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봉송 주자는 대부분 해당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개최국 또는 인근 국가 사람으로 뽑혀요. 그런데 이번 2024 파리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수많은 프랑스인 주자 사이에 한국인이, 그것도 영상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나타났어요!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성화를 봉송한 삼성전자 하드웨어플랫폼랩 박재성 연구원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빛을 되돌리고, 불을 옮기다!
“달리기요? 아니요, 운동이라면 제가 하는 것보단 남이 하는 걸 보는 게 더 좋아요!”
평소 달리기에 관심이 많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재성 연구원은 단호하게 대답했어요.
“몇 km나 뛰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아서, 우선 1km씩 뛰는 연습을 했어요. 막상 프랑스에 가서 보니 300m 정도의 구간만 뛰면 되더라고요. 그래도 올림픽 역사의 한 장면을 함께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지난 5월 14일, 박 연구원은 프랑스 남부의 해안도시인 몽펠리에에서 성화를 봉송했어요. 이번 파리 올림픽의 성화 봉송 주자 중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외국인은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진과 박 연구원뿐이었죠. 성화 봉송 주자는 사회와 국가 등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 스포츠 분야에서 활약을 펼친 사람 등으로 구성돼요. 박 연구원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쓸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성화 봉송 주자로 선정됐습니다.
박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제품에 들어가는 ‘릴루미노 모드’라는 기술의 개발에 참여했어요.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전자기기 화면의 이미지를 더 잘 인지하도록 영상 속 물체의 색깔, 선명도, 대비 등을 강하게 표현해 주는 기술이죠. 릴루미노라는 이름은 ‘빛을 되돌려준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비롯됐어요. 파리 올림픽 위원회는 “박 연구원이 개발한 기술 덕분에 더 많은 시각장애인이 올림픽 경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어요. 그러면서 “이러한 기술 발전은 올림픽이 진정한 ‘모두의 축제’로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덧붙였죠.
릴루미노 모드와 박재성 연구원의 성화 봉송 소감을 자세히 들어 볼까요?

Q&A. 모두를 위한 기술과 모두의 축제!
박재성 연구원은 왜 장애인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게 되었는지,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뽑힌 과정은 어땠는지, 자세한 내용을 들어봤습니다.
Q. 연구원님의 원래 업무는 무엇인가요?
저의 주 업무는 영상신호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거예요. 방송국이나 스튜디오에서 만든 영상은 전기 신호가 되어서 통신 채널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전달돼요. 이 과정에서 신호가 손실되어 영상 품질이 떨어지기도 하죠. 저는 이렇게 손실된 영상 신호를 복원해서 영상의 품질을 개선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왜 장애인을 위한 기술에 관심을 가졌나요?
2020년에 시각장애인과 제품 평가를 하는 자리에 갔었어요. 제 옆에 의자가 있고, 의자 앞에는 시각장애인 참가자가 서 있었죠. 그분께 “여기 앉으세요”라고 하니 “여기가 어디를 말하는 거죠?”라고 답하셨어요. 이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거든요. 시각장애인들이 스크린이 달린 전자기기를 이용할 때는 어떻게 보이는지도 궁금했어요. 이 경험 이후로 ‘내가 알고 있는 기술로 시각장애인이 스크린을 좀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Q. 릴루미노 모드가 시각장애인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 궁금해요!
시각장애의 유형은 다양한데, 릴루미노 모드는 그중에서도 낮은 시력을 가진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영상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해 줘요. 인공지능(AI)을 통해 영상 속 윤곽선을 검출하고, 뚜렷하게 강조해서 일반 영상보다 움직임이 더 잘 보이게끔 만들죠. 윤곽선뿐만 아니라, 색채의 대비를 강조해서 영상 속 물체를 쉽게 구분하도록 하기도 해요. 스크린으로 영상을 볼 때 수어 통역이 나오면 그 부분을 확대해 주는 기능도 있어요. 수어 통역 부분을 AI로 인식하고, 원본 영상의 크기를 조절해서 수어 통역 부분이 들어갈 자리를 확보한답니다.
Q. 성화 봉송 주자로 뽑힌 과정은 어땠나요?
삼성전자가 2024년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공식 파트너사여서, 회사 내에서 먼저 올림픽의 정신에 부합하는 제품이나 기술을 개발한 직원을 선정했어요. 그중 제가 회사 대표 격으로 파리 올림픽 위원회의 성화 봉송 주자 모집에 지원했죠. 파트너사 직원이라고 무조건 뽑히는 것은 아니고, 올림픽 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서 최종 선발됐습니다.
Q. 성화봉송 당시 기억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요?
뛰어야 하는 거리가 정해져 있다 보니, 여러 명의 주자를 큰 버스에 태워서 다녀요. 앞선 주자가 뛸 동안 버스는 다음 주자를 정해진 장소로 데려다 주죠. 다 뛴 주자는 다시 버스에 태워서 가고요. 성화봉송이 이런 시스템으로 진행된다는 걸 알게 돼서 재미있었어요. 또, 성화가 생각보다 무거워서 놀랐어요. 성화 자체는 1.5kg이라는데, 연료용 가스가 들어가서인지 체감상 3kg이 넘는 것 같았어요. 성화 밑에 가스 밸브가 있거든요. 제 차례가 되니, 진행을 도와주는 분이 밸브를 틀었어요. 쉭쉭 소리가 나면서 이전 주자가 건네준 불이 확 옮겨 붙었죠.

Q. 어과동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I 덕분에 모든 것을 예측하기 힘든, 과학 기술의 변화가 하루하루 너무도 빠르게 이루어지는 시대에 살게 됐어요. 오늘의 과학기술이 1년 뒤에는, 또 몇 년 뒤에는 어떻게 변할지, 그 변화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하며 지식을 쌓아가길 바라요. 공학뿐만 아니라 의학, 인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여러분들의 미래를 기대하고 응원하겠습니다!