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게 정책목표입니다."
신설 울산공대학장에서부터 울산대총장에 이르기까지 19년동안 대학행정을 맡아오다 제6공화국의 초대 과학기술처장관에 취임한 이관(李寬)박사(58)는 달변에 외유내강의 전형적 영국신사. 영국 ‘리버풀’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은 인연으로 국내에서 몇 안되는 영국통이기도 한 이장관은 재임기간중의 정책목표를 ‘국민들의 가슴속에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심을 수 있는 분위기조성’이라고 못박는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분위기조성은 국민은 물론 행정관계자 연구담당자 등이 함께 관심을 가질 때 그 효과가 더욱 커집니다. 아직 국내의 기술개발은 관주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정부의 예산제도 및 과기처의 연구조정관제도 대덕단지에서의 환경개선 및 연구원의 봉급체계, 그리고 연구원들의 연구에 대한 태도 등 몇가지 문제를 분위기 조성의 중요한 관건으로 생각하고 있읍니다.”
●─ 과기처예산은 특별회계가 바람직
─ 정부의 현행 예산제도가 과학기술개발계획에 부합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시다시피 현재의 과학기술예산제도는 1년 단위로 짜여져 있읍니다. 이때문에 모든 예산의 집행은 이 회계제도에 맞춰야 하는 데 사실 연구개발은 1년단위로 매듭지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읍니다. 따라서 과학기술예산은 연구개발을 위한다기보다 회계제도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집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정작 필요할 때는 예산이 없어 쩔쩔 매고···. 그래서 과학기술예산은 특별회계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제5공화국의 핵심적인 과학기술정책이었던 산업기술정책은 사실 특정연구개발사업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읍니다. 특정연구개발사업에서 보완돼야 할 점이 없는지요.
“산업계가 필요한 기술을 국가와 산업계가 공동으로 연구하는 특정연구개발사업은 국내의 산업기술을 어느 정도 정착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읍니다. 그러나 그 과제의 선정은 과기처 직원은 물론 정부출연연구소 및 민간기업체 대학 등 관계자들로 구성된 위원회같은 것을 구성, 타당성이 있는 과제를 선택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습니다. 또 과기처의 연구조정관도 지금까지 정부출연연구소에서만 뽑아 임명하던 것을 대학교수 중에서 선임하는 방법도 고려할만 합니다. 이것은 산·학·연(産学硏)의 협동연구를 위해서도 필요한 방법이며 대학에서도 환영하고 있읍니다.”
─ 제5공화국에서는 산업기술에 비해 기초과학의 육성책이 미약했다는 평가도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입니까.
“우수한 산업기술개발은 하나같이 튼튼한 기초과학의 바탕위에서만 가능합니다. 기초과학은 우선 우수한 인력의 확보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국내 과학기술인력의 80%가량이 집중돼 있는 대학의 기초과학연구능력을 어떻게 높이느냐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읍니다. 결국 대학의 연구분위기를 조성토록 하는 방법이 강구돼야 하겠지요.”
●─ 대학교수가 연구의 주체가 돼야
─ 대학의 연구인력을 활용하면서 낙후된 국내의 기초과학수준을 높이기 위한 기초과학연구원 설립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구상은 어떻습니까.
“기초과학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 두개 연구소를 세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국내의 기초과학연구분위기는 마치 메마른 땅과 같습니다. 메마른 땅에 물이 고일 때까지 정부의 투자는 계속돼야 합니다. 물을 받는 땅이 대학이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읍니다. 대학교수가 연구의 주체가 되게 대학의 연구기능을 활성화시킬 각오입니다. 현재 각 학회 회장들에게 기초과학육성안을 내주도록 요청하고 있읍니다. 앞으로 과학기술처는 각 대학이 마련하기 힘든 필요한 기계 및 시설을 마련하여 공동이용토록 하는 지원책을 쓸 생각입니다.”
─ 시대에 맞는 조직은 능률을 크게 높일 수 있읍니다. 현재의 정부조직이 효율성있게 과학기술정책을 펼 수 있다고 보십니까.
“조직은 정적이 아니고 동적입니다. 외부의 상황변화에 따라 바꿔져야 합니다. 과학기술이 국가발전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는 오늘날 정부조직도 시대의 변화를 수용해야 합니다. 정부조직 개편은 국가 전체의 효율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물론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 과기처는 지난 85년 담당관제도의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읍니다. 즉 담당관은 정부 중앙부처의 국장에 해당하는 직급이었읍니다. 이 조직개편에 따른 과기처직원의 불만이 많은데······.
