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육지 수량의 5분의 1을 가두고 있는 초생달 모양의 바이칼호. 이곳에서는 한여름에도 수영하기가 힘들다.
바이칼호는 소련 시베리아 동부의 부리야트자치공화국 내에 있는 세계 유수의 담수호다. 호수의 크기는 남북 길이가 약 6백50km, 동서 폭이 40~80km에 이른다. 그 표면적만을 따지자면 세계 8위, 소련 3위의 내륙호수이지만 최대수심 1천6백25m에 이르는 깊은 수심으로 더욱 유명하다. 전세계 육지수량의 5분의 1을 가두고 있는 초생달 모양의 거대한 호수인 것이다.
바이칼호의 물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다고 한다. 아직도 사람들은 호수물을 그대로 음료수로 사용하고 있다. 호수 표면은 해발고도 4백46m이며, 호수 주위는 그 높이가 2천 5백m에 이르는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호수 안에는 모두 18개의 섬이 있다. 총연장 약 2천km에 이르는 호안을 따라서 모두 3백36개의 크고 작은 하천이 호수로 흘러 들어오고 있는데 이렇게 유입된 호수물은 호수 서남쪽에 있는 앙가라강을 통해 방출되고 있다.
3차에 걸쳐 형성되고
이 호수의 기원과 형성과정에 대한 모든 수수께끼가 아직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지만, 흔히 중생대 쥐라기 이후 계속된 단층운동으로 3차에 걸쳐 형성됐다고 알려져 있다. 이 일대는 오늘날에도 지질운동이 활발하다고 히는데, 최근의 연구성과에 따르면 약1만년 전에 발생한 대규모의 지질운동으로 앙가라강이라는 새로운 방출구가 형성되면서 호수면의 해발고도가 약 20m 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호수가 대략 북위 51도 30분에서 56도에 걸쳐 있다는 점에서도 곧 알 수 있듯이 호수의 수온은 매우 낮은 편이다. 그 남쪽 끝에서도 연평균기온이 1℃가 채 되지 못하며 가장 따뜻한 8, 9월에도10℃ 정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낮은 수온으로 인해 한 여름에도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곳은 호안 서쪽중앙부의 '말로에 모레'(우리 말로 '작은 바다'라는 뜻)라고 부르는 좁은 지역 뿐이다. 그러나 비록 수영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필자가 작년 8월 이곳을 방문했을 때 물에 들어가보니 너무나차가워서 30분 이상 물 속에 있을 수 없었다.
바이칼호와 그 주변 일대에는 매우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이곳에서 확인된 동식물은 모두 1천7백종 이상으로 이들 중 1천83종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이 지역 고유의 종이다. 특히 흥미롭게도 바이칼호에는 포카 시비리카(Phoca sibirica)라는 학명의 물개가 살고 있는데, 이것은 민물에 살고 있는 유일한 물개라고 한다. 호수에는 또한 매우 풍부한 어족이 살고 있어서,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어업은 이 일대 주민들의 중요한 생계수단이 되고 있다.
퉁구스족의 터전
오늘날 바이칼지역에는 수많은 민족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복잡한 인종적 구성은 이 호수가 17세기에 러시아인들에게 발견되고 난 이후의 일이다.
러시아인 진출 이전까지 이곳에는 수렵생활을 하던 퉁구스족과 목축생활을 하던 부리야트족이 살고 있었다. 퉁구스족은 우리 한민족과 동일한 언어집단에 속하는 민족으로 수천년 전부터 이 일대에서 살고 있었다. 부리야트인은 몽고족의 한 갈래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몽고에서 이 지역으로 진출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은 극히 소수만이 살아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 퉁구스족은 불과 수백명, 부리야트족은 1만5천명 정도만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바이칼호 지역에 인간이 최초로 살기 시작한 때는 언제쯤일까. 호수의 호안을 따라서는, 앞에서 얘기한 1만년 전의 지질운동에 이어 계속된 침식작용으로, 그보다 오래 된 유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호안을 벗어나면 매우 오래 전에 형성된 유적이 다수 발굴된다. 이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무엇이며 과연 얼마나 오래 됐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 불충분으로 의견일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8만년 전부터 이 일대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약 1만5천년 전 이 지역의 후기 구석기인들은 상아나 뼈를 이용한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대표되는 매우 발전된 문화를 이루고 살았다.
우리 고대문화와 연관되기도
약 1만년 전 플라이스토세가 끝나고 오늘날과 같은 보다 따뜻한 기후조건이 도래, 세계각지에서는 종래의 수렵채집생활을 대신하는 농경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 일대는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인해 종래의 생활양식이 바뀌지 않은 채 계속 유지돼 왔다.
수천년에 걸친 중석기시대를 지나 B.C. 6000년 경에 이르자 이 지역에서도 토기가 제작됐고 신석기시대가 찾아왔다. 청동기시대는 지금부터 약 3천년 전에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나 신석기시대는 물론이고 청동기시대 역시 농경보다는 수렵 채집 어로에 의존한 생활을 했다. 이러한 생계경제양식은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 원주민의 주된 생활양식이었다.
이 지역의 신석기문화와 청동기문화는 우리나라의 선사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져 왔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이 지역 선사문화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 못하고 있으며 장래의 연구과제로 남겨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