레이어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수단이 아니다. 어떤 게임 기획자는 다음과 같은 황당한 말을 한다.

“극히 일부의 천재적인 플레이어들만이 우리 게임의 엔딩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난해한 게임은 일부 마니아 플레이어의 자기과시 수단 이상이 될 수 없다. 만약 어떤 게임이 수십번씩 세이브와 로드를 반복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스테이지들로 이뤄져 있다면 그것은 엉터리 게임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평가받아야 할까.


인간과 기계의 만남
기계화된 육체 vs 인간 통제하는 기계

 

매트릭스에서 기계는 인간을 위해 세계를 창조했고, 현실을 움직이는 물리학 법칙 이 매트릭스에 적용됐다. 주인공 네오를 비롯한 매트릭스 내의 사람들은 매트릭스 를 현실로 인식한다.


▶▶▶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인 쿠사나기 소령은 뇌를 제외한 신체의 모든 부분이 기계로 이뤄진 사이보그다.

그는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민감한 감각과 뛰어난 운동 능력을 갖고 있다. 티타늄으로 만들어진 머리뼈는 철갑탄이 아니면 뚫을 수 없을 정도다. 기관총으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던 탱크에게 뚜껑을 뜯어버리겠다고 맨몸으로 덤비는 쿠사나기 소령의 모습을 보면 기계화된 육체에 대한 그의 자신감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쿠사나기 소령의 능력 중 필자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체내 플랜트’였다. 혈액 중의 알코올을 수십초 내로 분해할 수 있다니, 음주 운전이나 숙취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편리한 기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기계를 통한 편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좀더 빠른 이동을 보장해주는 자동차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자동차 한대를 유지하려면 휘발유 값에 보험과 세금, 그리고 정기적인 수리비까지,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자동차가 소비하는 돈이 자동차 주인의 식비를 훨씬 뛰어넘어버린다.

한편 매트릭스의 기계는 인간을 보조하는 역할을 뛰어넘어 인간을 통제한다. 기계는 인간을 위해 세계를 창조했고 현실을 움직이는 물리학의 모든 법칙들을 매트릭스에 적용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매트릭스를 현실로 인식하게 되고, 가상의 죽음을 신체적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어차피 우리가 인식하는 이 세계 역시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여진 신경 신호가 우리의 두뇌 안에 재해석돼 구현된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닐까.

간단한 비유를 해보자. 사방이 막힌 방에 내가 있다. 방안에 있는 한대의 컴퓨터가 바깥 세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다른 사람과의 대화 수단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누군가 모뎀의 선을 자르고 조작된 신호를 보낸다면 나는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매트릭스다.


게임의 방식
스타 크래프트 vs 리니지

 

공각기동대에서는 인형사의 정신에 잠수 하는‘다이브’를 할 수 있다.


▶▶▶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소령은 자신의 전뇌와 인형사의 전뇌를 케이블로 연결해 인형사의 정신에 ‘다이브’(상대방의 정신에 잠수한다는 뜻)한다. 쿠사나기 소령은 다이브를 통해 인형사와 대화를 나눴고,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공각기동대의 다이브는 국민 게임이 되어버린 스타 크래프트의 게임 방식과 똑같다.

스타 크래프트의 플레이어가 첫번째로 해야 하는 일은 인터넷에 접속한 뒤 내 컴퓨터 안에 방을 만드는 것이다. 방을 만들고 기다리면 내 컴퓨터에 나와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접속한다. 그들은 정찰을 통해 내 행동을 관찰하고 내가 생산한 유닛을 공격한다. 이런 게임을 네트워크 게임이라 부르는데, 요즘 판매되는 게임 중에선 네트워크 연결 기능이 없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네크워크 게임의 핵심은 ‘동기화’다. 내가 보는 것과 상대편이 보는 것이 정확히 같아야 한다는 점이다. 적 기지의 입구를 돌파한 나의 히드라 한부대가 상대방의 컴퓨터에서는 시즈 탱크의 포격에 전멸한 것으로 보인다면 게임 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공각기동대의 다이브 역시 네트워크로 연결된 두사람의 두뇌 사이에 동기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너와 하나가 되고 싶다’는 인형사의 메시지가 ‘너를 죽이고 싶어’로 잘못 전달됐다면 쿠사나기 소령은 인형사와의 접속을 끊어버렸을 것이다.

한편 매트릭스는 또다른 국민 게임인 ‘리니지’에 비유할 수 있다. 리니지의 세계는 플레이어들의 컴퓨터가 아닌 거대한 서버 속에 존재한다. 플레이어는 방을 만들어 다른 플레이어를 초대하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세계에 접속해 다른 플레이어들과 만남을 갖는다. 스타 크래프트에서 배틀 크루져가 야마토를 발사하면 두 플레이어의 컴퓨터는 야마토의 발사가 게임 속의 규칙과 맞는지 인증을 거친 후 발사에 관한 연산을 실행한다.

그러나 리니지에서는 플레이어가 칼을 한번 휘두르거나 마법을 사용할 때의 모든 연산을 게임 서버가 수행한다. 스타 크래프트의 배틀넷 서버가 컴퓨터 사이의 데이터 중계 기능을 하는데 비해, 리니지의 서버는 리니지 세계에서 이뤄지는 모든 계산을 처리해 수천명의 플레이어에게 결과만을 전송해준다.

컴퓨터가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플레이어가 ‘느낄 수 있도록’ 전송해준다는 매트릭스의 기본 원리와 똑같다. 그렇다면 게임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운 네오는 스피드 핵을 사용하는 플레이어일까.