“조직은 보편타당성을 지녀야 합니다. 즉 정부중앙부처의 국장은 같은 국장으로 대접받아야 하는데 과기처의 조직개편으로 같은 국장이면서도 정부부처내에서 온당한 대접을 못받았읍니다. 가령 담당관이 과장급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 소위 ‘광주사태’니 ‘지역적인 편중개발’이니 하는 문제가 제6공화국의 짐이 되고 있는데 광주에 테크노폴리스를 건설할 계획이 있으신지요.
“광주에 제2의 과학기술대학을 세워서 기술개발에 관한 한 전국적인 균형발전을 꾀할 생각입니다. 이미 전남대 지역사회연구소에 연구검토를 의뢰해 두었으며 과학기술대 건설을 위한 관민협동기구가 마련돼 있읍니다. 정부에서는 기본적으로 서울 대덕 광주 울산·포항 등 4개 지역을 테크노폴리스로 가꿀 계획입니다.”
─ 내년에 개관 예정인 국립과학관의 운용에 대해서 어떤 구상을 하고 계십니까.
“청소년들에게 미래의 꿈을 심어주는 기관이 되게 할 계획입니다. 현재 각 시·도에 있는 학생과학관은 여러가지 요건으로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읍니다. 앞으로 문을 여는 국립과학관은 죽은 전시물의 집합장소가 아닌, 항상 살아 움직이는 과학생활의 광장으로 가꾸겠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립박물관의 학예관같은 제도를 두어 전래의 과학기술내용에 대한 전시물 연구는 물론, 첨단의 것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게 연구전시, 전국민이 항상 가보고픈 과학관이 되게할 생각입니다.”
─ 현대를 정보의 시대라고 하는데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정보수집과 분배의 기능을 맡을 기구를 구상해 보셨는지요.
“한때 과학기술처가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를 운영한 적이 있읍니다. 그후 이 기관은 산업연구원으로 바뀌어 원래의 취지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현재 순수한 과학기술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는 것을 크게 고민해왔읍니다 .앞으로 대덕에 대규모의 과학기술원도서관이 건설되면 이 도서관을 과학기술정보공급처로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교육연구망이 개설되면 정보센터의 출현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과학기술요소입니다.”
●─ 원자력의 안전대책도 중요
─ 원자력정책에 대한 장관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이미 국내의 원자력발전 이용률이 전체의 50%를 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원자력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읍니다. 에너지자원이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원자력은 선택의 여지없는 에너지원입니다. 그러나 원자력은 항상 심각한 잠재적 위험이 있기 때문에 안전을 원자력정책의 최우선으로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현재 원자력안전센터가 원자력사업을 하는 한국에너지연구소부설로 되어 있고 과기처내에서도 안전에 관한 고도의 기능이 필요한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또 안전과 연결되는 문제지만 원자력기술자립은 꼭 성취해야 할 국가목표입니다. 11, 12호 원자력발전소건설 설계에 우리 인력이 참여한느 것과 대덕에 새로운 연구로를 건설하는 것 등은 원자력기술자립의 구체적인 사례들입니다.”
─ 핵폐기물의 처리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읍니까.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장갑 옷가지 쓰레기 등에 묻어 있는 저준위핵폐기물은 영구처분을 위해 시멘트로 고화(固化)시켜 지하에 묻을 예정이며 이를 위해 장소를 물색중에 있읍니다. 그리고 사용후의 핵연료인 고준위핵폐기물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처리방법에 따라 처리될 수 밖에 없읍니다.”
─ 과학기술 특히 첨단기술은 국제간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국제간의 과학기술협력전략은 무엇인지요.
“두가지 기본적인 전략을 갖고 있읍니다. 하나는 국제간에 서로 분소(分所)를 갖는 것입니다. 즉 대등한 입장에서 상대국의 연구단지내에 분소를 설치하는 것입니다. 이미 국내 연구소의 몇개 분소가 외국의 연구단지내에 있고 외국의 일부 연구소들도 국내에 연구분소를 두기를 희망하고 있읍니다. 또 한가지는 첨단기술연구계획에 처음부터 인력과 재원을 투입, 연구계획을 낸 연구소와 공동으로 연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흑자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국제협력관계의 모색은 과거 기술선진국과의 수직협력관계에서 벗어나 수평협력의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것이며 이것은 그동안 국내 과학기술의 발달 및 부의 축적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 정부출연연구소의 기능조정문제에 대해 고려해 보셨는지요.