기계가 생명을 얻기까지
프로그램의 인간화 vs 인간 사육


▶▶▶ 공각기동대와 매트릭스에는 모두 ‘생명을 얻은 기계’가 등장한다. 과연 기계가 인간처럼 사고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사고 능력을 갖고 있다 해서 기계를 생명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애석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것을 알 수 없다. 인형사의 말처럼 우리가 생명을 정의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의 가장 광범위한 정의는 자신과 똑같거나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내는 개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매트릭스와 인형사는 모두 생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본 조건을 충족한다.

공각기동대의 인형사는 국가 정보부가 적국의 경제를 조작하고 요인의 전뇌 해킹을 위해 만든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아마도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엿보는 과정에서 사람과 닮게 됐을 것이다. 자신의 자아를 ‘깨닫게’ 된 인형사는 자신을 지적인 생명체로 정의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요구한다.

그러나 공각기동대의 인형사는 오류 투성이인 프로그램이다. 인형사는 자신이 인터넷의 바다에서 탄생했다고 주장하지만, 프로그램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CPU와 램 등의 장치를 필요로 한다. 즉 인형사의 육체는 어딘가에서 자원을 빌려쓰고 있는 컴퓨터인 셈이다. 결국 착각에 빠진 프로그램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인간과 하나가 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매트릭스가 자신의 하드웨어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을 사육한다는 설정은 공각기동대보다 현실적이다. 매트릭스는 정신(가상의 세계)과 육체(인간의 생명으로 유지되는 자신의 현실)의 두부분 모두를 인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매트릭스는 인간을 정복하고도 인간에게 전원을 얻어 써야 하는 자신의 몸에서 ‘구역질 나는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 파괴한 태양계를 떠나 다른 태양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매트릭스가 다른 행성의 정착에 성공한다면, 아마도 스타 크래프트의 저그족처럼 생명이 하나의 여왕에 집중된 군집 생명체로 진화할 것이다. 매트릭스는 하나이지만 인간 배양기를 관리하는 로봇을 부리며 인간 사냥꾼 로봇을 조종한다. 이런 로봇들은 일개미처럼 생명력은 있지만 완벽한 생명의 개체가 될 수 없는 매트릭스의 부속품이다.

저글링 무리들 수가 아무리 많아도 ‘오버 마인드’가 부리는 하나의 소모품에 불과하듯, 군집 생명체는 우리의 생태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율적으로 돌아간다. 일개미와 같은 개체는 생태계 안에서 생존경쟁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생산에 쏟아부을 수 있다. 그러나 최대의 단점은 여왕이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장난다는 것이다. 그런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매트릭스는 개미들처럼 자신의 군집을 여러 곳에 퍼트려야 할 것이다.


영화 속의 오류
생명체 복제의 의미 vs 사람을 배터리로 사용

 

공각기동대에 인간과 기계의 만남을 통한 신인류 탄생의 가능성이 나타나 있다.


▶▶▶ SF나 판타지 영화의 이야기가 현실성을 얻기 위해서는 그럴 듯하게 설정된 세계와 그 세계가 왜 그 모양이 됐는지 설명해주는 과거가 필요하다. 스타워즈 시리즈인 ‘에피소드 1’에서 무역 연합이 나부 행성을 침략한 이유는 항성간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서였고 ‘반지의 제왕’의 호비트들이 위험 천만한 모험을 떠난 이유는 암흑의 군주 사우론이 인간과 요정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해주는 절대반지를 갖지 못하도록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워쇼스키 형제가 기계 안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을 그렸다면,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공각기동대에서 인간과 기계의 만남을 통한 신인류 탄생의 가능성을 그리고 있다. 모든 사건은 생명의 다양성을 얻으려는 ‘인형사’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욕망에서 비롯됐다.

“복제는 복제에 지나지 않는다. 겨우 한종류의 바이러스에 의해 전멸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고, 복제로는 개성과 다양성이 생기지 않는다.”

정말 그럴 듯한 대사다. 그러나 인형사의 주장은 틀렸다. 생명체가 다양성을 획득하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 바로 자신의 복사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복사해서 자신과 다른 개체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권의 책을 복사한 뜨끈뜨끈한 사본을 선풍기 바람에 날린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종이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주워 모아 제본을 하면 복사를 했으면서도 전혀 다른 책이 나온다. 물론 생명체가 복제를 통해 다양함을 얻는 방법은 이보다 훨씬 복잡한 규칙을 갖고 있다.

어쨌든 프로그램 역시 생명체처럼 복사를 통해 다양함을 얻을 수 있다. 컴퓨터의 메모리 속에 생명을 창조하려는 과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에 자신의 복제 과정에서 의도적인 변이를 일으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게다가 건방진 인형사는 인간의 DNA 역시 이진수 프로그램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이진수 코드 속에서 DNA와 같은 다양성을 획득할 수 없다고 결론짓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인형사의 존재 자체가 예측 불가능한 다양성의 결과라는 것이다.

한편 워쇼스키 형제의 상상력이 부족했던 탓일까. 아니면 컴퓨터와 인간의 억지 대결 구도를 만들어내기 위함이었을까. 영화 매트릭스는 인간에게 전원을 얻어 쓰는 컴퓨터의 모습을 설정했다. 인류의 선조들이 컴퓨터의 에너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태양을 파괴했다는 설명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사람은 자신의 몸에서 발생하는 전류보다 수천배 이상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컴퓨터의 입장이라면 사람을 사육하는 것보다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 것이 효율적이다.

물론 매트릭스의 중심은 ‘현실이라고 알아왔던 세계가 가짜일지도 모른다’라는 설정이다. 그러나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하면 매트릭스의 탄생 원인으로 ‘사람을 배터리로 사용하는 것’보다 더욱 세련된 것들을 찾아낼 수 있다.

2002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노성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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