“민간연구소가 4백여개로 늘어난 현재 정부출연연구소가 산업기술개발에 매달릴 수는 없읍니다. 정부출연연구소가 산업기술을 다룬다 해도 소재 등 기초부터 연구하면서 대학과 유리되지 않도록 할 작정입니다. 모름지기 정부출연연구소는 대학과 민간연구소간의 교량역할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연구과제의 선택이나 연구체제의 구축이 바람직하다고 믿습니다.”
─ 제5공화국에서 과학기술대학의 설립등 과학기술인력개발에 크게 힘을 기울였으나 아직도 과학기술인력은 부족합니다. 인력확보계획은 어떻습니까.
“분야별로 아직도 부족한 인력이 많습니다. 특히 첨단분야일수록 인력부족은 극심합니다.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로보틱스, 생명공학 등 특수분야의 인력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입니다. 국내에서도 부족한 인력을 집중 양성하는 한편 외국에 있는 우수한 두뇌를 적극 유치할 예정입니다. 많은 해외의 한국두뇌가 귀국하려 해도 근무할 곳이 마땅치 않아 귀국을 늦추고 있는데 합당한 자리를 마련, 귀국희망자들을 적극 수용할 생각입니다.”
●─ 정부출연 연구소의 발전대책
─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분위기를 어떻게 파악하고 계십니까.
“대덕연구단지에서 연구원 부인들을 만났읍니다. 아이들의 교육이나 문화활동에 어려움이 있어 많은 연구원 가족이 서울에 머문다고 하더군요. 이 얘기를 듣고 ‘가정에서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 정말 안정돼 있을까’하고 생각했읍니다. 좀더 그들의 의견을 수렴, 연구원들이 잡념없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각오입니다.
또 연구하는 사람들이 상위직에 대한 집념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연구원은 연구에서 보람을 찾는 풍토의 조성도 중요합니다. 물론 보수체계나 계약제연구 등이 연구원을 불안하게 합니다만, 노벨상을 타겠다는 생각을 잊고 연구를 해야 노벨상을 타듯 업적에 대한 명예나 결과를 노린 연구분위기가 안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들의 노조결성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미 노동부가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그 존재는 인정받은 셈입니다. 그러나 노조활동 자체가 연구분위기를 해쳐서는 안되겠지요. 연구는 창조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연구소의 연구분위기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최근 연구소에서의 노조문제는 팀웍이 잘 이룩되지 못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상위직의 관리소홀이나 보수체계의 미비점도 있었던 것으로 듣고 있읍니다. 원만한 대화로 문제는 항상 해결되리라고 봅니다.”
─ 현재 연구원의 정년이 65세로 되어 있는데 타당하다고 보십니까.
“가장 왕성한 연구결과를 내는 연령은 30대입니다. 60대의 연구활동은 거의 정지된 상태이지만 그들의 경험이 좋은 연구결과를 유도할 수도 있읍니다. 현재 대학교수나 공무원의 정년도 65세이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 신분보장을 하고 있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 현재 과기처에는 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과학재단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등 외곽단체들이 있읍니다. 이들을 활성화시켜야 하지 않겠읍니까.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과학기술인력의 뜻을 한데 모을 수 있는 대의기관입니다. 이 기관을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로 삼겠읍니다. 재정의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재정지원을 늘릴 계획입니다. 그것은 바로 학회의 활동을 활성화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과학재단은 기초과학의 육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관으로 키울 작정이며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에 대해서는 청소년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임무를 더욱 강화토록 할 작정입니다. 결국 이런 기관들의 기능이 활성화될 때 과학기술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대중속에서 솟아날 것입니다.”
서울대공대 기계과를 졸업한 후 해사교관 등을 거쳐 원자력연구소 원자로공학연구실장 때는 국내 최초의 원자로인 트리가 마크I을 설치하는데 크게 기여한 원자력통인 이장관은 영국 리버풀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딴 덕택에 영국정부의 자매교인 울산공대학장을 맡았었다. 한때 하루 2갑씩 피우는 담배 골초였으나 71년부터 금연하고 있으며 술은 분위기에 어울릴 정도로 마시는 편. 등산 테니스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